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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말하기: 대안적 서사의 힘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혐오를 선동하는 가짜뉴스가 유행해왔다. 2018년에 난민 인권이 이슈화 되었을 때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양산되었고,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부정확한 정보와 선동을 담은 가짜뉴스는 교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이런 가짜뉴스가 담고 있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고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대응 활동을 해왔지만, 가짜뉴스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몇 년간 축적되면 이 내용들은 대중 담론에서 서사로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서사는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인권운동에서 정확한 정보와 사실 전달 외에도 당사자들의 '말하기'를 통해 다른 서사를 전달하려는 활동을 지속해왔던 것이다.

대항 액션과 대안적인 서사를 발굴하기
  
2019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진행한 차별잇수다 안내 포스터
 2019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진행한 차별잇수다 안내 포스터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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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1년 동안 진행해온 차별잇수다는 우리가 일상 안에서, 또한 운동 현장에서 실천해온 다양한 대항 액션과 대안적 서사를 발굴하고 그 의미를 찾는 현장이기도 했다.

차별잇수다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잘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진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사회는 소수자들의 폭력이나 인권침해를 다룰 때 사회적 기준에 따라서 정해놓은 '어떤' 피해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기존에 공고하게 자리 잡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피해자다움'이 중첩되면서 더 좁은 자리, 더 한정된 목소리만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런 '피해자다움'을 거부하며 소수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피해경험을 이야기하며 싸워왔고 그 과정에서 사회의 규범과 틀을 부수기도 했다.

차별잇수다에서는 차별의 경험과 당시의 감정뿐만 아니라, 어떤 대응을 했는지 혹은 하지 못했는지, 대응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묻는다. 실제 차별잇수다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면, 사람들은 차별을 겪었을 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응을 해보기도 했고,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시도해보고 싶은 대응방식을 다양하게 생각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가족조사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외국인인데 부모님 이름을 적는 칸이 한글로 세 글자만 쓸 수 있어서 당황했었고 깨알 같은 글씨로 아버지의 이름을 작성해야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보지 못하도록 가장 마지막장에 종이를 놓았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버지 이름을 크게, 칸을 넘어서 작성 했을거야.

- "넌 결혼을 실패했잖아." 내가 이혼했을 때 오빠의 말이 평생 남는다. 그 말에 난 할 말을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이라면 말하고 싶다. 실패가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현재 오빠는 결혼 생활에 만족해?" 라고 되묻고 싶다. 너나 잘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빠하고 싸워서라도 바뀔 수 있는 인식을 바꿔보겠다.

- 예전에 편의점에서 알바 할 때 야간에 일했는데, 손님들 중에 반말하고 돈을 던지듯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분이 나빠서 나도 같이 반말하고 문제 생기면 경찰 부르라고 했다. 실제로 경찰이 와서 영업방해 하지 말라고 그 사람을 보내고 그런 적도 있었다.

대안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

차별잇수다 현장에서 차별을 당한 순간에 되돌려주고 싶은 말과 행동, 실제로 했던 말들과 대항 언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차별의 경험이 어떻게 기억되고, 정리되는지는 개인에게도 중요하고 운동적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대안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건 우리가 스스로 권리를 만들어가는 정치적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많은 법과 제도는 대안적 서사를 이야기해왔던 사람들의 힘이 모여서 만들어졌다.

차별금지법제정이 유예되는 시기가 길어지고, 혐오세력이 점차 세력을 강화하면서 지치기도 하고 우리는 밀리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차별잇수다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개인/집단에서 실천해온 대항적 말하기와 대안적 말하기의 경험을 나누면서 힘을 얻기도 하고 용기가 커졌다. 법/제도화 투쟁을 넘어서 반차별운동의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이 없어서 우리가 차별을/피해를 당했다'는 게 아니라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차별을 겪었고, 어떤 대응을 하고 싶었는데,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이런 시도가 가능하겠다'는 방향으로, 차별잇수다 자체가 대안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08년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올해 7월부터 시행된 직장내괴롭힘방지법의 적용 사례들을 차별잇수다 참여자들과 함께 살펴보는 자리들이 있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말하기가 법 제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한 대항 실천들이 법이나 관련 제도와 만날 때 어떻게 더 힘을 더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2020년에도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다양한 공간에서 차별잇수다 자리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차별의 경험을 같이 듣고, 대항적 말하기와 대안 서사를 발굴하는 시도들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함께 모여서 평등을 잇는 용기를 내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격)월간 소식지 월간 평등업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차별금지법, #대안적서사, #말하기운동, #차별잇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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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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