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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살지 않으면 잘못한 것처럼, 나는 실수투성이의 인생을 살아왔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눈치가 없고 조심성이 부족하며 웃음소리가 큰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사회 초년생 시절 술에 취한 팀장님이 본인의 딸 이름을 아냐고 내게 대뜸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크게 웃으며 외쳤다, 다른 이름을. 그리고 틀린 줄도 몰랐다, 다음날까지.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일할 땐 나이가 지긋한 담당 직원분께 '아빠!'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우리는 1분여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어떡하긴, 크게 웃을 수밖에.

잘못했을 때 확실한 대처법은 재빠른 사과다. 실례를 저지르고 뻔뻔하게, 혹은 얼렁뚱땅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면 더 큰 잘못을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죄송한 표정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과 다시는 이런 일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모두 모아,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조아리는 것. 다년간 잘못 사는 인생을 성실하게 유지해온 덕분에, 나는 미안한 마음을 고이 접어 심장 한켠에 늘 간직하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빈틈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틈을 보여줄 때만 만날 수 있다.
 나의 빈틈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틈을 보여줄 때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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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어떤 잘못은 크게 미안하지 않을 때가 있다. 오히려 짜릿하고 신날 때가 있다. 바로 '딱 한 병만 더 마시자'는 말을 반복하는 주정뱅이들의 실언 같은 것들. 약속한 마지막 한 병을 주문한 주정뱅이들은 눈치를 본다. 한 병 더 마시자고 누가 먼저 말하겠지라고. 이 한 병으로 오늘을 마무리하는 건 어쩐지 아쉬운 일이니까. 끝날 때를 아는 사람은 멋있다. 끝날 때를 몰라도 언젠가 끝을 맺는 사람은 올곧다. 끝날 때를 끝까지 미루는 사람은 취한다.

아끼는 술친구들과 함께 술집에서 청하를 마셨을 때도 그랬다. 내일의 출근과 헬스장 PT를 위해 오늘만큼은 취해선 안 된다고. 소주 대신 청하를 살짝만 마시자고. 딱 한 병만 더 마시고 헤어지자고. 하지만 청하를 10병 넘게 마셔버린 우리는 사이좋게 취해버렸고 흥청망청 집으로 돌아갔으며 각자의 다이어트와 출근을 다음날의 자신이 챙겨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슬프게도 믿음과 숙면은 짧았고, 후회는 회사로 달려가는 지하철 안에서 쓰린 속과 함께 덜컹거렸지만.

술친구들은 서로의 이런 실수를 술잔을 넘기듯 잘도 넘겨주었다. 이해해주었다. 자신의 옷에 내가 술을 흘려도 괘념치 않는 사람, 술기운을 빌려 무거운 얘기를 장황하게 털어놓아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 말도 안 되는 주정을 부려도 다음에 또 마시자고 말해주는 사람까지. 이 모든 당신들과 친구가 된 건 술자리에서 내가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나의 빈틈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틈을 보여줄 때만 만날 수 있으니까.

오규원 시인의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시에선 이런 문장이 있다.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때론 잘못 살고 있어서 만날 수 있는 당신이 있다. 그런 당신이 곁에 있다면, 그렇게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지도 모르지만.

태그:#술친구, #시, #술, #오규원,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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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술 마시며 시 읽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을 진행하며 동명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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