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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맞벌이 가정에서 자라는 친구들을 보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엄마가 일이 생겨 집을 비워야 했다. 엄마는 집열쇠에 질긴 생끈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어 내 목에 걸어 주셨다. 그날은 하루종일 집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질 만큼 몹시 설렜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내가 직접 열쇠를 돌려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들어간 집엔 엄마의 온기 대신 따뜻하게 덥혀진 군고구마가 나를 반겼지만 그저 좋기만 했다. 어린 나에게는 꽤 좋은 기억이었을까? 20년을 훌쩍 넘은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엄마는 내가 집에 잘 들어왔는지 걱정이 되어 제대로 볼일도 보지 못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계셨을 테다. 집 전화가 울리고 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안도하신 듯했다. 이날을 제외하고 엄마는 늘 우리 곁에 계셨다.

평생을 사회생활 한 번 하지 않고 살림하며 나와 내 동생을 키우셨던 엄마를 보며 한때는 '취미라도 좀 가지시지...' '친구라도 만나고 다니시지...' 하던 때가 있었다. 혼자 현관문을 따고 집에 들어가는 게 마냥 좋았던 열살배기 철부지 소녀는 자라면서도 어쩌면 엄마의 부재를 특별한 이벤트처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도 여행을 보내드리는 것도 싫다,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시켜드리는 것도 모두 싫다 하신다. 자식들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여행이 근사한 해외여행보다 좋다 하시고 당신들끼리 좋은 밥 한 끼를 드시는 것보다 동네 밥집에서 우리도 같이 한 끼 먹게 하고 싶으시단다. 

번듯한 취미생활 하나 없이 자식들에게만 올인했던 엄마의 삶이 나에게는 좋아보이지 않았다.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지만 '엄마'라는 역할에게 가해지는 부담과 사회적 시선들이 싫었다. 숭고한 희생 정신을 욕 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당연시 되는 희생의 강요가 싫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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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가 되어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늘 다짐했었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로 1127일째 살고 있다. 결혼 후 맞벌이를 해왔지만 병가와 육아휴직 등으로 출근을 하지 않은 지 벌써 만 3년 반을 넘어가고 있다.

3년여의 시간 동안 나도 우리 엄마처럼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누군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강요한 것도, 상황의 부득이함 속에서 뾰족한 대안 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 보낸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그러기를 원했다. 

물론 휴직이 길어지면서 회사에서의 나의 입지가 좋아졌을 리 없다. 복직을 하게 되면 후배들이 나를 제치고 먼저 진급할 것 또한 불 보듯 뻔하다. 나는 그저 엄마로서,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엄마이기 이전의 '나'를 희생한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내가 잃은 것이 전무하다.

나의 커리어는 그저 나를 둘러싸고 있던 하나의 '상황'에 지나지 않는다. 긴 휴직기간은 되려 '나'라는 존재의 성숙이라는 고귀한 결론을 내어 주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육아(育兒)의 시간은 결국 육아(育我)의 시간이 되었으리라. 

엄마가 된 나는 나의 꿈이 없어지고, 나의 의미도 조금은 흐릿해졌지만 자존감은 더욱 높아졌다. 한 아이의 인생의 출발선에 내가 같이 있어 주었고, 그것이 아이에게 생물학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그 어떤 것보다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게 곧 내 존재의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처럼 강요된 희생에 의해 자신을 포기한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 또한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나의 엄마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음을, 취미나 인간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더욱 값진 무언가를 좇는 삶을 살아온 것임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태그:#엄마 , #희생, #육아휴직, #육아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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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밀착형재테커 / 경제적자유를 꿈꾸는 30대 육아휴직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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