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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카페에서 글을 쓰지 않는다. 아니, 못 쓴다. 시끄럽고 산만해서 도무지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갔다가 삼십 분도 안 돼서 집에 돌아오기 일쑤다. 그런데,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집에 처박혀 혼자 있기 왠지 외롭다. 노트북을 챙겨 들고 아파트 단지 내에 새로 생긴 카페로 갔다.

카페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카페 사장님은 "크리스마스이브라 모두 밖으로 나갔나 보다"라며 나를 반겨준다. 이 작은 카페에는 테이블이 6개 있다. 일단 사람이 없으니 맘 편히 노트북을 폈다. 달달한 자몽차를 주문하면서, 손님이 많이 오면 철수하겠다고 묻지도 않은 얘길 했다. 사장님은 뭔 소리냐며 어디 가지 말고 밖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창가 명품 자리에 노트북을 폈다.

60대로 보이는 여자 사장님은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내게 태블릿을 내밀며 음악을 틀어달라고 부탁하신다. 나는 유튜브로 실시간 재즈 캐럴을 틀었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스피커에서 고급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장님은 매우 만족해하시며, 잠깐 집에 다녀올 테니, 나더러 편하게 있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내밀었다. 나는 얼결에 받으며 손님이 오면 전화하겠다고 했다. 이건 손님인가 알바인가. 사장님마저 나가니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이건 뭐지? 싶었지만 이런 날, 카페에서 글을 쓰는 내 모습이 뭔가 열심히 사는 사람 같아서 혼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 시간쯤 지나니, 화장실에 가고 싶다. 조금만 있으면 오시겠지, 참았다. 두 시간이 지나자 다리가 저절로 꼬아졌다. 카페는 건물 1층에 있고, 화장실은 건물을 빙 돌아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무도 없는, 게다가 속이 훤히 보이는 이 카페에 핸드폰, 지갑, 노트북을 놓고 갈 수도 없고, 컵이며, 원두며 물건들이 진열된 이곳을 열어두고 책임감 없이 나갈 수도 없다.

나 이제 집에 간다고 전화할까? 화장실이 급하다고 전화할까? 내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 죽으란 법은 없다고 손님이 들어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쏜살같이 전화했다. "손님 왔어요!!!" 사장님은 손님 뒤따라 들어오며 "오고 있었어요" 한다. 그 말을 뒤로하고 나는 달렸다.

오수생 아들과 재수생 아들이 있는 집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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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다행스럽게도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여기저기서 동시에 스테레오로 떠들어대는 통에 지쳐 집으로 왔다. 밤새 무엇을 했는지 이제야 일어난 재수생 둘째 아들이 슬금슬금 방에서 나온다. 떡 진 머리는 추노 저리 가라다. 내 옆에 앉더니 반찬이 이게 다냐고 묻는다. 나는 그렇다고 했더니, 아들은 실망스러운 얼굴로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사극에 나오는 노비역의 단역배우 같다.

상을 치우고 내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펴는데, 큰아들이 들어온다. 집 나간 지 3일 만이다. 어쩌다 보니 오수를 한 큰아들은 수능이 끝나자, 얼굴을 보기 힘든 비싼 몸이 되었다. 날마다 나가 놀다가 돈 떨어지면 들어온다. 집에 안 들어오고 돈 보내 달라는 문자를 하도 많이 보내기에 차단했더니 할 수 없이 기어들어 온다. 이렇게라도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엄마의 처절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수와 재수를 한 아들 둘과 같이 사는 나는, 아마도 내 일이 없었으면 화병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수능 점수 발표가 있고, 큰아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점수가 안 나왔는지, 원서를 쓰지 않고 군대를 가겠다고 했다. 점수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작은아들도 점수는 극비를 유지한 채 다행히 인근 아무 데나 가겠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제동을 건다. 아무 데나 가서 졸업하고 뭘 하느냐는 거다. 차라리 군대나 가란다.

나는 아무 데나 가도 되고,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주의자다. 뭐든 해 봐야 아는 법. 남편은 그걸 꼭 해봐야 아느냐는 주의자다. 딱 보면 안다는 무릎팍 도사 스타일. 애들이 오수, 재수하는 거 보니 혹시 우리 집안은 한 가지를 오랫동안 파는 장인 집안인가? 인생 길고 기니 두고 볼 일이다.

큰아들은 부모님 볼 면목도 없고, 되는 일도 없으니 답답한 모양이다. 저 자신도 마음이 천근만근일 텐데 보태고 싶지 않은 나는 일절 대학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니 맘대로 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만 한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둘째 아들에게는 엄마도 뭘 하고 싶은지 사십 넘어서야 알았다고, 벌써 아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저것 해봐야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으니 아무거나 해보라고 한다.

모두 마음에 있는 소리지만, 어쩐지 나도 걱정스럽다. 내 아이들이 사회로부터 도태될까 봐, 부적응자가 될까 봐, 자기 밥그릇도 못 책임지는 사람이 될까 봐. 하마터면 튀어나올 것 같은 잔소리를 가슴에 고이 묻어 놓느라 몸무게가 늘었다.

내 영혼의 소고기는 어디에
 
 작전은 성공한 것 같다. 고기를 먹으며 우린 서로 웃었다.
 작전은 성공한 것 같다. 고기를 먹으며 우린 서로 웃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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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지나고 나면 그 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닌 삶의 무게를. 밖으로만 도는 큰아이도, 집에서 잠만 자는 둘째 아이도, 자기 뜻대로 커 주지 않아 맥이 빠지는 남편도, 아마도 불행하다고 느낄 텐데, 그 속에서 잠시라도 행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행복 속에서도 불행이 있고, 불행 속에서도 행복이 있을 텐데.

고민고민하다가 역시 이럴 땐 맛있는 걸 함께 먹는 게 최고지. 주섬주섬 다시 옷을 챙겨입고 나가 이번 달 인세 받은 거로 꽃등심을 샀다. 단순한 세 남자를 위한 특별식. 고기에게는 미안하지만 고기를 먹으며 잠시라도 불행을 잊기를 바란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모여 같이 밥을 먹는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최고 행복한 시간일지도 모르니까.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는 것처럼 행복할 때는 행복을 모르는 법이니까. 작전은 성공한 것 같다. 고기를 먹으며 우린 서로 웃었다.

다시 연말이다. 작년 이맘때쯤 송년 기사를 청탁받아 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일 년이 흘렀다. 쓰고 엎고, 쓰고 지우고 하느라 제대로 된 대본은 쓰지 못했고, 또 그것 쓰느라 당장 돈이 되는 많은 글을 놓쳤다. 첫 출간 하자마자 이게 웬일이지 싶을 정도로 잘 팔리던 책도 이제는 팔리지 않아 인세도 확 줄었다.

내년 출간 예정인 다른 책도 쓰지 못하고 밀려있다. 글발은 떨어지고 콘텐츠도 바닥이다.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더 가난해졌다. 아이들도 여전히 안개 속이고, 나야말로 내 불행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판이다. 내 영혼의 소고기는 어디에 있는 건지.

또다시 글을 쓰다가 커피를 내렸다. 둘째 아들이 여전히 추노 머리를 하고 내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는 모습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데, 평화롭다. 이만하면……. 됐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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