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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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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은 사람을,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형사사법체계의 오랜 고민이다. 그리고 이 질문의 대전제는 '제대로 된 형벌'이다.

그런데 한국 법원은 재벌에게는 유독 관대했다.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총수 맞춤형 양형공식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면서 사람들의 오해를 자처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준법감시위원회'를 집중 검토했다. '국정농단처럼 또다시 정치권력자가 뇌물을 요구하더라도 삼성이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대한 삼성의 답이었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이 내용들을 20분 동안 설명했고, 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양형 심리와 관련해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적 운영 여부 점검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재판장의 이상한 당부, 수많은 의문점들

이러한 진행은 정 부장판사 스스로 법정에서 한 말과 어긋난다. 지난해 10월 25일 첫 공판에서 그는 이재용 부회장의 새로운 경영비전, 뇌물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삼성 자체 개선책을 마련하고 이스라엘의 재벌체제 혁신을 참고하라고 제안했다. 또 이 내용들은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관련 기사 : 이재용 향한 재판부의 이상한 당부 "만 51세 이건희는...").

하지만 4차 공판 때 정 부장판사는 결국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의 실형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임을 분명히 했다. 양재식 특검보는 그렇다면 뇌물사건의 동기, 이재용 부회장의 불법적 경영권 승계작업을 똑같이 양형 기준으로 판단해 달라며 검찰 수사자료를 증거로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관련 기사 : "이재용 봐주기 명분 쌓기 아니냐" 특검, 재판부 정면 비판).

준법감시위가 적절한 가늠자냐를 두고도 논란이 끓고 있다. 외부위원이 절대 다수(7명 중 6명)이며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받았다지만, 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삼성 내부 기구다. 이들의 판단 근거도 삼성 안에서 만들어진 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

국정농단 뇌물사건처럼 그룹 수뇌부 차원에서 은밀하게 의사결정이 이뤄질 경우 준법감시위는 과연 파악할 수 있을까? 2월 초에야 걸음마 떼는 위원회가 제대로 달리는지를 출범 초기에, 법원이 단기간 점검하는 것만으로 실효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삼성기가 날리고 있다(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삼성기가 날리고 있다(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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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삼성 그룹이 적법절차대로 운영되는 것과 이재용 부회장의 책임을 묻는 것은 각각 다른 일이다. 게다가 이 부회장 혐의 중 하나는 회사자금으로 '비선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횡령이다.

똑같이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만든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도 2007년 항소심 재판부와 비슷한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산 수천억 원을 사회에 기부했다. 반면 삼성 준법감시위는 주요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는다. 이 부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드는 재단이 아니다.

삼성 그룹 자금으로 돌아가는 기구가 '경영권 승계'라는 개인 이익을 위해 회삿돈을 쓴 기업 총수의 형벌을 감면해주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이미 이재용 부회장의 횡령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이 가해자, 삼성그룹은 피해자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삼성의 변화를 이재용의 반성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도둑 맞은 집에서 세콤을 설치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도둑을 풀어주는 근거가 될 수 있겠냐(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특검 "재판 불공평"... 기피 신청은 아직 고민 중

시민사회계는 재판부가 노골적으로 '이재용 봐주기'를 예고한다고 비판한다. 21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은 공동성명을 내 "재판부는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냉철하게 판단해 판결해야 한다"며 "준법감시위는 재판장이 주문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회의원 43명도 동참했다(더불어민주당 34명, 바른미래당 1명, 민주평화당 1명, 정의당 6명, 민중당 1명).

이들은 "재판부 역할은 이재용 부회장이 범한 죄를 단죄하는 것이고, 삼성 준법감시위는 미래의 일을 관리하는 것"이라며 "이것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했다. 또 "미국의 준법감시위는 개인이 아닌 기업의 범법에 대한 경감사유로 활용되고 있다"며 "재판부가 이 부회장 범죄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할 증거 채택을 거부하면서 준법감시위 설치를 명분으로 재벌총수 구명에 나서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특검도 의심하고 있다. 17일 공판 때 양재식 특검보는 재판부가 삼성 불법승계 관련 검찰 수사 자료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준법감시위 심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 "이 재판이 불공평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형사소송법 18조가 정한 재판부 기피사유에 해당한다고 발언한 셈이다.

다만 특검은 좀더 재판부를 지켜보기로 했다. 특검 관계자는 "(삼성 불법승계 관련) 증거 (채택) 기각 결정에 이의신청을 해놨고, (준법감시위 관련) 내용도 정리해 의견서를 낼 생각"이라며 "그에 따른 재판부 결론을 보겠다"고 했다. 그는 준법감시위를 두고도 "제대로 점검하려면 10년은 해야 될 것 같다"며 "우리는 재판부가 (전체적인 상황을) 재고하길 기대한다"고 거듭 말했다.
 
특별검사팀 박영수 특검과 양재식 특검보, 윤석열 수사팀장이 2017년 4월 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 박영수 특검팀, 이재용 첫 재판 등판 특별검사팀 박영수 특검과 양재식 특검보, 윤석열 수사팀장이 2017년 4월 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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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재용, #삼성 뇌물, #특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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