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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에서 담임 업무를 맡고 있는 필자의 경험에 근거한 기사로 소년원의 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기자말]
       
소년원 아이들이 직접 태운 장작이 군고구마통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 소년원에서 굽는 군고구마 소년원 아이들이 직접 태운 장작이 군고구마통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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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에 갈 정도면 얼마나 흉악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소년법을 강화해서 더욱 엄벌하거나 아예 소년법을 폐지해서 죄다 교도소에 격리해야 한다."


10대들의 범죄나 소년원에 관한 뉴스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년원에는 흉악하고 잔인한 강력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거의 없다.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를 제외하고, 강력범은 애초에 형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기 때문이다.

보호처분 중 7호 처분은 비행을 저지른 소년들 중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소년의료보호시설에서 6개월에서 1년 동안 수용하는 의료처우이다. 정신질환·지적장애 보호소년을 병원이나 요양소, 소년원에 위탁하는데, 현재 국내에는 전문 의료소년원이 없어 대전소년원이 의료소년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대전소년원의 7호 의료처우 학생들은 정신질환·지적장애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서 소년원에 수용되었을까?

현우와 용수와 예빈이의 경우

현우(가명, 16세)의 비행명은 '야간주거침입절도'다. 지적장애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은 현우는 보호관찰을 받던 중 수시로 가출하거나 학교에 결석했다. 

어느 날, 현우는 집에서 장난을 치다 장독을 깨뜨려서 어머니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새벽에 몰래 집을 나와 이웃집을 창문으로 들어가서 라면 3개를 끓여먹었다. 날씨가 춥다며 밤새 보일러를 틀었고 장롱 서랍에 있던 담배를 꺼내 피웠다.

용수(가명, 13세)의 비행명은 '절도'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가정폭력과 주취폭력으로 가출하여 거리를 배회하다 분식집에서 현금 3만 원을 훔쳤다. 생계형 절도로 의료소년원 6개월 처분을 받았다. 현재 대전소년원에서 분노조절장애와 ADHD,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예빈(가명, 여 15세)이는 계부의 폭력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려 놀다가 돈이 떨어지고 배가 고픈 나머지 마트에서 친구들과 공모 합동하여 빼빼로 등 도합 8000원 상당의 과자를 각자의 호주머니에 몰래 감추어 나오는 방법으로 절취했다. 

소년부 판사는 예빈이를 유해환경과 비행적 하위문화로부터 차단하여 비행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소년원 6개월 송치 처분을 했다.

흉포한, 잔인한, 무서운, 겁 없는, 잔혹한... 언론에 자극적으로 보도되는 10대들의 범죄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현우와 용수, 예빈이의 비행 사실은 이러한 형용사들과 거리가 멀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성인들에게 선고하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와 비교하면 오히려 과중한 처분이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청소년 범죄는 언론과 여론이 만들어낸 착시효과가 분명 있다.

물론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처분인 10호 장기 소년원 송치의 경우,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폭행 및 공갈하거나 미성년자에게 조건 만남을 강요하여 화대를 갈취하는 등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강력범죄보다는 보호관찰 기간 중 재범을 하는 등 상습범으로 처분받는 경우가 많다.

7호 의료처우 아이들의 경우 정신질환·지적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따뜻하고 든든한 한 끼 식사와 성장기 청소년을 위한 우유와 빵, 과일 등 간식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소년원생의 한 끼 급식비는 일반 학교 급식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간식은커녕 제대로 된 식단을 짜는 것도 힘든 현실이다.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지만 소년원 급식비 정도의 이슈는 대중의 관심과 획기적인 예산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니 자급자족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판단되어 간식 조달 방법을 고민하던 중, 인터넷에서 '군고구마 앵벌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10대 청소년들이 후배들에게 군고구마를 팔게 하고 수입을 갈취해 간 사건이었다.

바로 이거다! 대전소년원 내 산자락에 원예치료와 힐링 산책을 위한 심신 수련장과 힐링 숲이 있어 땔감을 구하기 쉽다. 고구마를 구워서 먹으면 아이들 간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고구마는 영양분이 풍부한 대표적인 영양간식이 아닌가. 스스로가 대견스러운 발상에 취해 그날 바로 드럼통을 재활용해서 제작한 추억의 군고구마통을 거금(?) 3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일반 학교 급식비의 절반도 안되는 예산.... 바로 이거다!
        
대전소년원 심신수련장이 있는 숲속에 자리를 잡았다.
▲ 소년원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기 위해 마련한 군고구마통 대전소년원 심신수련장이 있는 숲속에 자리를 잡았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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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세금인 예산으로 산 것은 아니다. 필자의 사비로 구입했으니 섣부른 비판은 하지 마시기를... 하긴 공무원의 월급도 국민 세금이니까 결국 국민 세금으로 산 건 맞는 건가?

타인의 돈과 물건을 훔쳐서 피해자에게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준 현우와 용수에게 군고구마 당번이라는 봉사활동을 시키기로 했다. 소년원에서 군고구마 장사라니! 아니, 돈을 주고 파는 것이 아니니까 장사는 아니고, 이것은 소년원생의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이다. 군고구마를 만들어서 동료 학생들, 교사들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리라.

남학생 50여 명, 여학생 30여 명에게 군고구마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을 해야 한다. 그래서 쪼개기 전용 도끼도 구입했다. 땀 흘려 장작을 패서 땔감을 가득 쌓아놓고 아이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나뭇가지와 신문지, 장작을 고구마통에 넣고 불을 지폈다.

약간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고구마통 안에 용광로처럼 솟아올랐다. 현우와 용수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불꽃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철판을 잘라 만든 기다란 서랍에 먹기 알맞은 크기의 호박 고구마를 넣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고구마 냄새가 난다. 소소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반복되는 수용기관의 일상 속에서 나름 창의적이고 문학적인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학생 수업과 생활지도, 행정업무 등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해야 하니, 점심시간과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고구마를 구웠다. 아이들은 따끈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달콤한 군고구마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일주일 후
   
장작불로 구워낸 고구마
▲ 소년원생들에게 간식으로 제공할 군고구마 장작불로 구워낸 고구마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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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다. 교무과 사무실에 필자 앞으로 택배 상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고구마였다. 대전소년원의 여러 선후배 선생님들과 소년보호위원이 아이들을 위해 고구마를 후원해주신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현우와 용수는 고구마 상자를 들고 신이 나서 고구마통이 있는 숲으로 달려갔다.

아무도 지나다니는 이 없는 한적한 소년원의 숲 속에서 아이들이 장작에 불을 붙인다. 달콤한 고구마 냄새를 맡았는지 청설모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고개를 내민다. 사람을 가리던 길냥이들도 어느새 그루터기 위에 앉아 불을 쬐고 있다. 

군고구마통 안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이 정말 아름답다.

* 지난 12월 10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 밤, 소년원생 급식비가 전년 대비 5% 인상되었다. 올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표창원, 송기헌, 이은재 위원 등 여야 구분 없이 소년원 급식비 인상에 대해 한목소리를 낸 결과였다.

덧붙이는 글 | 비록 비행을 저질렀지만, 한 창 잘 먹고 제대로 커야 할 성장기 청소년인 소년원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희망합니다.


태그:#소년원, #소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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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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