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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3일, 1056명의 동성커플들이 동성혼· 동성파트너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진정을 신청했다. 이 사건 진정을 대리하는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가구넷)는 5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진정의 취지 및 혼인평등의 필요성과 의미를 짚어본다. 오래전부터 가족으로 살아온, 가족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들 모아 가족을 구성할 권리, 유지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재고해 본다. -기자 말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두 여성 친구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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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이야기

커플의 집안 곳곳에 둘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파트너의 지병을 걱정하며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밥을 차리고, 출근을 위한 새벽 운전을 걱정합니다. 휴가 일정을 맞춰 여행 계획을 짜면서 의견 차이로 다투기도 하고, 명절에 양가 부모님 댁을 어떻게 방문할 건지 논의합니다. 이사는 벌써 5~6번 함께한 것 같고, 약 2년 전부터는 각자의 소득을 합쳐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의료보험 직장가입자의 파트너는 피부양자가 될 수 없고, 자동차보험도 각자 가입했습니다. 또 병원에 입원할 일이라도 생기면 보호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며, 갑작스러운 사고가 닥칠 경우 상속 문제 등을 해결할 방법도 고민해야 합니다. 이 둘은 레즈비언 커플입니다.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아래 가구넷)는 지난 6월, 동성 동거 커플 차별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 참여자들은 주거, 의료, 사회보험 및 연금, 직장, 상속, 재생산권(임신·출산) 및 입양 등의 주제에 관해 답했습니다. 설문지 완성 전 산골짜기 커플에게 설문 테스트를 부탁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이랬습니다.

"워낙 제도적으로 보호 받는 게 없다 보니 뭘 차별받는지도 몰랐던 거 같아. 자꾸 차별받은 거 없냐고 물어봐서... 답하려니 그게 더 슬퍼."

설문에 답을 하다 보니, "이게 다 차별이었구나를 새삼 느꼈다"는 겁니다. 380여 명이 설문에 응답했습니다. '가족'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10년, 17년 함께한 아주 오래된 커플부터 1년 차 기념일을 챙기는 풋풋한 신혼 부부, 성별정정 전의 트랜스젠더와 그의 파트너도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따뜻함과 끈끈함도 담겨있지만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불편함과 서러움도 가득합니다. 이들은 가족이 되기 위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 토대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막연한 불안, 보이지 않는 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동성커플은 주거 비용을 1인 명의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고, 대출 한도 등에 제약이 많아 일반가구에 비해 자가 비율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주거 정책이 법적으로 인정된 신혼부부만을 중심으로 짜여져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의료영역에서는 가족관계를 인정받지 못해 생사의 기로에 선 파트너를 위해 수술 동의서 등에 사인을 하는 '보호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또 사회 안전망인 보험제도에서 배제돼, 직장가입자의 동거 중인 파트너가 피부양자로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지역가입자로 별도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직장 내 '가족' 위주의 복지제도 하에서 차별은 더 두드러집니다. 경조사·휴가 비용이나 가족수당은 남의 일이며, 연말정산 소득공제에서 불이익도 감수해야 합니다.

파트너와 사별한 경우, 남겨진 파트너의 지위는 십수 년 떨어져 지낸 혈연가족보다 후순위로 밀려나 장례를 치르거나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거나 기르고자 하는 이들도 있지만 임신·출산·입양이라는 부모가 될 권리는 상상도 어렵다는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설문조사를 통해 국가와 제도가 동성·동거 커플의 배제를 전제로 계획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불안과 위기는 그저 막연한 짐작이 아니라 '동성혼 배제'라는, 실체가 분명한 '차별'에서 비롯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가구넷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집단 진정을 준비했습니다. 전국에서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동성혼·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집단진정 기자회견  2019. 11. 13. 동성혼·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집단진정을 알리기 위해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와 성소수자부모모임 등 성소수자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지지자들이 국가인권위 앞에 모인 모습.
▲ 동성혼·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집단진정 기자회견  2019. 11. 13. 동성혼·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집단진정을 알리기 위해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와 성소수자부모모임 등 성소수자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지지자들이 국가인권위 앞에 모인 모습.
ⓒ 가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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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는 누구의 몫인가

