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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섬뜩하다. 그러나 지방이 소멸되는 일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여러 지표와 사회현상으로 이를 입증코자 하는 연구발표와 보도가 있지만, 그것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해하지만, 그 논리를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른바 지방 소멸 불가론을 제기하는 바이다.

지방 소멸의 근거는 인구감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출산율 저하와 고령인구의 증가다. 가임 여성이 큰 폭으로 준다는 것과 경제활동인구 감소와도 연결해서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은 원래 2011년에 일본 국토교통성이 <국토의 장기 전망>에서 처음 사용했고 2015년에 일본 마스다 히로야(増田寛也)라는 도쿄대 교수가 퍼뜨려 위기의식을 높인 바 있다. 이러한 위기론은 종합적인 지구환경 측면에서나 인류 문명사적으로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 현실에 비추어봐도 그렇다. 그 사실관계는 바로 드러난다.

우선, '지방 소멸 위험지역' 설정의 비과학성과 지나친 임의성이다. 20-39세 가임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눠 산출한 지수가 0.5 미만이면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방 소멸 위험지역 군에 드는 지수가 있다면 당연히 지방이 소멸되는 지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우리의 지방자치법에도 그런 용어는 없다. 0.5 미만의 지수가 되면 살기 힘들어진다는 근거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이 개념에서는 '지방 증가 지수'라는 희망의 표본은 있을 수가 없다. 위기를 강조하는 것만이 목적인 듯싶을 정도다.

만약 그 의도가 행정구역 수의 감소나 통폐합에 관한 것이라면 굳이 '소멸'이라는 위협적인 단어를 쓸 일이 아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이 있으면 행정상 통폐합될 수도 있고 인구밀도가 낮아짐에 따른 정치적·행정적 대응을 하여 다른 방식의 삶을 설계하면 되는 일이다. 여러 이유들로 행정구역 통폐합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이 지수를 놓고서 <한국고용정보원>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와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30년 뒤면 우리나라 지자체의 1/3이 소멸되니 어쩌니 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물론, 이런 언설들이 출산율 저하에 따른 정책적 대응을 요청하는 것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경제활동인구 감소 현실에 대한 우려라는 것을 안다. 따라서 다음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방 소멸 불가론의 두 번째 이유가 되겠다.

지구 생태계의 적정 인구는 얼마인가. 한국의 적정 인구는?

인구수에 관한 얘기를 해 보자. 한국의 적정인구는 얼마라고 보는가? 지금처럼 출산율 높이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며 출산을 독려하는 정책 당국에게 한국의 적정인구를 얼마로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1983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 인구가 4천만 명을 돌파했다. 당시의 산아제한 구호가 생생하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거나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었다.

남한의 현재 인구는 모든 측면에서 과잉이다. 이 땅에서 나는 것으로 현재의 5,170만 명이 먹고, 쓰고, 입고 살 수가 없다. 다른 나라의 자원을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 한계에 직면한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 생태계에 부담을 주는 영향에 대해 '생태발자국'이라는 개념의 수치로 표시하고 있는데 1인 기준으로 한국은 기준치의 3.3배다. 그만큼 인구 과밀현상과 과소비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70억 지구인이 한국인처럼 생태자원을 소비하면서 산다면 3.3개의 지구가 필요한 셈이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가 발표한 "한국 생태발자국 보고서 2016"에 나오는 얘기다.

2031년까지는 한국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출산율 저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인구 조절 과정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전쟁이나 끔찍한 재해보다 출산율 저하가 인구 조절의 평화로운 연착륙 과정이라 보는 것이다. 한국은 더 그렇다. 이 현상을 수용하고 이를 전제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출산율 높이기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방 소멸 문제가 단순한 인구수 얘기가 아닌 것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그러면 세 번째 이유를 말할 차례다. 노령화 문제를 다뤄 보자. 경제활동인구 감소도.

전문가들이 인용하는 통계수치는 맞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 고령사회로 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십몇 년간의 통계만 인용하며 이 사실만 강조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양심불량이라고 본다. 2년 전 나는 구례 자연드림에서 열린 농촌인구 노령화 대책 포럼에서 이 점을 발표한 적이 있다. 아래에 그 근거를 제시한다.

저 출산 세대들이 이미 사회의 청·중년층으로 되고 있다. 평균수명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그들이 언젠가 노년층으로 진입하면서는 노령화 비율이나 가임 여성과의 지수가 낮아질 것은 명백하다.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빠르게 대체할 것이다

일본의 통계를 보자. '일본 내각부'에서 나온 <고령화 사회 백서> 2016년도 통계다. 이를 보면 노령화 증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2000년도에서 20년까지는 노령화 증가율이 11.7% 지만 20년에서 40년까지는 7%이고 다시 60년까지는 3.7%에 불과하다. 저 출산 세대도 나이를 먹는다는, 너무도 명료한 사실을 드러내주고 있다.

