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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지구 '친애하는 지구' 중에서 설치작품인 분수대와 유령의 모형. 그 주변으로 학살의 현장과 연관된 작은 돌들이 놓여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갈수록 절감하고 있다. 과거의 비극을 경험한 두 도시의 사람들이 겪은 시간과 그 시간의 의미들을 기억하고 생각하기 위한 작업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친애하는 지구 "친애하는 지구" 중에서 설치작품인 분수대와 유령의 모형. 그 주변으로 학살의 현장과 연관된 작은 돌들이 놓여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갈수록 절감하고 있다. 과거의 비극을 경험한 두 도시의 사람들이 겪은 시간과 그 시간의 의미들을 기억하고 생각하기 위한 작업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황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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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광주, 그리고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는 군사쿠데타와 독재 정권에 의해 자행된 학살을 경험하였다. 헬기 사격과 집단 암매장, 바다에 던져진 죽음들. 그 고통을 한 데 모으며 잔인했던 폭력과 불완전한 치유를 담은 전시가 진행 중이다.

성수동의 더페이지갤러리에서는 임흥순 작가의 <Ghost Guide>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두 도시에서 수집한 물질, 그리고 현장의 증언을 영상으로 편집한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역사의 상흔을 하나의 공간에 모았다는 점에서, 시공간을 달리하는 폭력의 공통성과 치유를 위한 연대가 더 쓰라리게 다가온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분수대의 넓은 하단부처럼 보이는 모형, 그 위에 조금은 앙증맞은 유령 형상을 마주하게 된다. 세 개의 빗자루를 얽히게 세운 뒤 얇은 이불을 덮은 설치 작품이다. 5.18 당시 전남도청 앞에 있었던 분수대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분수대에서 40년이 넘도록 진행되고 있는 목요일 집회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의 제목은 '친애하는 지구'이다. 유령의 설치와 가상현실(VR) 영상으로 구성하였다. 분수대 모형의 주변으로는 광주 505보안부대 터와 아르헨티나의 아베자네다 공동묘지(336구의 시신이 발견된 인근)에서 수집한 잔해들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제주의 4.3항쟁 유적지, 오키나와의 한국인 학살 현장, 강원도의 사북탄광 일대와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지역을 포괄하는 20여 개의 돌과 잔해들로 채웠다. 학살과 항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기억하고자 그 자취를 모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좋은 빛, 좋은 공기(Good Light, Good Air)'로 42분의 영상이다. 들어서면 스크린이 양 편으로 마주선 채 설치되어 있다. 왼쪽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른쪽은 광주의 현재를 담았다. 영상 속 증언은 양 스크린에서 번갈아 전개되는데, 마치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착각을 유도한다.

결국 두 도시의 동일성이 강조되며 상처를 배가시킨다. 마지막으로 광주의 뜻에 '빛'이 포함되었다는 사실과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좋은'이라는 뜻이 담겼다는 육성을 들을 때, 도시명이 함축하는 긍정은 상처의 역사를 너무도 가혹하게 만드는 역설로 다가오고 만다.

'좋은 빛, 좋은 공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학살과 고문의 주된 장소가 보여주는 아이러니함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탱고장이 있던 건물의 지하 경찰서였다는 사실, 광주는 바로 병원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낭만과 회복의 장소가 악행의 공간으로 둔갑했던 역사, 우리는 더 이상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탱고와 낭만의 도시로만 연상할 수 없게 되었다.

작가 임흥순은 다큐영화 <위로공단>으로 지난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으로 받은 폭력과 학살의 피해를 받아온 층위, 특히 여성, 탈북민을 비롯한 역사적인 사건을 포착해왔다. 이번 전시도 그 연장선이라 할 것이며, 여전히 진행 중인 아픔의 연속성을 담아내고 있다.

전시는 아픈 역사를 교집함으로써 잔인했던 폭력을 더 아리게 만든다.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지는, 유령이 된 망자들을 불러내며 상처의 역사로 현재가 규정되는 사람들을 시대가 보듬어야만 한다고 다시금 각성시키고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공유한 학살의 상처는 고 김남주 시인의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전문을 실어본다.
 
<자식 때문에 어머니가>

상복을 입은 여인들이
광장의 분수대를 돌고 있다
저마다 가슴에 사진을 하나씩 껴안고
분수대를 돌고 있는 여인들은
팔을 치켜들고 뭐라고 뭐라고 외치기도 하고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울기도 한다

저 여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
철모와 방패에 포위된 채 분수대를 돌고 도는 저 여인들은
우리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주고 있는 민가협의 총무간사가 설명한다
쿠데타에 자식을 빼앗긴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이라고
살려내라 살려내라 우리 자식 살려내라 외치고 있다고
권력에 굶주린 늑대들에게
자식을 빼앗긴 아르헨티나 어머니들
살해된 자식들 가슴에 묻고 애통해하는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
나는 보았다 나는 보았다 저와 같은 어머니들을 대한민국에서도
광주에서도 보고 서울에서도 보았다
감옥의 담벼락에서도 보고 법원의 뒷골목에서도 보았다
안기부의 정문에서도 보고 보안사의 후문에서도 보았다
폭력의 하수인들이 지배계급의 생명과 재산 지키고 있는 곳이면 그 어느 곳에서도 보았다

철모와 방패의 포위 속에서
살해된 자식을 살려내라 외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이여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우리 자식 살려내라 외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여
그러다가 개처럼 두들겨 맞고
그러다가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쓰레기처럼 아무데나 버려지는 두 나라의 어머니들이여
언제쯤이면 아 언제쯤이면 자식 때문에 어머니가
상복을 입고 흐느껴 우는 시절을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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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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