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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라고 함께 외친 단체 활동가들과 예술가가 함께 제주로 떠났습니다. 제2공항 예정지에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제주의 모습을 목격하고, 제주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각자의 제주를 마음에 품고, 한껏 느끼고 왔습니다. 제주에 대한 사랑과 아픔을 나눕니다[기자말]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께

저는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에서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오창현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30~40대 청년들이 그렇듯 저도 제가 태어났고, 제 아버지가 태어났고, 할아버지들이 살다 간 오래된 마을에서 늙은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곳 성산은 집집마다 밭들마다 감귤들이 주황색으로 맛있게 익어 마을주민 모두 바쁠 때입니다. 무 잎도 푸르게 커가고 있습니다. 해안가나 습지에는 저어새와 백로와 백학과 재두루미 황새 기러기 청둥오리 할 것 없이 각종 희귀한 철새손님들로 북적거립니다. 

어제는 성산읍 시흥리 해안가를 지나다 말고 새들 구경을 했습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새들이 양어장 앞에서 물고기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들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더군요. 곳곳이 공사 중인 개발의 땅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새들에게 미안해지고 저 새들을 앞으로 어쩌면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퍼졌습니다. 

만약 제2공항이 들어서게 된다면 이 해안선은 비행기들이 드나드는 길목이 됩니다. 수만 년 오가던 철새손님들도 이 곳에 올 수 없습니다. 만약 새들이 기억에 따라 이곳을 찾아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겁니다. 비행기에게 새들은 가장 큰 위협이 되니까요. 오랫동안 이곳 해안가에 자리 잡은 양어장들도 새들이 좋아하는 곳이라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수산초등학교 뒤로 펼쳐진 귤밭
 수산초등학교 뒤로 펼쳐진 귤밭
ⓒ 이매진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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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마을 바로 위로는 어마어마한 소음을 일으키며 비행기들이 들락거리게 됩니다. 농사지으며 소박하고 조용하게 살던 저희 마을 사람들은 비행기 소음에 시달리게 됩니다. 저희 마을에는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70년 전 마을 어른들이 힘을 모아 오래된 성터에 직접 만든 학교입니다. 공항이 들어서게 된다면 저희 마을 수산초등학교는 공항의 북쪽 1km 거리의 학교가 됩니다. 운동장 바로 위로 비행기들이 오가게 되겠죠.

현재 7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공항이 들어서게 되면 폐교가 되고 맙니다. 학교가 폐교가 되면 저희같이 아이들을 키워야하는 젊은 사람들은 마을에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초등학교는 마을의 중심입니다. 중심이 사라진 마을은 젊은 사람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소음에 시달리던 마을 사람들이 떠난 자리엔 상업시설, 공장이 들어서게 되겠지요. 천 년을 이어오던 저희 마을은 그렇게 사라져 갈 겁니다.

 
성산읍 수산리에 위치한 수산초등학교
 성산읍 수산리에 위치한 수산초등학교
ⓒ 이매진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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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을 중심으로 반경 13km까지는 새들의 거처인 습지도 사라져야 합니다. 13Km는 성산읍 뿐 아니라 구좌읍과 표선까지 포함된 넓은 지역입니다. 새들이 좋아하는 과일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됩니다. 저희 마을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는 감귤 농사도 무 농사도 지을 수 없습니다. 새들이 깃들어 살만한 나무들도 사라져야 할 겁니다. 새들이 살지 않는 땅에 사람들은 잘 살 수 있을까요? 저희 같은 농사꾼들이 설 잘리는 없어지고 도시 변두리처럼 호텔들과 식당들 술집들만 남게 되겠죠. 

성주에 사드 기지를 전격 결정하고 배치했던 방식처럼 박근혜 정부는 갑작스럽게 제주2공항 유치결정을 내렸습니다. 저희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원희룡 지사는 저희에게 단 한 차례도 묻지도 알리지도 않았으면서 60회 넘는 공청회를 가져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돈 가지고 들어와 토지들을 싸게 매입해서 비싸게 팔 궁리나 하는 업자들을 앉혀놓고 공청회라고 말하는 도청 공무원들과 거짓투성이의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던 국토부의 거짓말들을 보며 대한민국은 공무원들과 부동산업자들과 관광산업에 투자한 사업자들만을 위한 나라인 것은 아닌지, 저희 같은 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국민들도 아닌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곳은 새들과 안개와 바람과 비의 땅입니다. 그런 곳이 새 공항부지로 선정된 것은 국토부의 조작과 거짓투성이 환경영향평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대대손손 농사를 지어오던 농부들에게 땅을 빼앗고 마을을 빼앗고 주민들을 쫒아내고 그 땅에 공항을 짓겠다는 결정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감사원에서는 반드시 사업진행 전반에 대한 감사를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주가 누군가에게는 관광지이고, 누군가에게는 개발되어야 할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권력을 주는 정치판이고, 누군가에게는 사업 장소고, 부동산이고, 돈으로 보이겠지만 저희 같은 농부들에게 제주는 목숨을 지켜주는 집이고, 질긴 삶을 대대로 이어주는 어머니이며, 씨 뿌린대로 땀 흘린대로 돌려주며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땅입니다. 공항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발로 인해 파괴될 제주는 생각하지도 않고 이익을 생각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삶이고 목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이익과 목숨이 저울 양쪽에 같은 무게로 올려질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정치는 약자들의 편이어야 한다고 농부인 저는 믿습니다. 부디 저희처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십시오.

태그:#수산리, #제2공항, #제주, #수산초등학교, #철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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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은 성장제일주의와 개발패러다임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인간과 자연이 지구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초록 세상의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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