경제문제와 노령화, 1인 가구 증가, 경제성장률 둔화 등 많은 부분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18년 통계청의 <고령화 통계>를 보면 고령화 지수가 2020년에서 40년까지는 근 3배가 증가하지만 40년에서 60년은 기껏 1.3배 증가에 그친다.

전문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인구 피라미드' 그림들도 문제가 있다. 3-40 년 전의 완전한 피라미드 형태를 보여주고는 중간 연령층이 불룩한 항아리 형 그림에 이어 고려청자와 같이 위쪽의 노령인구가 가분수 꼴인 그림까지만 보여준다. 만약 그다음 연도의 그림을 추론하면 거의 평행의 사다리 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런 그림은 안 보여준다. 인구수에 따른 사회경제적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분석하려면 그런 그림도 같이 놓고 얘기하는 것이 옳다. 치매문제 토론장에서도 종종 목격한다. 비선형적인 치매 인구 증가를 보여주는데 정작 노인인구 증가라는 모 집단의 크기를 놓고 치매 유병률을 말해야 함에도 치매 노인 인구 증가만 얘기하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생산연령인구 얘기를 해 보자. 15-64세의 생산연령인구 비율을 가지고 이들의 총 부양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걱정들 한다. 이 역시 인용하는 숫자는 맞다. 하지만 곧장 큰 위기가 닥친 것으로 진단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지방 소멸 지수보다는 기본소득과 행복 지수에 관심 가져야

요즘은 70세가 되어도 경제활동이 가능하다.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의 다른 측면이다. 실제의 경제활동 연령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청년 실업문제를 같이 떠올려보자. 경제구조가 바뀌고 산업 형태가 변하기 때문에 앞으로 일자리 총량은 더욱 줄어든다. 4차 산업 혁명으로 운위되는 경제구조 변화 속도는 더 빨라진다.

경제성장의 미신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사람이건 경제건 성장만 할 수 없다. 성장만 한다면 병증이다. 성장이 일정 정도 되었으면 '성숙'으로 가야 한다.

고속도로 수금원들이 추석 때부터 일자리를 잃고 지금껏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이 같은 노동자들의 절규는 계속될 것이다. 생산 가능 연령 문제를 가지고 위기 운운하는 것은 넌 센스라 할 것이다. 고용과 취업률 중심의 생활 안정 대책에서 이제는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과 소득 불균형 해소, 불로소득 상한제, 토지 공유화 등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이처럼 지방 소멸 논리들은 따지고 보면 매우 부실하다. 위기를 증폭시켜 가지고 만드는 정책들은 문제가 있다. 인구수가 경제성장에 요긴한 변수라는 것은 전 근대적 사고다. 연령별 인구 분포 역시 과장된 측면과 함께 위기를 조장하는 분석들이 많다. 직업이 사라지고 노동의 종말이 운위되는 시대에 맞지 않다. 오죽하면 출산장려금만 받아먹고 이사를 가서 위약금을 받아내기 위해 공무원이 쫓아 다니는 '먹튀'현상까지 생길까. 지자체 간의 주민등록상 인구 수 늘리기 경쟁은 분쟁을 낳기도 한다.

집값 잡고, 물가 안정시키고, 사교육 없애고. 경쟁 사회 완화하고. 복지 사각지대 줄이는데 집중하여 논거조차 부실한 지방 소멸 지수 말고, 행복지수, 소통지수, 배려 지수, 평등 지수 등을 만들어보자. 귀하게 낳아서 공들여 키우면서 세계 자살률 1위 사회를 두고는 출산을 장려하기에 낯 뜨겁다.

중앙 교부금 예산 확보와 지방 공무원 숫자 유지, 지자체의 물질적 외형성장 추구, 산업예비군의 일정한 유지 등의 의도를 의심받는 지방 소멸 얘기는 그만했으면 한다. 요즘 농민기본소득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논의도 활발한데 한 발 나아가 기후 폭동과 쓰레기 몸살 대응 정책으로 '생태 삶 기본소득'을 만들어 자가용 버리고 자전거 타는 사람. 가전제품 안 쓰거나 적게 쓰는 사람. 재활용과 재사용 물건만 쓰는 사람이나 그런 지자체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면 어떨까. 인구수에 매달리기보다는 삶의 질 중심의 성숙한 사회를 더 꿈꿔 보는 것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이 신문에 실릴 때는 200자 원고지 8.5매 분량이었으나 더 많은 자료와 통계에 기초하여 25매 분량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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