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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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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가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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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코뮤니즘 실험>
 비니 아담착 글
 윤예지 그림
 조대연 옮김
 고래가그랬어
 2019.11.11.

 
공장들은 한결같이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지,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생산해야 하는지. (38쪽)

어린이는 무엇을 누려야 좋을까 하고 누가 물으면 언제나 "하루"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하루란 '틈'입니다. 이 틈이란 '날'이요, 이 날이란 '시간'입니다. 놀고 싶을 적에 마음껏 놀 하루를, 그림을 그리고 싶을 적에 하루 내내 그릴 수 있기를, 수다를 떨고 싶을 적에 하루로 모자라면 이틀이든 사흘이든, 책을 펴고 싶을 적에 며칠이고 쉬잖고 책을 펼 틈을 누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푸름이도 하루를 누릴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도 하루를 즐길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 수 있어야지 싶어요. 마음껏 일하고 마음껏 놀 틈이 있어야지 싶어요. 어른이 된 몸은 일만 하는 기계일 수 없어요. 어른이 된 사람은 일만 하는 톱니바퀴일 수 없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길이란, 나라일꾼이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일꾼이나 가게일꾼이 아닌, 저마다 하루를 오롯이 누리면서 즐겁게 삶을 그리는 사람으로 가는 길이어야지 싶어요.
 
공장은 다른 공장이 다리미를 더 싸게 파는 것을 참고 봐주지 못해요. 다리미를 더 많이 판다는 것도 그래요! (48쪽)

사람들은 달라졌어요. 지시하는 상관들 없이,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했어요. 그들은 더더욱 똑똑해졌어요. (78쪽)

어린이 눈높이로 '코뮤니즘'을 <기상천외한 코뮤니즘 실험>(비니 아담착/조대연 옮김, 고래가그랬어, 2019)을 읽으며 이 하루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책은, 처음에는 스스로 하루를 누리면서 삶을 짓고 살림을 나누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우두머리나 벼슬아치가 나타나면서 하루를 빼앗긴다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하루를 빼앗긴 사람(어른)들은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시키는 일만 하면서 돈을 받지만, 어쩐지 돈이 없이 하루를 누릴 적하고 대면 쉴 틈도 놀 틈도 어울릴 틈도 없는 데다가 살림이 자꾸 팍팍하다고 느낍니다.

팍팍한 살림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웅성웅성 모여서 얘기하지요. 판을 바꾸어야겠다고. 그런데 새로운 판이 되어도 살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다시금 북적북적 모여 얘기를 하고, 새로운 판으로 갈지만 영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큰솥 관리자들은 필요한 물건을 대부분 얻어서 만족해요.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 오직 큰솥 관리자들만 알기 때문에, 그들은 만들어지는 물건들의 종류와 양에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리하여 큰솥 관리자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권력도 가져요. (87쪽)

어린이인문 <기상천외한 코뮤니즘 실험>은 판갈이를 하는 사람들이 맞닥뜨리거나 겪는 살림을 여러모로 빗대어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가 생각해서 우리가 살아갈 길을 찾으려 한다'는 이야기로 매듭을 짓습니다.

이 책에서 짚기도 하듯, 어른이나 어린이 모두 하루를 스스로 생각해서 누릴 적에 넉넉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시키는 일을 하는 톱니바퀴가 아닌, 스스로 하루를 짓고 살림을 가꿀 적에 즐겁겠지요. 대통령이나 시장·군수한테 맡기는 살림이 아닌, 사람들 스스로 가꾸는 살림이 될 적에 홀가분하면서 흐뭇할 테고요.
 
함께 살림을 짓는 길을 그리면서 하나씩 일군다면, 저절로 '두레살림'이란 길에 접어들 만하지 싶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길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 하는 길에서.
 함께 살림을 짓는 길을 그리면서 하나씩 일군다면, 저절로 "두레살림"이란 길에 접어들 만하지 싶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길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 하는 길에서.
ⓒ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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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이야기는 그만 좀 하죠. 다음 일은 우리가 결정해요. 이야기는 이제 우리 것이고, 역사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 테니까요." (106쪽)

그런데 어린이인문으로 다루려는 '코뮤니즘'은 무엇일까요? 영어라서가 아니라, 굳이 이런 말을 써야 할는지 궁금해요. 이를 한자말로는 '공산주의'라 할 텐데, 어린이가 배우며 생각할 길이란 '주의'가 아닌 '살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테면 '두레살림'이나 '함께살림'을, '나눔살림'이나 '사랑살림'을 그린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즐겁지 않을까요? 어른인문일 적에도 말부터 쉽게 쓰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주의주장이 아닌, 함께 풀어갈 살림이란 길을 바라본다면 한결 수월하게 밝은 앞날을 그릴 만하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기상천외한 코뮤니즘 실험

비니 아담착 (지은이), 윤예지 (그림), 조대연 (옮긴이), 고래가그랬어(2019)


태그:#마음을 읽는 책, #어린이책, #기상천외한 코뮤니즘 실험, #비니 아담착, #코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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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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