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터뷰를 하는 김학봉씨의 모습
▲ 인터뷰를 하는 김학봉씨 인터뷰를 하는 김학봉씨의 모습
ⓒ 허찬영

관련사진보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등교 시간에 학생들을 위해 교통정리를 해요"

강원도 홍천에는 25년 동안 학교 앞 도로에서 교통 수신호를 하는 사람이 있다. 김학봉씨가 그 주인공이다. 10월 중순 어느 날, 김학봉씨가 운영하는 홍천에 한 중식당에서 그를 만나 교통 수신호 봉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죠"라며 기쁜 표정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홍천에 있는 초·중학교 앞에서 교통 수신호를 하고 있어요"라며 말문을 연 김학봉 씨는김학봉씨는 "큰 도로를 학생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게 교통 수신호를 하고 있어요"라며 봉사활동에 대해 소개했다.

김학봉씨는 평일이면 빠지지 않고 1시간씩 교통 봉사를 한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대인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수신호를 해요. 요즘에는 홍천여중과 홍천초교 주변에서 하고 있어요"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교통 수신호를 할 때 시야 확보가 어려워 애를 먹는다는 김학봉씨.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교통정리가 더욱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더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라며 그는 오랜 봉사 경력에도 항상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김학봉씨는 이어 "게다가 홍천여중과 홍천초교 주변은 도로가 넓고 적어도 300~400명의 학생이 건너다녀요. 그런데 보행자 신호등은 물론 자동차 신호등도 없어요. 그냥 횡단보도만 하나 있죠"라고 말한 그는 "그래서 학생들의 안전한 등굣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곳에서 교통 봉사를 하고 있어요"라며 많은 학교 중 두 학교 주변을 봉사 활동 장소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그에게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다. 바로 의경에게 배운 교통 수신호를 금세 익혀 곧바로 봉사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김학봉씨는 "아무래도 저는 수신호 봉사를 하게 될 운명이었나 봐요. 처음 할 때부터 전혀 어색하지 않더라고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홍천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김학봉씨는 식당일에 피곤할 법도 한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봉사에 나갈 채비를 한다. 이런 그는 "처음엔 피곤했지만 이제는 적응이 돼서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피곤하면 어떻게 봉사하겠어요어떻게 봉사를 하겠어요. 저는 이 시간이 즐거워요"라며 활기찬 기운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김학봉씨가 더욱더 대단한 점은 따로 있다. 봉사를 해온 25년간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침 등교 시간이면 어김없이 학교 앞 도로 위를 지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25년 동안 봉사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라며 오히려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토록 성실하게 선행을 이어온 김학봉씨의 이야기를 접한 홍천군모범운전자회는 교통 관련 봉사와 캠페인을 함께하자며 김학봉씨가 택시 운전사가 아님에도 회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4년부터 2019년까지 어느덧 만으로 25년째 봉사를 하는 김학봉씨. 그가 봉사활동 중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거는 오히려 내가 봉사를 받은 거예요"라며 당시를 회상한 김학봉씨는 "한겨울에 교통 수신호를 하는데 한 학생이 제게 다가와서는 손이 시릴 것 같다며 장갑을 건네준 적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고마워요"라며 당시의 감정이 생생한 듯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이외에도 시민들이 여름이면 시원한 음료를, 겨울이면 따뜻한 음료와 장갑 등을 주기도 한다.
 
김학봉씨가 아침 일찍부터 홍천초교 후문에서 교통 수신호를 하고 있다.
▲ 김학봉씨가 교통 수신호를 하는 모습 김학봉씨가 아침 일찍부터 홍천초교 후문에서 교통 수신호를 하고 있다.
ⓒ 허찬영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도로 한가운데에서 수신호를 하다 보니 위험한 일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는 "가끔 무단횡단을 하는 분에게 버럭 화를 내곤 하지만 그래도 시민들 대부분이 질서를 잘 지켜주신 덕분에 그런 적은 다행히 없었어요"라며 그런 시민들에게 오히려 감사함을 표했다.

김학봉씨가 이토록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 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뻔할 정도로 큰 사건이 그것이다. "1994년 충주호에서 유람선이 불에 탄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 그 배에 내가 타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았죠"라며 말을 이은 그는 "그 뒤로 새 삶을 얻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항상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자'고 다짐한 뒤, 봉사를 시작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아내와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는 김학봉씨는 "가족들은 내가 봉사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해요"라면서 "특히 아내가 뒷바라지를 잘 해줘요. 아무래도 생계가 있고 가정이 있는데 내가 봉사를 하므로 인해 생기는 빈틈을 잘 메꿔 줘요"라며 이렇게 오래 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덕분이라는 김학봉씨.

그는 앞으로도 힘이 닿을 때까지 교통 봉사를 꾸준히 할 계획이다. 더불어 "시민들이 앞으로도 질서를 잘 지켜주시고, 학교 앞을 지날 때는 모든 학생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서행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끝까지 학생들의 안전을 신경 쓰는 교통 수신호 봉사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인터뷰를 마쳤다.

태그:#미담, #연말, #교통, #2020, #새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