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이렇게 많은 직업을 체험한 것은 인생의 진로에서 큰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직업을 체험한 것은 인생의 진로에서 큰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직업이라 무엇일까. 말 그대로 하면 생계를 위해 일정한 계약 관계 속에서 하는 노동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사용자 중심의 말 같다.

'나는 평생 단 하라도 노동을 해 본 적이 없다. 일하는 그 자체가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 에머슨'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다. 일이 의무라고 생각하면 인생은 지옥이다.' -고리키'

일을 억지로 하지 말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하라는 명언들이다. 좋은 말이지만 이 말에 공감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1995년 가을, 대학 4학년이 되면서 나에게도 직업 선택의 시간이 왔다. 막 입학해서는 가르치는 데 관심이 있어서 대학원 준비반에 갔다. 일반학과 대학생에게도 정원의 30%씩 주어지는 교직 또한 신청했다.

궁극적으로 둘 다 중도에서 포기했다. 대학 교수를 꿈꾸기에는 내 실력이 부족했고, 대학 교수가 되는 과정도 맘에 들지 않았다. 몇 학점만 더 들으면 교직 이수가 가능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자신감도 없었다. 국어국문학과를 다녔지만, 남들을 가르칠 정도로 국어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선택한 길이 기자였다. 1995년 10월쯤 첫 직장인 미디어오늘에 합격해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나의 직업 세계는 좀 복잡하다. 우선 글을 쓰는 펜 기자로서 경험한 매체는 첫 직장인 미디어오늘, 문학웹진 문예평론, 금융정보통신신문이었다.

1999년 중국으로 건너가서는 중국경제신문, 오마이뉴스는 물론이고 국내 상당수 매체에 이런 저런 인연으로 기고를 했다. 1999년 귀국해서는 인민일보 한국대표처 국장으로 주간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이밖에도 무역신문 등에 연재글을 썼으며, 2017년에는 중국 전문 월간지 차이나리뷰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기자와 한 매체를 총괄하는 편집장은 일하는 분야가 같지만 일하는 방식이 좀 차이가 있다. 특히 최근 매체 편집장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세번째 직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방송 쪽 일이다. 처음에는 YTN 영상통신원으로 시작했고, 그 다음에 KBS 영상통신원을 했다. 이후 한국 방송사들의 중국 방송이 진행될 때 현지에서 협조하는 방송 코디네이션 일을 시작했다. 나 혼자로는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유학생 가운데 10여 명을 선발해 같이 팀을 만들어서 했다.

방송에 관여하면서 내가 직접 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임시정부 2만리 길을 가다'라는 다큐를 기획 제작해 KBS에서 방송했다. 1999년 귀국해서는 한신대학교에서 '다큐 제작 실습'을 2년 정도 강의했다. 직업이 피디였다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경험을 통해 피디라는 직업의 상당 부분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내가 존경하는 정길화 선배의 인터뷰를 통해 부족한 면을 채울 계획이다.

네번째 직업은 경영자였다. 2004년 1월 나는 서울과 베이징에 중국 전문 여행사를 창업했다. 자본금이 거의 없이 시작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어느 정도 괘도에 올랐다. 하지만 경영자가 되기에 나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사업으로서 여행사는 아내에게 맡긴 채 나는 거의 관여하고 있지 않다.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자력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정직한 방법으로 성공한 사업가만큼은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가는 크든 작든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하는 리더니, 존경을 받는 게 마땅하다.

다섯번째 직업은 작가다. 2001년에 나는 첫 책 '알짜배기 세계여행 중국'을 출간해 3번 정도 리뉴얼했다. 이후에는 일 년에 한 권 정도씩은 책을 출간했다. 더러 팔리는 책도 있었다. 14권의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 작가다 되지 못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도 출판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작가들의 세계에 근접해 있다. 내 이야기는 타산지석으로 삼고 일반적인 작가들의 이야기를 찾는다면 작가에 대한 탐사를 충분히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직업은 교수다. 시간강사로도 불리는 외래 교수를 직업으로 쓰기는 면구하지만 나는 가르치는 일에 흥미가 있다. 잘나서가 아니라 지식을 나누고, 그것을 발전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대학 입학 후 교수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고, 교사 자격증을 받으려는 시도도 했다. 2년여의 짧은 외래 교수 경험이었지만 가르치는 직업에 대한 특성을 좀 안다고 생각한다. 귀국 후에는 대부분의 직업군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으니, 강의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로서의 세계도 이야기한다.

