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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는 경향신문의 기사(2019.11.21) 제목은 노동자 사망사고를 둘러싼 상반된 의미를 불러낸다. 우선 '한해 24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죽는다. 그런데 왜 김용균 죽음만 가지고 그러나?'라는 불만 섞인 의구심이 있다. 실제 발전사의 한 안전관리자는 '발전소에서 사망사고가 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왜 유독 이번 사건을 이렇게 조사하느냐?'고 인터뷰 도중 말하기도 했다.

언론이나 사회에서 김용균 사고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이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지만, 매일 또 다른 김용균의 죽음이, 마치 릴레이 경주를 하듯이 보도된 후 잊히거나, 아예 잊힐 기회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의 또 다른 의미는 사라진, 가라앉은 죽음들을 다시 길어 올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무명씨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 아무 관련이 없을 법한 사고들을 모아 거대한 아카이빙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죽음의 구조를 가시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향신문이 기사화한 1355명의 죽음에 대한 전수조사가 놀라운 이유는 그 숫자가 아니다. 숫자로 환원된 죽음은 추상적이다. 1355명과 1356명의 차이는 소수점 이하의 재해사망률로만 표시된다. 이것은 죽음의 구체성을 지우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1355명의 기록은 2400이라는 숫자로 수렴되는 연간 산재사망자 수에 저항한다. 그 구체적 죽음을 다시 기록하는 것, 그 짧은 정보의 단신들을 연결해 거대한 사고의 원인을 되묻는 작업이다. 그래서 경향신문이 제작한 거대한 죽음의 아카이빙은 지난 죽음에 대한 뒤늦은 추모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더 큰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졌다.

"이 죽음의 구조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  
 
지난해 12월 정부의 권고안 미이행을 비판하는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 토론회가 열렸다. 해당 토론회에서 발표 중인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지난해 12월 정부의 권고안 미이행을 비판하는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 토론회가 열렸다. 해당 토론회에서 발표 중인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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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매일의 김용균이 있었는데, 왜 사고조사는 김용균처럼 이뤄지지 않았을까?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사고조사보고서를 작성한다. 김용균 사망 당시 고용노동부가 행한 특별근로감독 결과보고서는 1029건의 안전조치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이 결과로 5개 발전회사의 모든 컨베이어벨트에 안전펜스가 쳐지기 시작했다. 발전소뿐만 아니라 끼임, 협착 같은 사고에는 늘 안전펜스의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안전펜스야말로 희대의 살인마인 셈이다. 안전펜스가 제 발로 도망가거나 책임을 방기했다면 말이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이유는 사고의 원인은 드러나지 않고, 사고만 드러나는데 있다.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어? 그러니 사고가 일어나는 거지' 식의 일반화는 사고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는 체념의 인식구조를 만든다. 안전펜스의 탓으로 돌리는 사고조사는 위험의 구조적 원인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봉쇄하고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접근으로 우리의 사고를 한정한다.

이 때문에 사고조사는 사고의 구조적 원인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 안전펜스가 쳐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아 추상적이고 베일에 싸인 근본적 원인의 가장 끝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고조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고조사는 수사가 아니다

사고를 바라보는 두 가지 편향이 존재한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고의 원인에 대한 기계적, 기술적 접근이다. 이는 사고에 대한 근본 원인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 책임의 문제는 사라지고 기술공학적 접근을 통해 마치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접근은 사회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숫자로 대체하는 것과 연결된다. 즉 죽음의 구체성 대신 기계장치의 결함이나 안전장치의 강화로 문제를 가둔다.

다른 하나는 사고의 원인을 손쉽게 구조의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다. 이 경향이 극단화되면 자본주의체제가 노동자 죽음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물론 정치적인 주장은 그렇게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사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의 구체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왜 하필 김용균은 컨베이어벨트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지, 그 작업방식은 어떤 결정과 구조에서 이뤄졌는지, 그 연결고리들을 추적하는 것이 사고조사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복잡한 시스템의 가장 끝에 무엇이, 혹은 누가 있는지를 드러내야 한다. 사고조사 과정에서 죽음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동료 노동자들의 경험과 진술은 매우 중요하다.

매뉴얼과 현실 작업방식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매뉴얼은 법에 따른 구체적 시행방안을 포함한다. 또한 기업의 고유한 작업 노하우를 담는다. 그러나 매뉴얼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권력관계이다. 이러한 권력관계가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실제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관행이다. 따라서 조사의 출발점은 매뉴얼이 지시하는 권력관계가 현장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 긴장과 간극을 조사하는 것이다.

즉 사고조사의 과정은 기계와 기술 그리고 구조와 제도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권력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세밀화로 그려내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조사는 범죄 여부를 파악하는 수사(搜査)도 아니고, 죽음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규정하는 정치적 수사(修辭, rhetoric)에 그쳐서도 안 된다.
 
