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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이 7일(현지시간)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의 주도 케르만에서 열린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장례식에서 미국에 대한 강력한 보복 공격을 경고했다. 사진은 지난 6일 테헤란에서 열린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장례식.
▲ 이란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미국이 아끼는 곳 불바다 만들겠다"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이 7일(현지시간)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의 주도 케르만에서 열린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장례식에서 미국에 대한 강력한 보복 공격을 경고했다. 사진은 지난 6일 테헤란에서 열린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장례식.
ⓒ IRNA통신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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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사이에 긴장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높다. 이란 내 반미 감정은 최고조다. 이란 혁명수비대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비롯해 장성 5명이 살해됐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군 수뇌부를 잃은 이란 국민들은 피의 복수를 다짐한다. 이라크 미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그 시작이다. "누가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해주느냐"는 절규에 대한 답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우리 모두가 할 것이다"며 결의를 다진 바 있다.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보인 눈물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파장은 상당하다. 국제사회는 불편한 기색이다. 미국 안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다. 존 바이든 전 부대통령은 "타고 있는 불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졌다"는 말로 무모함을 질타했다. 미국이 후속 대응에 나서면 사태는 한층 악화될 게 뻔하다. 이미 국제 유가는 뛰었고, 주식시장은 폭락했다. 우리도 영향권에 들었다. 호르무즈 파병 요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이 시작됐다. 미국 요구를 받아들이면 이란과 험악한 관계를 각오해야한다.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이란과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10여 년 전 이란 현지 취재를 다녀왔다. 엊그제 드론 공습 소식을 전하는 외신에서 언급한 콤(Qom)을 비롯해 테헤란, 이스파한을 취재했다. 콤은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60km 떨어진 종교도시다. 이곳 이슬람 사원에 붉은 깃발이 게양됐다는 소식이다. 콤은 시아파 교도들에게 성지다. 도시 분위기도 무겁다. 여성들 옷차림에서 테헤란과 구분된다. 테헤란 여성들은 화려한 '히잡'으로 한껏 멋을 부린다. 반면 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차도르'로 감싼 여성들 일색이다. 두 도시가 같은 나라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콤이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유가 있다. 최고 종교지도자를 연이어 배출한 게 첫 번째다. 이란인들이 존경하는 호메이니와 현 하메네이가 주인공이다. 두번 째는 이슬람 사원과 신학교가 몰려 있다. '호제예 엘미예'와 '페이지예', '버게롤 울름' 신학교는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공부한 이들은 권력 핵심부에 들어갔다. 이란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는 대통령보다 권한이 세다. 하메네이도 대통령을 지내고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1979년 이란 혁명 열기는 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콤의 붉은 깃발에서 피바람을 예감하는 이유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곤혹스럽다. 앞서 사드 배치를 놓고도 한차례 곤욕을 치렀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는 아직도 '한한령(韓限令)'을 풀지 않고 있다. 만일 미국 편에 선다면 이란과 마찰을 피할 수 없다. 이란 정부는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도 공격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포고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우리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과 관계를 고려하면 난감하다. 이란 역시 우리에게 우호적이다. 경제적 실익은 물론이고 역사적으로도 오랜 인연이다. 이란에서 한류 열풍도 거세다.

취재 당시 이란에 '대장금' 열풍이 몰아쳤다. '대장금'을 방영하는 금요일 저녁이면 시가지는 적막했다. '대장금' 때문에 서둘러 귀가한 탓이다. 당시 시청률은 90%. 하셈 레지야 이란 국영방송국 관계자는 "10%는 아예 TV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상 이란 국민 전체가 대장금을 봤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했다. 이란인들은 나를 보면 "양금이"를 연발하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양금이'는 '대장금'을 부르는 말이다. 이란사회문화연구소 알리하니 소장은 "대장금에서 보여준 가치관과 정서가 이란과 비슷해 파급 효과가 컸다"고 분석했다.