일곱번째 직업은 공무원이다. 난 일반 공무원을 말하는 '늘 공무원'도 아니고, 정치적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어공'(어쩌다 공무원)도 아니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역할을 하는 전문직 공무원으로 5년을 보냈다. 전문직 공무원은 우리나라에서 숫자도 적지 않고, 나름대로 독특한 직업 체계를 갖고 있다. 명확한 역할도 있고, 자존감도 있다. 일정 기간 계약을 하는 만큼 일자리를 잃을 위험은 있다. 하지만 어지간하면 그런 일은 없다. 반면에 상황에 따라 휠씬 바른 퀀텀 점프도 가능하다. 전문 공무원 이야기와 더불어 일반 공무원의 세계도 같이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여덟번째 직업은 기업 임원이다. 굳이 임원이라고 특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가장 최근에 경험한 직장 생활은 일반 기업의 일이나 미래를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일한 기업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기업이지만 사업 영역도 넓고,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분명한 성과를 내야하는 임원으로서 나를 볼 수 있었고, 조직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따라 성과가 나올지 등을 판단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온전하게 내가 일한 기업 이야기를 쓰지 않고, 내가 만나는 지인들의 전반을 통해 기업의 직원이나 임원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볼 생각이다.

아홉번째는 각종 교류단체나 조직을 꾸려가는 네고시에이터로서 나를 돌아본다. 나는 10여개 정도의 모임에서 나름대로 중추적인 역할을 해가면서 살아간다. 사회는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결국 만나는 사람들이 만나는데, 그 역할을 통해 이 사회에서 소통하는 사람으로서 역할에 관해서 정리해본다. 이 일은 협상가라고 하는 네고시에이터이기도 하고, 컨설턴트이기도 하다.

내 경험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길

내가 이렇게 많은 직업을 체험한 것은 인생의 진로에서 큰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계기는 1999년 중국행과 2008년 갑작스런 귀국이다. 거기에 2007년 2월말 배치가 결정된 사드 또한 내 직업 세계를 흔든 계기였다. 사드로 인해 한-중간 다리를 놓은 역할을 하자는 내 구상은 좌절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길고, 짧은 휴지기에는 당연히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기고나 인세가 작은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직장을 옮기는 시간에는 필수적으로 다음 직장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휠씬 여유도 있다. 그래서 이 연재는 내 자랑이나 실패에 대한 고백은 아니다. 미래 사회 직업 판도는 일반인들도 내가 겪은 것 못지 않게 복잡할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이제 한 가지 직업이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영원히 월급을 쥐여줄지 알았던 직업들이 사라져갈 것이다. 머리를 쓰는 일에서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을 하나둘씩 차지할 것이다. 힘을 쓰는 일은 로봇이 하나둘씩 차지할 것이다.

공무원이나 의사, 교사 등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위 직업은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빅데이터 전문가인 다음 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은 "월급쟁이들의 시대가 사라지고, 프리랜서의 시대가 온다"고 했는데, 그의 말의 취지도 이제 한 직업에 안착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앞서 했던 일을 잃는다고 절망하고 무너져 버린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직업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가능한 다양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젊은 사람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자신이 생각하는 면과 미래 직업의 세계가 어떤 지에 대한 의문이 많을 것이다. 이번 연재는 그런 고민이 있는 젊은 이들에 대한 선배로서의 솔직한 경험담이기도 하다. 일의 경계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충분히 옮겨갈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일에서 의외로 자신에게 맞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각 일마다 우선 내 솔직함 경험을 바탕으로 경험을 소개한다. 다음은 각 직업의 일반적인 진입과 특징, 필요한 역량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으로는 그 일을 더 성공적으로 하기 위한 노하우 등을 쓸 예정이다. 물론 글을 쓰면서 더 좋은 방향이 구상된다면 약간의 변화는 있을 수 있다.

태그:#조창완, #직업, #기자, #작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