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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3일, 1056명의 동성커플들이 동성혼· 동성파트너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을 신청했다. 이 사건 진정을 대리하는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가구넷)는 5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진정의 취지 및 혼인평등의 필요성과 의미를 짚어본다. 오래전부터 가족으로 살아온, 가족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들 모아 가족을 구성할 권리, 유지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재고해 본다. - 기자 말
 
 2014년 여름 해운대에서 함께 찍은 사진.
 2014년 여름 해운대에서 함께 찍은 사진.
ⓒ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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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2015년 겨울, 서울 홍은동에 위치한 원룸에서 애인과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 전 나는 돈암동의 한 아파트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고 애인은 신길동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두 번의 겨울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내 방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날들이 늘어났는데, 동시에 애인의 옷가지며 짐들이 방에 쌓이기 시작했다. 이렇듯 반 동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나는 점차 우리의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때마침 애인 역시 대학 졸업을 앞두고 본가로부터 독립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망설일 것 없이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가며 구한 홍은동 집은 가파른 언덕 위 원룸의 꼭대기 층이었다. 하지만 남서향이라 종일 햇볕이 잘 들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홍제천이 빛났다. 또 한 층 위 옥상으로 올라가면 서대문 안산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아래로는 내부순환로가 있어 해 질 녘엔 드리워지는 노을과 함께 차량의 헤드라이트 행렬이 보였다. 그야말로 서울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낭만이 있는 집이었다.
 
 이렇게 배송 온 새로운 가구들을 조립하고 배치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렇게 배송 온 새로운 가구들을 조립하고 배치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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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8평 남짓한 원룸에 둘이 앉아 이케아에서 배송되어 온 가구들을 하나씩 조립하고 집기, 소품들을 여기저기 배치해보며 둘만의 취향으로 오롯이 공간을 채워나갔다. 이미 먼저 가족을 이루고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친구사이'(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형들은 우리의 동거 소식을 듣고 '원래 신접살림은 다 그렇게 소박하게 시작하는 것'이라는 덕담과 함께 TV며 가전이며 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들을 선물해주셨다. 우리 역시 신혼집 집들이라는 명목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초대할 수 있는 주변 지인들을 불러들여 요리를 대접했고, 축하의 마음이 담긴 선물들을 받았다.

동거를 시작하고, 우리를 둘러싼 많은 이들의 축하와 지지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삶의 새로운 챕터로 들어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어느 시의 구절처럼 애틋함보다는 연애시절에는 느낄 수 없었던 모종의 책임감이 둘 사이에 흐르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둘만의 취향이 깃든 공간에서 함께 눈을 뜨고, 잠을 청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식탁 위 화병에 꽂을 꽃까지 함께 고민하며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두 번째 이사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게 행복하고 좋았던 시절을 지나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원룸 동거 생활이 3년째에 접어들자 균형 잡힌 삶을 위해 쉼과 생활이 분리된 공간이 절실해졌다. 모든 게 다섯 걸음 안에서 손만 뻗으면 해결되는 원룸은 두 사람의 일생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다 오랜 시간 혼자 품고 있던 속마음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자기야, 이제 우리 이사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날 이후 애인과 나는 틈만 나면 동네 부동산의 매물을 살피고 방 구하기 앱을 뒤지며 이사할 집을 찾았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서울의 집값과 늘 아쉽기만 한 통장 잔고를 고려하지 못한 판단이었음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공공주택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그때 바로 우리의 눈에 들어 온 것이 바로 행복주택이었다.

그러나 대학, 청년,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에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정책을 들여다보니, 실상은 그 지긋지긋한 정상가족의 생애주기에 기반을 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법적 결혼으로 묶인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건 전체 모집 세대 중 극히 일부인 청년 1인 주거 전형뿐이었다. 

애인과 나는 함께 하나의 집을 가질 수 없다면 각자 두 개의 집을 갖자는 마음으로 행복주택에 지원했고, 정말 운이 좋게도 (서로 다른 지역이긴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둘 다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당첨의 기쁨도 잠시, 집이 두 개나 필요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의 관계가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 받을 수 없는 다양한 지원과 혜택들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행복주택 입주예정자들에게 온 사전 주택방문 안내문. 계약자 본인 및 직계가족 외에는 세대방문이 불가하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행복주택 입주예정자들에게 온 사전 주택방문 안내문. 계약자 본인 및 직계가족 외에는 세대방문이 불가하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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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입주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주택방문 일정과 관련한 안내문이 도착했다. 거기엔 사전 주택방문은 계약자 본인 및 계약자의 직계가족이 아니면 불가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요목조목 의문투성이인 안내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설명한 부분에서 짙은 박탈감을 느꼈다.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그 무엇도 우리의 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허탈했다. 그날 밤 우리는 시대의 흐름에 못 미쳐도 한참이나 못 미치는 안내문과 한국의 공공주거, 복지제도를 안주 삼아 오랜 시간 맥주잔을 비웠다.

서울게이행복주택

이렇게 입주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3년 동안 정들었던 홍은동 원룸을 떠나 행복주택이라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무사히 입주했다. 새집엔 원룸과 달리 침실로 쓸 수 있는 분리된 방이 생겼고 조그만 소파를 놓을 수 있는 거실도 있다. 또 둘이 앉아 식사하기에 충분한 크기의 식탁이 들어갈 주방도 생겼다.

물론 이 공간도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 충분치 않지만, 확실히 예전보다 주거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최근에는 애인의 본가에서 기르던 반려견을 우리집으로 데려와 애정을 쏟으며 함께 지내고 있다. 동거 5년차, 우리는 이렇게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접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가 법적 부부로서 공적인 인정을 받았다면 더 쾌적한 공간을 가진 집에 지원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전세대출상품을 통해 더 나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함께 당당히 사전 주택을 둘러보고, 애인은 전세보증금의 일부를 분담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세대주가 아닌 동거인으로 남는 차별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 집에서 가족이 아닌 '청년'이라는 개별적 존재로 최장 6년까지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사이 동성혼이 법제화가 되어 우리가 법적 부부로서 인정을 받는다면 최장 10년까지 거주 기간을 연장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지금으로서는 6년 이후 또다시 거처를 옮겨야만 한다. 이렇듯 동성커플들은 둘을 위한 보금자리를 하나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며,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
 
 신혼부부에게 최대 2억원의 전월세 보증금을 지원한다는 서울시의 광고가 거리 곳곳에서 보인다.
 신혼부부에게 최대 2억원의 전월세 보증금을 지원한다는 서울시의 광고가 거리 곳곳에서 보인다.
ⓒ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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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0월 서울시는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주택 및 금융지원을 위해 3년간 3조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영향인지 요즘 부쩍 길을 걷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 지원을 알리는 광고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 어디에도 동성커플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차별과 배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존재함에도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변해야 할 정치인, 행정가들은 여전히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운다. 또 동성혼이 '시기상조'이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 채 혐오와 차별의 확산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성 커플들의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또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기 위한 시간을 성큼 앞당겨 주는, 의미 있는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여전히 법과 제도의 바깥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상 속 작은 좌절과 슬픔이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흔들고 고립시키더라도, 우리는 맞잡은 손을 더욱 단단하게 움켜쥐고 서로를 책임지고 보호하며 살아갈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가족은 그런 것이다.

[왜, 동성혼 관련 기사]
1편 - 병원, 직장, 장례식장... '투명인간'이 된 부부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찬영씨는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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