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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은 송천초등학교가 지난 10월 학교 관계자와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은 송천초등학교가 지난 10월 학교 관계자와 동문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 바른지역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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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백성이 아니라 자주국의 국민임을 선언했던 1919년. 용인 남부권 끝자락 유서깊은 고장 이동읍에선 향토사에 빛나는 또 하나의 출발이 있었다. 학문의 배움터 송전공립보통학교 설립이 그것이다. 용인 송전초등학교(교장 가재열)가 용인에선 양지초, 신갈초, 용인초, 백암초에 이어 5번째로 100년 역사를 맞이했다. 송전초교가 오늘에 이르기까진 여러 사람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고 적지 않은 우여곡절도 겪었다.

학교 부지는 송전과 어비울 등 고향을 누대에 걸쳐 지켜 온 주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이뤄졌다. 이창무, 김성기, 이현빈, 조기봉, 홍순필, 홍성표, 김영식, 박태업, 오인영, 이병두, 윤성오 등이 그들이다. 특히 이창무 선생은 1만2250평에 달하는 통 큰 기증을 했다. 

학교 설립에 앞장 선 이는 심죽 신현정(1882~1972) 선생이다. 이동읍 천리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인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학교 현장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이로 가히 '용인 근대 교육의 아버지' 라 불릴 만한 분이었다. 용천초등학교 모태가 되는 적동학원, 용인여자중학원(용인중 전신, 1947년) 설립도 그의 손을 거친 민족혼의 결실이었다.

해방 후에는 용인의 대표적 사학명문 태성학원(태성중·고등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송전초교는 1922년 5학급 편제가 되면서 6년제 인가를 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태동기(1919~1920년)에는 작은 교실 3개와 일본인 교장으로 첫 발을 디뎠다. 해방되던 해까지는 수난기에 해당한다. 당시 일본 총독부의 식민정책은 일본어를 적극 권장하고 우리글과 말을 억압하던 때였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지만 한국전쟁으로 교사가 파괴되는가 하면 비품, 주요 문서, 장부 등이 분실되는 피해를 입어 역사자료의 단절을 겪는다. 이때가 격동기다. 송전초의 소생기는 1955년부터 1970년대 말까지라 볼 수 있다. 다소간 부침은 있었지만 경제개발계획으로 지역발전에 힘입어 학교여건도 나아졌다. 한편으론 저출산과 도시권역 전입으로 교실이 남아돌아 병설유치원 시설로 활용하던 때도 이 시기다. 

8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기를 걷고 있는 송전초교는 우수한 인재 양성에 힘써 97회에 걸쳐 832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또 100년의 역사 속에 많은 인재들을 양성했다. 제5대 정보통신부장관과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남궁석 장관이 29회 동문이다. 

마침내 올해 100년을 맞이한 송전초등학교 동문들이 지난 7일 대강당에 모였다. <송년초교 100년사> 출판기념회와 동문송년회를 겸한 자리였다. 이날 조창희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48회)은 "소중한 역사와 아름다운 추억들은 100년의 정거장에 고히 간직하고 다시 100년의 긴 여정 속으로 출발하는 원년으로 삼자"며 자축했다. 한편 송년초 학교관계자와 동문들은 지난 10월 10일 교정에서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을 가진 바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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