서부화력발전소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재해자가 잘못해서, 부주의해서, 안전의식이 없어서 산재를 당했다는 것이다. 개인 책임으로 몰아가는 재해자과실론이 발붙일 수 없도록, 산업재해의 구조적 요인을 드러내고, 산재예방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제대로 된 조사활동에서 출발할 수 있다.
 서부화력발전소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재해자가 잘못해서, 부주의해서, 안전의식이 없어서 산재를 당했다는 것이다. 개인 책임으로 몰아가는 재해자과실론이 발붙일 수 없도록, 산업재해의 구조적 요인을 드러내고, 산재예방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제대로 된 조사활동에서 출발할 수 있다.
ⓒ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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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만 났다 하면 '재해자 과실론'

고용노동부에서 중대재해 특별근로감독으로 이뤄지는 사고조사 외에 기업 내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사고조사가 있다. 이는 통상 안전관리자와 기업에서 선임하는 안전전문가들이 수행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사고는 안전관리상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안전관리의 책임을 갖는 당사자가 사고조사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사고조사의 객관성이 애초에 실종된다. 때문에 재해 당사자와 그의 동료들은 조사의 주체가 아니라 조사의 대상이 된다. '재해자 과실론'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이뤄진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이나 동료가 당한 사고조사가 어떤 결론을 맺는지 알지 못한다. 발전 하청노동자들도 중대재해 사고조사서를 원청이 작성해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사업주는 사고조사서를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 그 안에는 사고의 원인, 사고의 구체 경위와 더불어 재발방지대책들이 포함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재발방지 대책 이전에 사고의 원인이다. 사고의 원인을 둘러싼 현장노동자의 의견을 봉쇄함으로써 원인은 재해자의 과실로 돌아가게 된다.

김용균 특조위는 사용자를 배제하고 정부 측, 시민대책위 측 추천위원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하청노동자들을 자문위원으로 두었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한다는 명분으로 사용자, 노동자, 정부, 전문가를 동수로 구성하지 않았다. 즉 사고를 조사할 때 사용자를 포함한 발전회사가 '조사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측 관료들도 조사위원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의 법, 행정적 시스템 역시 조사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는데, 처음부터 사용자 측이나 정부 측이 조사위원이 되어야 한다고 누구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기업 내 사고에 대한 조사는 '사용자'가 '조사주체'가 된다. 따라서 구의역 김군이나 김용균, 조선업 등과 같은 사용자를 배제한 별도의 조사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사측의 사고조사와는 독립적인 사고조사권을 확보해야 하며, 이러한 한에서 사측과 공동의 사고조사를 수행하거나, 아니면 독자적인 사고조사 활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고조사를 중대재해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아차' 사고에 그쳤더라도 심각한 산재사고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고, 사망까지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특정 장소나 상황에서 반복된 사고 등도 사고조사권을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고조사는 결코 사고가 난 후의 사후적인 과정이 아니다. 예방적 조치는 안전수칙을 강화하는 식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조사하는 식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 현재 형식적인 체크리스트로 유명무실한 위험성 평가를 비롯한 일상적인 안전보건활동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것만큼이나, 현장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위험, 더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고들을 조사하여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 또한 효과적인 예방적 조치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다양한 층위에서의 사고조사가 일상의 안전보건활동 증진과 강화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고조사의 목적은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예방하는 것

사고조사의 목적은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보고서를 남기지 않는 사고조사 활동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5.18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서 실질적인 발포명령자가 누군지 밝혀낼 결정적 증거를 수집했음에도 공식적인 보고서 한 장 남기지 못한 것과 같다.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그 과정은 지속적인 갈등과 투쟁의 과정이기 때문에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사고의 구조적 원인들을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갖는다.

김용균 특조위 당시 백도명 자문위원은 보고서 집필을 앞둔 특조위원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5번 하면 구조적 원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에 따라 김용균 보고서는 전력산업의 민영화라는 거시적인 구조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김용균은 왜 컨베이어벨트 안으로 몸을 숙여서 작업했는가?'라는 구체적 질문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체계적인 연구논문을 작성하는 것과는 다르다. 구체적인 조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김혜진 자문위원의 조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고조사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사고, 구체적인 죽음의 경로를 추적하면서 그 배후에 가려진 구조적 원인에 도달하기 위한 인과관계의 사슬망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러한 과정으로 쓰인 사고조사 보고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원인은 우리 사회의 매우 근본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보고서가 규명한 사고의 구조적 원인과 이것이 갖는 의미는 반드시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선다. 이러한 사회화는 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사측의 지배력에 압력을 행사할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사고조사 보고서는 앞으로 더 많이 쓰이고 쓰여야 한다.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이어질 뻔한 사고들에 대한 조사활동을 통해 그 원인들이 축적될 수 있다면, 낡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해자 과실론'은 현실에서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전주희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조사활동, #산업재해, #안전보건, #재해자과실론, #사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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