11월 13일 1056명의 진정인들을 대리하여 가구넷은 인권위에 집단 진정 신청을 냈습니다. 집단 진정을 통해 동성혼 및 파트너십 관계를 사회제도에서 포섭해야 할 필요성을 인권위가 직접 살펴보고, 차별 인정 및 제도 개선을 권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28개국에서 동성혼이나 동성 간 파트너십이 법제화되었고, 올해 5월 아시아 최초로 대만에서 동성혼을 보장하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쿄 시부야, 세타카야 구를 포함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 파트너십 등록 제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조차 동성커플을 인정하는 제도가 없는 소수의 나라 중 하나입니다.

국내에서도 이미 동성 커플의 혼인 신고 불수리에 대한 소송이 진행된 바 있고, 외국에서 혼인 후 재입국하는 내국인 커플 사례, 내국인과 외국인 배우자의 사례 등이 존재합니다. 또, 주한외교관의 동성파트너를 배우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 등 다각적인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인권위를 포함한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정부는 더 이상 이에 대한 답변을 미뤄선 안 됩니다.  

고립된 '가족'을 넘어선 상상

동성혼에 대한 공적 인정은 성소수자 자신의 자긍심은 물론 그들이 속한 사회 구성원의 인식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성소수자의 가족, 성소수자의 가족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을 지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고 다양성 존중과 평등을 위한 용기를 내도록 도울 것입니다.

한편으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는 '가족'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들과도 함께 이어져 왔습니다. 여러 인권 영역에서 이성애 중심적 제도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혈연 중심 가족, 한부모 가정, 이주배경 가족, 탈시설 장애인자립생활, 다양한 연령대의 1인 가구 등 공동체의 기본 단위를 재정의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지지가 필요한 다양한 '가족들'을 위해, 많은 이들이 사회적 가족 지원을 위한 기본조례, 생활동반자법 등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시도들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는 '변화의 시기'를 앞당기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동반자관계인증조례 공동공약 발표 2018. 5. 21. 외국에서는 다양한 공동생활체가 보장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의 동반자관계인증조례가 도입되고 있다. 지난 해 서울특별시 동반자 관계 증명 조례 제정을 위한 녹색당-정의당 공동 공약 발표를 가구넷 활동가가 지지하는 모습.
▲ 동반자관계인증조례 공동공약 발표 2018. 5. 21. 외국에서는 다양한 공동생활체가 보장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의 동반자관계인증조례가 도입되고 있다. 지난 해 서울특별시 동반자 관계 증명 조례 제정을 위한 녹색당-정의당 공동 공약 발표를 가구넷 활동가가 지지하는 모습.
ⓒ 가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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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나중에'만 외치나

안타깝게도, 최근 인권위는 동성애 비하·혐오표현을 문제 삼지 않고 판단을 회피하는가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또, 일부 국회의원들은 인권위법상 차별금지 사유에서 성별정체성은 양성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고 성적 지향은 삭제하는 내용의 인권위법 개정안을 발의해 입길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차별과 혐오를 적극 조장하려는 움직임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혐오발언, 혐오 보도나 광고가 대중에 노출될 때, 혐오범죄가 늘어나고 10대 성소수자들의 우울과 자살 상담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고 합니다. 차별금지법 등 제정으로 혐오와 차별이 규제되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성소수자와 그 가족, 지지자들을 고립시키고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다양성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왜곡된 편견을 퍼뜨리는 낮은 인권 감수성이 문제의 원인입니다. '시기상조'를 운운하며 두고 보다간 너무 늦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가구넷(http://gagoonet.org)은 향후 인권위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관련 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백소윤씨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소속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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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공익인권법재단공감 소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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