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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입니다. 몇 회에 걸쳐 이 책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편집자말]
일본은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체불임금 및 배상금 지급을 기피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다른 사안에 관한 것이었는데도, 일본은 이 협정으로 모든 게 다 끝났다고 강변한다.

강제징용 문제가 1965년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강변은 비록 거짓일지라도 그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주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은 일본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봉급을 못 받은 것은 일본 때문이 아니라고 변호한다. '범인은 한국인'이라고까지 이들은 주장한다. 일본 정부보다 훨씬 더 일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튜브 채널 <이승만 TV>에 나오고 있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유튜브 채널 <이승만 TV>에 나오고 있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이승만 TV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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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프롤로그: 거짓말의 나라' 편에 실린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글에서 그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글에서 이영훈은 2018년 10월 30일의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이 거짓 재판이라는 주장을 폈다. 일본 측에 배상책임을 인정한 게 잘못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대법원이 전범기업인 일본제철을 계승한 신일철주금에 대해 김규식·신천수·여운택·이춘식 4인에게 각 1억 원씩 배상하라고 명령한 판결이 거짓된 사실관계에 기초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문제 제기는 아래와 같다.
 
"원고 네 명 중의 두 명은 1943년 9월 일본제철의 모집에 응해 동 회사 오사카 제철소에서 훈련공으로 일했습니다. 일본제철은 월급의 대부분을 강제저축하고 기숙사 사감에게 통장과 도장을 보관케 했는데, 그 사람이 끝내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원고가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의 기본 내용입니다."
 
월급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에 맞서서, 이영훈은 '피해자들을 속인 것은 일본 정부나 일본제철이 아니라 한국인 사감이었다'고 단언한다. '범인은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측은 강제저축의 형식으로 노동자들의 월급을 모아뒀지만, 한국인이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것이다.

기숙사 사감의 국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위의 대법원 판결문에도 적혀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영훈은 기숙사 사감이 한국인이었을 거라는 가정 하에 이렇게 주장한다.
 
"사감은 일본제철의 직원이 아니라 노무자가 집단으로 기숙하는 한바(飯場)나 료(寮)의 주인으로서 조선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대개 조선인이었습니다. 그래야 말이 통하고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사감은 원고들과 함께 원산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이 사실도 그 같은 추정을 뒷받침합니다."
 
한국인 노동자들을 관리하려면 아무래도 한국어를 잘해야 하므로 '기숙사 사감이 한국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설득력이 있다. 기숙사 사감이 한국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이영훈은 기숙사 사감을 일본제철과 법적으로 분리시키고 있다. 피해자들이 말하는 기숙사 사감은 한바(はんば, 식당 겸 기숙사)나 료(기숙사)의 주인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한바나 료의 운영자가 일본제철과 무관할 거라는 전제 하에, 이들이 월급을 가로챘을 것이으므로 일본제철을 상대로 체불임금 및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게 이영훈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라며 사건의 결론을 이렇게 내린다.
 
"일본제철이 원고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강제저축 운운하는 판결문 자체가 그 점을 입증하고 있다. 임금이 원고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사감이 그 범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했는지는 사감을 취조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감은 미성년인 원고를 대신하여 원고의 본가에 원고의 월급을 송금하였을 수도 있다. 요컨대 해당 사건은 원고와 사감 간의 민사사건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 대법원이 판결을 했어야 한다는 게 이영훈의 주장이다. 일본제철이 기숙사 사감이 회사한테서 받은 월급을 노동자들의 본가에 송금했거나 아니면 착복했을 것이므로 사감을 찾아 소송을 해야지 일본제철에 소송을 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배상판결을 내린 것은 거짓에 기초한 판결이라는 것이다.

그의 논리 속 중대한 결함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외 지음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외 지음
ⓒ 미래_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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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영훈이 개진한 논리 속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 일본제철은 월급을 지급했지만 기숙사 사감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그의 주장은 사감이 일본제철의 조직체계에 포함돼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기숙사 사감이 일본제철과 무관한 외부인들이었다면, 일본제철이 그들에게 직원 봉급을 맡겼을 리 없다. 기숙사 사감이 봉급 전달의 책임을 맡았다는 것은 그들이 회사 직원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 점은 피해자들의 진술에서도 나타난다.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일본제철이 임금 전액을 지급하면 낭비할 우려가 있다면서 노동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봉급 대부분을 계좌에 입금시킨 뒤 기숙사 사감에게 통장과 도장을 맡겼다'고 진술했다. 이는 기숙사 사감이 회사로부터 노무관리 책임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회사의 지휘 체계에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기숙사 사감의 노무관리 속에 봉급 보관만 있었던 게 아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노동자에 대한 체벌까지도 담당했다. "원고 2는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였다가 발각되어 기숙사 사감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체벌을 받기도 하였다"는 문장이 대법원 판결문에 나온다. 공사장 옆에서 숙소나 식당을 운영하는 외부 사업자였다면, 이렇게 노동자들을 때리고 벌줄 수 있었을까?

