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의 연말 시상식이 한창인 가운데 지난 29일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 SBS 스페셜 >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다 하지 못한 말' 2부다. 

이번 방송에서는 그가 준비하던 사법시험을 그만두게 된 까닭, 아무런 연고도 없던 남미 파라과이로 간 이유, 그리고 제주도에서 장애인 시설을 운영했던 과거와 그곳에서 겪은 아픔이 소개되었다. 또한 전편에서 나오지 않았던 파라과이에서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일, 경북 구미시 산동면 골프장 반대 시위를 통해 환경 문제를 본격 제기한 일 등 그의 정의로운 삶이 소개됐다.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2005년 용현씨는 제주에서 겪었던 간첩조작 사선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에 조사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2005년 용현씨는 제주에서 겪었던 간첩조작 사선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에 조사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 ⓒ SBS


앞선 방송에서는 용현씨가 제주도에서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았던 일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당시 보안대 요원을 인터뷰했지만 진실을 밝히지 못해 시청자들을 씁쓸하게 했다.

당시 산동골프장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효열씨는 인터뷰에서 "옳은 일은 좌절하더라도 끝까지 가서 비록 고지 점령은 못해도 후회는 없지 않나"라고 말하면서 용현씨 덕분에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서홍씨는 용현씨의 현재 상황을 듣고, 눈시울을 붉히며 "참 미안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옳은 일을 위해 끝까지 싸웠던 용현씨의 삶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은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옳은 일을 위해 끝까지 싸웠던 용현씨의 삶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은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옳은 일을 위해 끝까지 싸웠던 용현씨의 삶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은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 SBS

 
지난 6월과 12월 네 차례에 걸쳐 방영된 김용현씨의 삶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53년에 태어난 김용현씨는 1964년 11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다. 그 후 대구 SOS 어린이 마을에서 1호 어머니 최해연씨의 1호 아들로 성장한다. 그는 1971년 18살 중앙상업고등학교 학생회 간부로 교련반대 시위를 주도하다가 대공수사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다.

고교 졸업 후 섬유회사 경리로 3년간 일하던 중 부장의 비리, 횡령 사실을 폭로 후 회사를 그만둔다. 당시 섬유회사 노동자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지켜보며 사법인이 되어 그들의 권익향상에 노력하고자 지리산에 들어가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1981년 전두환 정권에서 과거 민주화 시위 전력을 문제 삼아 사법시험 1, 2차 합격자들을 3차 면접에서 탈락시키자, 결국 자신도 교련반대 시위 경력 때문에 사법인이 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사법고시 준비를 중단한다.

그 후 1982년 제주도로 건너가서 '사랑과 믿음의 집'을 설립하여 장애인들을 돌보는 생활을 시작한다. 땅을 매입해서 건물을 짓기 위해 설계를 하는 등 불우한 이들을 섬기며 살았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군사정부는 대규모 간첩단 사건 조작 등을 통해 군부독재를 정당화했다. 그 당시 외지인이었고, 과거 시위 경력이 있었던 김용현씨는 제주 보안대에 의해 조총련 자금으로 땅을 매입했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 고문을 당했다. 결국 '사랑과 믿음의 집'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용현은 대한민국을 떠나 파라과이로 향했다.

1986년 파라과이 교민회 총무로 한국 교민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파라과이 군부 독재정부에 항거하다가 연행, 처형당했던 수녀의 시신을 군인 몰래 수습해 장례를 치러주는 등 파라과이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접하고, 조국의 현실을 걱정하여 한국으로 돌아와 독재정권 반대 시위에 앞장을 섰다. 그 후 군 의문사 진상조사에 앞장서고, 경북 구미시 산동면 골프장 반대 시위를 통해 환경 문제를 본격 제기하는 등 자신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았다.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2012년에는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등장해 순수한 자연인으로서 삶이 세상에 알려진다.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2012년에는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등장해 순수한 자연인으로서 삶이 세상에 알려진다. ⓒ SBS

 
그는 강원도 정선 봉화치에 터를 잡고 생명존중과 지속 가능한 생태 농업을 실천한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났을 때는 자원활동가로 참사 현장에서 생존자를 구조하기도 했다. 

1999년 정선군의 '토종벌 폐사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도 하였고, 환경농업단체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2005년 자신이 제주에서 겪었던 간첩조작 사선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에 조사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 

2007년 뇌졸중 초기증세가 나타났지만 자연인으로 살아가던 그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2012년에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순수한 자연인으로서 삶이 세상에 알려진다.

2016년 뇌출혈을 일으켜 몸 절반이 마비되고, 그의 이야기가 2019년 6월 < SBS 스페셜 >을 통해 방영되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 후 그의 삶에 감동한 많은 이들의 정성 덕분에 지금은 부산의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그의 삶에 감동한 많은 이들의 정성 덕분에 지금은 부산의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 SBS 스페셜 >의 한 장면. 그의 삶에 감동한 많은 이들의 정성 덕분에 지금은 부산의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 SBS

 
용현, 요한, 씨돌로 살았던 감동적인 그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선배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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