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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 촛불의 결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정책 이념과 이론이 취약한 상황에서 '인기관리'를 핵심 목표로 삼은 포퓰리즘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과 관련 공약과 정책을 발표했으나 '인기관리'의 맥락에서 속도 조절을 해왔고, 최근에는 오히려 노동정책 전반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2017년 대선 시기 세월호 광장에서 진행된 '대선후보 생명안전 서약식'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라고 직접 서명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제·개정,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비롯한 생명안전 관련 공약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 2017년 7월 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며 "산업재해는 한 사람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지역공동체의 삶까지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외주화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안전의 대상이 되도록 하겠다, 사망사고 발생하는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도록 하겠다, 대형 인명사고의 경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8월, 범부처 합동으로 '중대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2018년 1월, '국민생명안전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통해 사고성 산재사망 절반감소 대책을 내놓았다. 이후 환경부를 비롯한 범정부 차원의 환경미화원 안전대책, 2019년 공공기관 안전관리 대책 등 각종 안전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임기 절반을 넘긴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대책은 휴짓조각으로 전락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을 파기했다. 오히려 생명안전제도의 개악과 후퇴가 급속하게 추진되고 있다.

김용균이 없는 김용균법 '산업안전보건법'

고 김용균 노동자 죽음에 대한 유족과 사회적 투쟁으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의 도급금지에는 구의역 김군도, 태안화력의 김용균도, 조선하청 노동자도 없다. 대선 공약에서는 산업현장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제·개정, 상시 유해위험작업의 사내 하도급 전면금지를 명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도급금지의 범위를 22개 사업장으로 극단적으로 축소해서 입법예고를 했고, 국회를 통과했다. 자본과 국회 핑계를 대던 정부는 하도급하려면 노동부 승인을 받도록 하는 도급승인조차도 4개의 화학물질 설비 해체작업으로만 한정했다.

건설현장에서는 해마다 600명이 사망한다. 그중 20%가 넘는 사망사고는 건설기계 장비에서 발생한다. 장비 사고 중 65% 이상은 굴삭기, 덤프, 이동식 크레인 등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원청책임 적용 대상으로 이들을 제외한 채 2개만 규정했다. 사고 다발 기종은 아예 빠진 것이다.

원청 책임 강화 전면 적용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더니 하위법령에서 '사무직 노동자만 사용하는 사업장'은 적용을 제외했고, 사고가 다발하는 에어컨 등 전자제품 및 통신 설치·수리·정비작업도 빠져있다. 법의 구멍은 실제 산재 사망사고 반복으로 이어진다.

지난 11월 7일 오전10시 경 경기 남양주시의 한 건물에서 통신 개통 작업을 위해 홀로 건물 외벽에서 사다리를 이용해 작업을 하던 KT협력업체 직원이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KT새노조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KT서비스 남·북부에서 총 6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중 외주화가 진행된 KT서비스 남부의 경우 같은 기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크게 다쳤는데, 이 중 3명이 협력사 직원으로 밝혀졌다.

고 김용균 노동자 죽음을 두고 더 위험의 외주화는 없어야 한다던 문재인 정부였다. 이후 진행된 특조위는 외주화가 위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였다.

'① 외주화는 노동의 불안정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불안전성을 높인다. ② 외주화는 고용을 외부화 할 뿐만 아니라 위험 역시 외부화한다. ③ 이때 위험은 단순히 위험이 외부로 전가되는 것이 아니다. ④ 위험을 동태적으로 파악하면 원-하청 관계에서 새로운 위험이 형성된다'는 점을 규명하였고, 이로부터 '위험의 외주화'는 원-하청 관계에서 새롭게 구조화된 위험의 형성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특조위의 권고는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와 조선업 노동자의 죽음 이후 꾸려진 사고조사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가 산재사망의 주범임을 밝히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권고는 보고서 활자로만 남아있다. 대통령이 약속한 국민 참여 사고조사위원회는 조선업 산업재해 조사위원회 이후 열린 적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11월 국가인권위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기본적인 노동인권 증진을 위해 ▲위험의 외주화 개선 ▲불법 파견 근절 ▲노동 삼권 보장 등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도급 금지 작업 확대, 생명·안전 업무 기준 구체화, 산재보험료 원·하청 통합관리제 확대 등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내뱉은 말이 이행되지 않으니, 인권위까지 나서게 된 처참한 상황이다.

위험의 외주화, 자본과 정부에 책임 물어야

김용균 노동자의 1주기다. 위험의 외주화에 의한 죽음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1월 11일부터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김용균 분향소를 설치하고, 다시 농성을 시작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이행, 비정규직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 철강, 건설노동자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18일부터 조사위원회 권고 즉각 이행 촉구, 위험의 외주화 금지·중대재해 기업 처벌을 요구하며 농성 투쟁에 나섰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문재인 정부의 인기 영합을 위한 말 잔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위험의 외주화는 구조화된 위험이다. 노동을 분할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원청의 책임을 지워버린다. 노동자와 시민의 힘으로 세상에 드러낸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제를 더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사용자, 자본에 직접적인 책임을 묻자.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시켜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을 지켜내고,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과 정부 관료에게 조직적 책임을 묻기 위한 연대와 투쟁에 함께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진우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운영집행위원이자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 부장 입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2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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