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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편의점 알바를 했다. 회사들과 주택가 바로 옆에 있었던 편의점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손님이 많았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나는 생각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아동급식카드'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동급식카드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끼니를 굶지 않게 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발급하는 카드로, 하루 만 원 정도의 돈을 가맹점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익숙한 듯 음식을 골라 편의점 계산대 앞에 놓고 급식 카드를 내밀었다.

근처에 아동급식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음식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대체로 아동급식카드를 들고 편의점으로 왔다. 급식카드로는 과자도 사탕도 살 수 없기 때문에 살 만한 게 많지 않았다. 금액도 고작 만원. 하루 세 끼를 해결하기에는 바로 옆에 있는 김밥천국에서 사먹어도 넉넉하지 않은 금액이었다. 편의점 음식이 원래 그렇기는 하지만, 어린이들은 급식카드로 몸에 좋지 않은 가공식품들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동급식카드는 이용 대상이 아동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급식카드를 부모가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린이들이 급식 카드를 사용하는 것만큼 '엄마'들도 급식 카드를 사용하여 편의점에서 장을 봤다. 늘 만 원가량의 정해진 금액 안에서 돈을 써야 했기에 그들이 사는 메뉴는 항상 똑같았다. 우유 한 팩, 통조림 하나, 그리고 편의점 음식 하나 정도.

 어느 날, 매일 급식카드를 가지고 도시락을 사던 어린이가 편의점을 방문했다. 어린이의 부모는 편의점 바로 옆에 있던 마포구청 앞에서 철거 반대 운동을 하고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이면 철거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릴 만큼 편의점은 마포구청과 가까웠다. 어린이는 계산대 위에 도시락과 우유를 놓고 얌전하게 계산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인지 급식 카드 결제 버튼을 눌렀을 때 결제가 되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급식카드에는 돈이 100원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어린이가 편의점에 방문하기 전 부모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안에 돈이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아요."

난처하게 그 상황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어린이는 실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긴 대화가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어린이의 엄마는 편의점에 와서 계산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참이나 엄마와 통화하던 어린이는 마침내 자신이 도시락을 살 수 있는 방안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어린이는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야!" 라고 소리쳤다. 어린이 뒤에 서 있던 손님 중 한 명이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계산대 앞에 서 있던 나는 웃지 못했다.

미담이 없는 사회

그 장면이 3년이 지난 지금도 어쩐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았다. 그 어린이는 결국 그날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나쁜 엄마가 된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어린이의 절망스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그 도시락을 사주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유명하진 않았겠지만,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입에서 '미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그 일을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그 어린이에게 도시락을 대신 사 주었을 때의 이야기는 '미담'이 되지만 자녀에게 급식 카드를 주지 못하고 그것을 대신 써야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미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미담'이 되기는커녕 언제나 나쁜 부모가 될 뿐이다. 자식 밥 굶기는 부모, 용돈을 주기보다 어린이의 급식 카드를 빼앗는 부모, 능력 없는 부모.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이야기는 '미담'이 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는 결코 '미담'이 될 수 없다. 미담이 될 수 없는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은 대부분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미는 '급식카드'를 결제하다가 나는 그만 미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MBC 기사 화면 캡처
 MBC 기사 화면 캡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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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생활고 때문에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남성의 이야기가 MBC에 보도되었다. 12살 아이를 데리고 온 30대 남성은 경찰에 검거되었을 때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처벌되지 않았다. 대신 경찰은 그와 아이에게 국밥을 사주었고, 익명의 개인은 그들에게 20만 원을 건넸다. 그는 몸이 아파서 6개월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집에는 홀어머니와 또 다른 자식이 있었다. 아무런 죄도 묻지 않은 마트 사장, 봉투에 담은 돈을 전달한 익명의 개인, 국밥을 사준 경찰관까지. 그 이야기는 '미담'으로 불리기 충분한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환호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현대판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가 반갑지 않았다. 경찰이 약속한 일자리 알선과 무료 급식카드로는 그들의 인생이 해결될 수 없다. 마트에서 조금의 생필품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그들의 처지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아픈 몸을 끌고 일할 자유를 주는 것은 해결이 아니다. 급식 카드로 밥을 사먹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 긍긍하는 많은 어린이들을 이미 나는 보고 살아왔다.

가난은 낭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도 '미담'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구출하는 것이 국가가 아니라 마음 착한 시민들이라면 그것은 '미담'이 아니라 하나의 불행이다. 마음 착한 시민들의 시야에 벗어난 많은 '현대판 장발장'들이 오늘도 벌을 받고, 고개를 숙인다. '현대판 장발장'들은 그래서 미담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더 이상 미담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다. 무료 급식카드를 내미는 부끄러운 손들이 줄어들 때다. 가난을 증명해 보여야하는 세상, 복지 사각지대가 있는 세상, 다행히 복지 수혜자가 되더라도 그 금액이 형편없이 작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은 결국 미담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어떠한 누구도 선별하지 않고, 죄책감이 없는 세상을 위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가난을 증명해 보이는 잔인한 제도 속에서 인간이 행복하기는 어렵다. 가난하기 때문에, 무능하기 때문에 복지 제도의 수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로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국가를 이제 상상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담이 사라진 사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신민주는 서울 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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