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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요가를 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경험하는 요가는 극히 일부분입니다. 요가를 수련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요가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저의 경험을 섞어가며 요가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기자말]
내가 요가를 만나게 된 건 2017년 딸이 입시생으로 수능을 치르고 대학입학 당락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당시 나에겐 몇 가지 막다른 상황들이 한꺼번에 겹쳐 있었다. 우선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직업을 갖고자 모색하던 중이었다. 그때 나는 희곡작가에서 소설작가로 전향을 꿈꾸며 몇 년째 장편소설 하나와 단편소설 서너 편을 끌어안고 공모전 일정을 따라 희망과 절망을 거듭 오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여느 때와는 다른 희망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소설을 쓰고 싶다면 서두르지 말고 평생을 두고 길게 가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소설을 평생의 과업으로 정하고 나니 신기하게 그것만으로도 자신감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 남은 숙제는 그렇다면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평생 소설 쓰기를 뒷바라지해 줄 확실한 직업이 필요했다.
 
 허리 통증 때문에 등록하게 된 요가 센터를 삼 년 정도 꾸준히 다니고 있었다.
 허리 통증 때문에 등록하게 된 요가 센터를 삼 년 정도 꾸준히 다니고 있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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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강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허리 통증 때문에 등록하게 된 요가 센터를 삼 년 정도 꾸준히 다니고 있었다. 허리 통증은 나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했지만 뻣뻣하기 그지없었던 몸은 조금씩 유연해졌고, 무엇보다 요가 동작들이 참 재미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몸 상태로 어떻게 요가 강사를 할 엄두를 냈는지 모르겠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최적화된 요가 수업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대학의 부설기관 혹은 요가협회에서 하는 강사 자격증 코스들을 두루 알아보기 시작했다.

살아야 했지만 삶이 싫었다

참 웃긴 게, 그렇게 돈 벌어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었던 그때, 한편으로 나는 산다는 일 자체가 너무도 싫어서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싫었다'는 말이 정확하다. 힘든 것도 아니고 무거운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었다. 딱 살기가 싫었다. 소설가로 데뷔하지 못한 절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과는 상관없는 영적인 방황이었다.

나는 이십대 중반까지 소위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아무 의심과 고민 없이 하나의 신앙, 하나의 종교로 세뇌된 사람이었다. 나의 꿈과 야망은 모두 종교적인 소명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열정이 오히려 나를 그 신앙에서 빠져나오게끔 만들었던 것 같다.

신의 비밀을 알고 싶어 더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나는 점점 더 목이 말라갔다. 누군가에겐 펑펑 샘솟는 구원의 샘물이 나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믿던 신을 버렸다. 그때까지 내 인생의 모든 시간을 의지했던 신의 품을 떠났다.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내 발로 스스로 걸어 나왔건만 마치 버려진 것 같았다. 앞으로는 아무리 심한 고통이 와도 호소할 데가 없고, 아무리 절박해도 매달릴 곳이 없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지독한 상실감에 못 이겨 다른 종교를 탐구했지만, 내 수준에서 겨우 얻은 삶의 진실이라곤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살기를 강요하고 있는' 잔혹성이었다. 삶이 싫었다. 증오스러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왜 타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삶이라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고3이라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딸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삶이 싫어서 못 견디겠는 마음 또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딸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고기와 채소가 풍성한 밥상을 정성껏 차려주었지만, 나는 자주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울었다.

고3 수험생 엄마, 삶이 싫어서 몸부림치며 우는 인간, 그러면서도 소설을 쓰기 위해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려는 40대 후반의 여자, 이 세 가지가 모두 당시의 나였다.

영혼의 돌파구를 찾아서 

때는 마침 연말이어서 지인들과 의례적인 인사를 문자로 주고받았는데, 거의 연락 없이 지내던 한 선배에게 자신이 지금 태국 코팡안에 있는 세계 최고의 요가학교에서 요가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정말 좋은 곳이니 한 번 와보라는 말도.
 
 태국 코팡안의 해안가.
 태국 코팡안의 해안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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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가 강사 자격증 코스를 알아보고 있다는 걸 알 리가 없는 사람에게서 그런 뜬금없는 얘기를 들으니 우연치고는 희한하다 싶었다. 그가 언급한 그 요가 학교 사이트를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최고의 요가 강사를 양성한다든가, 요가를 통해 건강한 아름다움을 가꾸어보라든가 하는 말은 전혀 없었다. 소개글엔 그곳을 '참된 영혼의 학교(True Spiritual University)'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다양한 과정이 체계적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자아의 발견 (Self-Discovery)' 혹은 '강력한 변신 (Powerful Transformation)'과 같은 표현으로 프로그램의 목표를 소개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손만 갖다 대어도 병이 낫는다든가 기도만 받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든가 하는 사기꾼의 감언이설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겐 엄청난 관심과 흥미를 일으켰다. 운동 삼아 다니던 요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요가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방황하던 나의 영혼이 어쩌면 이곳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2월에 시작하는 약 5주간의 자격증 코스를 발견하고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딸은 몇 군데의 대학에 원서를 넣어 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지만 나는 단호했다. 엄마가 옆에 있다고 떨어질 대학에 붙을 것도 아니고 붙을 대학에 떨어질 것도 아니었다. 통장에 있는 잔고를 모두 털어 요가 코스를 등록하고 비행기표를 사고 태국에서 지낼 최소의 경비를 마련했다.

혹시 딸이 대학에 합격할 경우를 대비해 친구에게 등록금을 빌려 딸의 통장에 넣어주었다. 딸은 흔쾌히 나를 보내주었다. 나중에 태국에서 들은 얘기로는, 대학 합격 발표 날 엄마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딸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난생 처음으로 통장의 잔고를 바닥냈고, 난생 처음으로 친구에게 큰돈을 꿨다. 이상하게도 불안하지가 않았다. 새로운 요가의 세계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설렘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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