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이 떠나버린 나의 사랑 리베카."
 
날렵한 몸과 곱상한 눈꼬리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 베레모를 쓰고 품이 큰 정장을 입은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멋스럽다. '온라인 탑골공원'이라고 불리는 1990년대 < SBS 인기가요 > 몰아보기 유튜브 채널에서 '탑골 지드래곤'이라는 별명을 얻은 남자, 양준일 말이다. 
 
가사처럼 기약 없이 떠났던 그가 지난 6일 슈가맨에 등장했다. 양준일과 이소은이 출연한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 2회는 시청률 4.3%(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를 돌파하며 '주간 화제성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짧은 방송 출연에도 이렇게 화제를 몰고 오는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30년 동안 TV에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을까. 슈가맨은 그를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라 소개했다. 정정할 필요가 있다. 그때 우리 사회는 양준일을 놓쳤다. 혹은, 쫓아냈거나.
 
'기생오라비'와 '양키'라는 낙인
  
 <슈가맨3>의 한 장면

<슈가맨3>의 한 장면 ⓒ JTBC

 
1991년 데뷔한 그와 함께 활동했던 가수들은 김광석, 이선희, 신승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 가수들 사이에서, 양준일은 '뉴 잭 스윙'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노래하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당시 대중에게는 상당한 충격을 줬을 것이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그가 겪어야 했던 차별은 2집 타이틀인 <가나다라마바사>의 내레이션에서도 드러난다.
 
양준일은 슈가맨에서 "당시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는 말을 들었다"며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도장을 안 찍어줘서 입국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명백한 직권 남용이다. 심지어 영어를 너무 많이 쓴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도 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당시는 1990년대 초. '양키 오렌지족의 입장을 사양한다'는 표지판이 서울랜드 정문에 떡하니 붙어있을 정도로 보수적이었을 때였다.
 
그는 이중적인 차별에 시달렸다. 외모와 국적 모두, 당시 대중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992년 겨우 두 번째 앨범을 내고 9년 후인 2001년, 그는 V2의 자일로 돌아왔다. 기존의 '양준일'과 확연히 다른 이미지였다. 머리도 짧게 자르고 근육도 만들었다. 이색적인 멜로디에 '빨래를 걷어야 한다며 기차 타고 떠났다'는 위트있는 가사. 하지만 그때도 우리는 그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찍어버린 낙인이 그때까지도 지워지지 않은 탓이었을까.
 
여전히, '양준일답게'
 
1991년과 2019년은 다르다. 확실히 한국 사회는 변했고,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걸그룹 에프엑스 출신 엠버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짧은 머리를 고수해왔다. 반면 같은 소속사였던 보이그룹 샤이니 멤버 태민은 유연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춤을 춘다. TV에는 화장하는 남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그루밍족'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교포들은 물론 외국인들만 등장하는 예능도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다르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체성이다. 그런 젊은 세대가 양준일을 재조명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남들과 다른 걸 손가락질 하던 사회에서도, 그는 항상 그다웠기 때문이다.
 
<슈가맨>에서 양준일은 "20대인 나와 경쟁해서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방송을 보는 내내 그건 '괜한 걱정'이라고 확신했다. 50대 양준일도 여타 50대와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젠틀한 말투로 여전히 우아한 제스쳐를 하는, 힘든 시절을 지난 '어른' 양준일. 어른 양준일은 청년 양준일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당당하고 멋진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위로가 될 것이다.
 
2019 트렌드인 '뉴트로(New-tro·새로움이라는 뜻의 'New', 회상이라는 뜻의 'Retro(retrospect)'가 합쳐진 말)'는 '젊은 층이 접해보지 못했던 옛것을 향유하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옛것(retro) 중에 숨겨진 새로움(new)을 찾아내는 것도 뉴트로다. 양준일은 1991년이 놓쳤지만 2019년이 발굴해 낸 천재다.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새롭다. 시대가 '잠시' 놓친 비운의 천재. 천재답게, 그가 30년 전에 쓴 가사도 여전히 유효하다. 누군가 '새로움'을 나무란다면 당당하게 말해 보자.

"그럼 어때. 난 좋기만 하더라!"
양준일 슈가맨 슈가맨3 뉴트로 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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