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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과 패스스트랙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 충돌 초읽기 지난달 29일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기습 선언으로 패스트트랙 법안과 예산안 등의 일괄 처리가 어려워졌다.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하루 앞둔 그리고 패스트트랙 법안 중 검찰개혁 법안이 이틀 뒤 본회의에 부의되는 1일 오후 닫힌 국회 출입문 너머로 국회 본관이 보인다.
 1일 오후 닫힌 국회 출입문 너머로 국회 본관이 보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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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다시 읽어도 흥미롭다. 책은 애정 어린 조선 관찰기다. 비숍은 네 차례 여행을 통해 조선에 대한 인식을 교정한다. 열등하다고 여겼던 조선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뀐다. 그가 도착한 1894년 구한말 조선은 동학농민혁명을 시작으로 혼란스러웠다. 처음 마주한 한강과 조선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사람들은 게으르고 관리들은 부패했다. 부정적 인식은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에서 깨졌다. 그가 만난 조선인들은 근면하고 품행 또한 좋았다. 그리고 부유했다.

이들은 조선 땅에 있는 조선인과 같은 민족이다. 배고픔을 피해 러시아로 건너온 굶주린 이들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왜 일까. 비숍은 이렇게 적었다. "정직한 행정과 수입에 대한 정당한 방어가 있다면 발전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비숍이 언급한 '정직한 행정'과 '정당한 수입 보장'은 올바른 정치와 제도다. 올봄 프리모르스키 역사기행에서 만난 최재형 선생도 그랬다. 아버지는 노비였다. 그럼에도 근면을 바탕으로 큰돈을 벌었고, 동포들을 교육시켰고,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로 활약했다.

조선이 가난했던 것은 민족성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국가 시스템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게 비숍이 내린 결론이다. 비숍은 프리모르스키에 가서야 조선인들이 기질적으로 게으르다는 생각을 버렸다. 비숍이 다녀간 이후 조선왕조는 대한제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국체를 바꾸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제도는 국가 발전에 동력이 됐다. 적지 않은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성장은 지속됐다. 산업화와 민주주의에서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는 찬사도 받았다. 인구 5000만 명,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이룬 '3050'클럽에도 세계 7번째로 가입했다.

어느덧 성장률은 꺾였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2%대에 그칠 전망이다. 연초 2.7%로 예상했지만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끝이다. 수출도 11개월째 뒷걸음질이다. 저성장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다. 고도성장을 거친 국가들이 겪는 전형적인 싸이클이다. 문제는 저성장 기조가 정책과 정치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부는 우리 경제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믿고 싶지만 심상치 않다. 'OECD 자살률 1위'는 암울한 징조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와 실업률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남성 자살률에 주목한다.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남성 자살률은 50대 51.4명, 40대 45.4명이다. 경제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40~50대 남성들은 경제활동에서 주축을 담당한다. 이들이 한계에 몰렸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실업률 증가는 가파르다. 올해 실업자는 1년 만에 20만 4000명 늘었다. 실업률 역시 3.7%에서 4.5%로 0.8%P 상승했다. 극단적 선택 배경으로 경제위기와 연관성을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접적 연관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완충장치 마련은 절실한 정치적 과제다.

그런데 올해 국회는 이런 요구에 부응했는지 의문이다. 여야는 10일에야 가까스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법정 시한(12월 2일)을 넘긴 것은 물론이다. 국회는 올해 내내 공전을 거듭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자신들 목소리만 높였다. 여당은 포용과 배려를 포기했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와 트집 잡기로 일관했다. 압박과 배척, 반대와 반목은 대화와 협치를 밀어냈다. 정치는 없고 정쟁만 있었던 20대 국회다. 경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정쟁에 밀려 중요한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반면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법안에는 담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타다 택시를 금지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대표적이다. 혁신을 거스르는 법안이지만 택시업계 표를 의식한 결과다. 이사벨라 비숍이 주목했듯이 한국민은 우수하다. 그러나 뛰어난 기질도 극단적인 정쟁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거듭 말하지만 제도와 민주적 시스템을 만드는 정치는 중요하다.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정치학자 제임스A. 로빈슨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들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왜 어떤 나라는 가난하고, 어떤 나라는 부유한지 밝혔다.

국가가 실패하는 결정적 원인은 지리적, 역사적, 인종적 조건이 아니라 바로 '제도'라는 것이다. 한 국가의 운명은 경제적 요인에다 정치적 선택이 더해질 때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실패와 성공은 경제제도와 정치적 선택 때문이라고 결론 짓는다. 남한과 북한은 좋은 사례다. 남한과 북한은 오랜 세월 지리적, 인종적, 역사적 특질을 공유해 왔다. 그런데 분단 70여 년 만에 나타난 격차는 놀랍다. 남한은 교역 규모 세계 11위다. 반면 북한은 기본적인 배고픔마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제도와 정치가 빚은 결과다.

대한민국은 질적 도약을 앞두고 있다. 그러려면 정치가 바로 서야한다. 지금처럼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한다면 저성장 덫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정부와 여당은 귀를 열고 야당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쓴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야당 또한 우리가 처한 경제위기를 감안해 국정 동반자로서 역할을 고민하는 게 온당하다. 그럴 때 비숍 여사가 구한말 조선에서 발견한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줄 수 있다.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는 말을 명심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임병식씨는 전북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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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분야는 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등이다.중남미, 중동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중남미를 수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벽돌 쌓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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