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졸업> 포스터

영화 <졸업> 포스터 ⓒ 미디어나무


상지대는 한때 사학비리의 대명사로 불렸다. 1972년 교육부는 원주대에 김문기 등 임시이사를 파견하고 1974년 김문기는 상지대로 이름을 바꾸고 이사장에 취임한다. 이후 김문기가 교비 횡령과 부정 입학을 자행했고 학내에선 김문기 퇴진 운동이 벌어졌다.

1986년 학생들이 전임강사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자 김문기는 학교 기획실장에게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불온 삐라'를 뿌리게 한 뒤 시위대를 간첩으로 모는 만행을 저질렀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김문기가 부정 입학 등 혐의 등으로 구속되며 상지대 분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2010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구 재단 쪽 인사의 이사회 복귀를 허용하며 상지대는 재차 김문기 손아귀로 넘어간다. 2014년 3월 김문기의 둘째 아들인 김길남이 이사장으로 선출되고 8월엔 김문기가 상지대 총장으로 돌아왔다. 김문기가 학교에 복귀하자 상지대 구성원들은 투쟁의 불을 지폈다. 다시금 불타오른 비리 사학 퇴진 운동은 2015년 상지대 이사회가 김문기를 해임하며 끝이 났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영화 <졸업>의 한 장면 ⓒ 미디어나무


영화 <졸업>은 21년 만에 총장으로 복귀한 사학비리의 원흉인 김문기를 학생, 교수, 교직원 등 학원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2015년 몰아내기까지의 지난한 투쟁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연출을 맡은 박주환 감독은 2009년 상지대 재학 시절에 김문기가 학교에 복귀한다는 소문을 듣고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박주환 감독은 농성 투쟁을 시작한 학생, 교수, 교직원들과 한 달간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은 1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지역 방송을 통해 상지대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이걸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했던 박재환 감독은 2010년 국토 순례 도중에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접한 후 생각을 바꾼다. 그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리던 건물 앞에서 학생, 교수, 동문의 항의하며 시위하는 장면 속에서 알지도 못하는 또래의 학생이 길거리에서 울부짖는 모습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 박재환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상지대 민주화 투쟁 과정을 생생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영화 <졸업>은 2011년 상지대학교 부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한 이승현, 감독이면서 2012년 상지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박주환, 2014년 상지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낸 윤명식, 2015년 상지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전종완으로 계속된 학원 민주화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들은 1인 시위, 단체 농성, 거리 행진, 삭발, 단식, 수업 거부, 졸업식에서 유인물 뿌리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투쟁에 나선다.

때론 교수에게 뺨을 맞고 모욕적인 말도 듣는다. 무기정학 등 징계도 받는다. 단식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거나 36일간 진행한 수업 거부를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낼 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특히 좌절한 총학생회장이 학교 옥상 난간에 올라 절규하는 모습에선 미안함마저 든다. 이들의 요구는 단 한 가지. '학교다운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뿐이었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영화 <졸업>의 한 장면 ⓒ 미디어나무


비리 재단에 맞선 학생들, 교수들, 교직원들의 행동과 감정을 겹겹이 쌓아가는 <졸업>은 기나긴 투쟁사를 담은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또한, 뜨거운 감정을 보는 이에게 전달하는 이미지로서의 힘을 가진다. 거대한 힘에 맞서 투쟁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정의와 용기, 희생과 연대의 의미는 빛을 발한다.

<졸업>은 부당한 사학 재단에 맞선 투쟁의 시간이다. 동시에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가 겪은 야만의 시간이기도 하다. 상지대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사학의 족벌 경영을 타파하고 학내 구성원의 영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립학교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장외 투쟁까지 불사한 한나라당의 반대로 인해 법안은 개정 이전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그렇게 탄생한 사학분쟁위원회는 김문기가 상지대에 복귀하는 길을 터줬다.

학교가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아닌 공공성의 역할에 우선해야 함에도 "학교 재단은 실질적 사유재산"이란 판결로 비리 재단의 손을 들어주었던 장본인은 사법농단의 주범 양승태다. 우리 사회가 지난날로 돌아갔기에 그 나비효과로 인해 상지대도 과거로 회귀했다.

상지대는 지난 10년의 대한민국을 축소한 풍경과 다름이 없다. 이들의 시간은 곧 대한민국의 시간이었다. 상지대의 투쟁 모습에서 용산 참사, 쌍용차 대량 해고 사태 등 지난 10여 년의 비극이 겹쳐지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영화 <졸업>의 한 장면 ⓒ 미디어나무


'졸업'은 하나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영화 <졸업>은 제대로 된 졸업을 하지 못했던 이승현, 박주환, 윤명식, 전종완이 자신만의 졸업 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들은 투쟁으로 얼룩진 과거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미래란 출발점에 선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촛불혁명으로 지난 10여 년의 어둠을 걷어냈지만, 사학법 개정 등 더 나은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다.

<졸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으리란 믿음의 서사이며 약속이다. 박주환 감독은 말한다.

"10년간의 싸움 속에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내'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동료를 위해 증오했던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걸 보면서 '헌신'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런 것들이 모여 이 사회를 움직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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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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