드라마에서 촉발된 한류 열기는 한국 제품 사랑으로 이어졌다. 한국산 자동차와 가전제품은 엄청났다. 프라이드 베타는 국민차 대접을 받았다. 중산층과 부유층은 소나타와 그랜저TG를 몰았다.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40%대였다. 진출한지 2년 만에 도요다 자동차를 누른 것이다. 가전제품 시장 점유율은 무려 70%였다. 집집마다 LG에어컨, 삼성 파브TV, 냉장고가 채워졌다. 한국 제품을 쓰지 않는 주부들은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했다. LG전자 김종훈 지사장은 "세 집 중 두 집 꼴로 한국 가전제품을 사용한다. 품질, 디자인, 가격 면에서 한국 제품은 압도적이다"고 말했다.

이란과 우리는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비슷했다. 인정 많고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란 영화가 거부감 없는 이유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딘가'는 수차례 봤다. 잔잔한 줄거리는 화학조미료를 뺀 듯 담백하다. 우리 정서와 꼭 맞는다. 이란과는 1300년 역사를 공유한다. 신라 향가 '처용가'와 '쌍화점'에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처용은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이란인으로 추정된다. 페르시아와 신라는 오래 교류했다. 당시 울산 개운포는 국제 무역항이었다.

실크로드를 타고 신라에 도착한 페르시아 인들은 경주 거리를 활보했을 것이다. 신라인들은 그들을 무인상으로 조각하고 신장(神壯)을 세웠다. 경주-울산 국도변에 위치한 신라 괘릉을 지키는 무인상은 그 증거다. 영락없는 페르시아 사람이다. 깊숙한 눈매, 우뚝 솟은 코, 귀 밑에서 턱으로 흐르는 수염까지. 게다가 헐렁한 윗옷과 아랍식 터번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처음 이란 인을 만났을 때 쉽게 끌렸다. 순박한 눈빛에 젖었다. 오랜 교류에서 형성된 공감대가 유전자에 박힌 결과 때문이라고 짐작해 본다.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 서울에는 '테헤란로', 이란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다. 두 도시는 1977년 6월, 자매결연과 함께 명칭 교환에 합의했다. 강남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테헤란로는 경제부국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길이 4km 왕복 10차로에는 금융기관과 IT벤처기업이 즐비하다. 테헤란 '서울로'는 외곽에 있다. 강남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곳도 변하고 있다. 테헤란 시는 서울광장(2002년), 서울공원(2003년)을 지정하며 지속적인 애정을 표했다. 이런데도 이란과 등을 진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서적 유대에다 한국 제품에 대한 높은 충성도, 그리고 한류 열풍을 감안하면 좋은 친구를 잃는 셈이다. 그래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간단하지 않다. 이란 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후예로서 자긍심이 강하다. 만약 우리가 신의를 저버린다면 후폭풍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딘가'는 우정을 그렸다. 영화 속에서 아마드는 친구 집을 찾아 나선다. 숙제 노트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그 순수함을 기억하기에 미국이 촉발한 긴장은 달갑지 않다. 우리는 대만과 단교할 때도 좋은 친구를 잃었던 경험이 있다.

이란은 정규군 35만 명, 이란혁명수비대(IRGC) 15만 명 등 52만 명 규모다.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해군과 무장 경비정을 보유하고 있다. 솔레이마니가 지휘한 쿠드스군은 5000명 정도다. 쿠드스군은 시리아와 레바논, 이라크, 예멘 등 '시아파 벨트'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사이버 공격 등 비대칭 전력에서 우세하다. 미국은 이란이 보유한 미사일 전력을 중동 최대 규모로 평가한다. 이란이 객관적 열세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싸움판이 벌어지면 미국도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우리가 설 곳은 어딜까. 자칫 게도 구럭도 잃을 수 있기에 섣부른 결정을 경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북대학교 초빙교수로 전 국회 부대변입니다.


태그:#솔레이마니 , #하메네이 , #이란, #호르무즈 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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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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