이영훈은 기숙사 사감이 범인이며 한국인이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간에 사감은 회사 내부의 관리자였다. 이런 관리자가 범인이라면 회사가 곧 범인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숙사 사감들이 억울해 할 만한 이유가 있다. 사감이 봉급을 관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돈의 최종 정착지는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봉급을 가로챈 사감들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 돈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았다. 범인은 일본이라는 국가 그 자체였다.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미지급 봉급이 어떻게 처리됐는가가 1991년 6월에 드러났다. 그해 6월 11일자 <한겨레> 기사 '징용한인 임금 공탁된 채 남아'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2차 대전 중 강제연행돼 일본의 광산이나 공장에서 혹사당했던 조선인들의 밀린 임금이 전후 4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법무국에 공탁된 채 남아 있는 사실이 10일 밝혀졌다. 특히 46년 기준으로 5천만엔 규모인 미지급 임금은 물가상승 등을 감안해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2천 9백억엔(한국돈 약 1조 5천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거액인 것으로 알려져 크게 주목된다."
 
한국인 노동자에게 지급될 임금이라면서 법무국에 공탁된 돈은 1991년 화폐가치로 1조5천억 원이다. 2019년 가치로 환산하면 훨씬 많은 금액이 될 것이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혹사시킨 일본 기업들이 강제저축 명목으로 떼어둔 임금을 법무국에 공탁하는 형식으로 법적 책임을 모면했던 것이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이 날짜 사회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46년 현 법무성의 전신인 사법성의 지시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 노동자의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적립금 등을 일괄해서 각 지방 법무국에 공탁했으며, 이 공탁금은 일본은행에 보관돼 지급청구가 있을 경우 본인임을 확인한 뒤 지급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임금이 공탁된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조선인 노동자들이 귀국했거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아 이 돈을 찾아간 사람은 거의 없으며, 아직도 일본 법무국에 공탁된 채로 남아 있는 상태라고 이 신문은 밝혔다."
 
일본 기업들이 체불임금을 공탁한 것은 미군정의 명령 때문이었다. 점령군의 지시라서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지시마저 없었다면, 공탁마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전범기업들이 미군정 지시를 따른 것은 아니다. 츠쿠바 국립공문서관에서 공탁 서류들을 직접 확인한 고바야시 히사토모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 감사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나마 공탁을 한 기업은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2009년 4월 16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일본, 시효 지났다면서 아직 공탁금 보관'에 따르면, 고바야시 감사는 "예(例)로, 홋카이도만 해도 강제동원 노무자를 사용했던 사업장이 대략 200여 곳에 이르는데, 이번 자료에 의하면 홋카이도의 경우 실제 등재된 사업장은 18곳에 불과하다"면서 "공탁이 강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므로, 미불금이 있더라도 기업이 공탁하지 않으면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홋카이도의 경우, 전범기업의 9%만이 체불임금을 공탁했다. 공탁 명령을 거부한 전범기업들이 다른 지역에도 있었다고 본다면, 전체 체불임금의 규모는 1991년 현재의 1조5천억 원보다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공탁된 그 돈에 대해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한국 정부에도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봉급을 찾을 수 없었다. 공탁이란 게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공시송달이란 제도가 있다. 민사소송에서 당사자의 주소가 불명해서 소송서류를 전달할 수 없을 때, 법원 게시판이나 신문에다가 적어놓은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당사자가 송달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당사자가 공시 내용을 알지 못했더라도, 내용을 전해 들은 것으로 의제된다.

일본은 그런 식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봉급을 처리했다. 한국 노동자들이 떠난 뒤 일본 법원 마당의 게시판 같은 곳에다가 "밀린 봉급 찾아가라"라는 식으로 공고해놓고 자신들의 의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에라도 협조를 구했다면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해봤을 텐데 그런 일마저 없었다. 이런 상태로 시간을 지연시킨 뒤 지금 와서는 시효가 끝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본의 비인도적 처사를 무시한 채 이영훈 교수는 '범인은 사감이며, 사감은 한국인일 것'이라며 일본의 죄악을 은폐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 동족이 당한 시련을 같이 아파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이요, 일본의 주장을 검증도 없이 무조건 맹종하는 한국 뉴라이트(신우익)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태그:#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강제징용, #일본제철, #신일철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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