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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데 힘들진 않으셨어요?" 인사치레로 흔히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지난 11월 26일, 나종민 대표를 만나기 위해 장애인 사진관 <바라봄 사진관>을 찾은 내게 그가 건넨 첫마디다. 더 많은 사람이 힘들지 않게 사진관을 찾을 수 있길 바랐던 나 대표. 홍대입구는 그런 바람이 담긴 장소였다. 그렇기에 그의 말은 여느 인사치레와는 달랐다.

2011년 푸르른 봄에서 무더운 여름으로 넘어가던 때 즈음. 나 대표는 뇌병변 장애아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사진 촬영 봉사를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한 아이의 어머니가 나 대표에게 다가왔다.

사진관에서 나왔냐는 물음에 그는 사진 봉사를 나온 것뿐이라고 답하며 동네에 사진관이 없는지 물었다. "비장애인이 가는 사진관에 가고 싶지 않아서요. 괜히 위축되거든요." 돌아온 대답이었다. 이후 억대 연봉의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나 대표는 2012년 1월, 장애인이 편히 촬영할 수 있는 <바라봄 사진관>을 설립해 8년째 운영 중이다.
    
사진관 내 경사로 경사로가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이동성이 보장된다. (바라봄 사진관 제공)
▲ 사진관 내 경사로 경사로가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이동성이 보장된다. (바라봄 사진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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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성 고려한 공간으로

2016년, 나 대표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지리적으로 만족스러운 서울 마포구의 합정에서 계속 사진관을 운영할 것인가, 홍대입구로 이사할 것인가. 합정도 두 번째 공간이었고 정착하기에 나쁜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반지하라 경사로를 만들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도 없었다. 장애인을 위해 시작한 사진관이니 분명히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굉장히 미안하고…"

나 대표가 합정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당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방문하는 일은 일 년에 몇 번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미안한 마음을 걷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세 번째 장소를 선정할 때는 장애인의 이동성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게 찾은 장소가 지금의 둥지, 홍대입구다.

'착한 사진가'는 어떻게 먹고 사나

홍대입구는 '핫플레이스'로, 높은 임대료를 자랑한다. 사진관을 운영하며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는 '먹고 살 수 있나?' 하는 기본적인 부분으로 이어졌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홍대... 임대료 높지 않나요?"

나 대표는 너털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먹고 사나 궁금하죠. 제 사재 털지 않아요." 그는 사진관의 수익 모델을 설명했다. 20%는 후원을, 나머지 80%는 유료 촬영을 통해 충당한다. 유료 촬영이라 해서 돌잔치 등 개인적 행사에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 비영리 단체로부터 사진 촬영 의뢰를 받고 거기서 수익을 얻는다. 수익 모델이 꽤 건재한 덕에 사진관이 8년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착한 사진사' 나종민 대표 <바라봄 사진관>을 운영 중인 나종민 대표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 "착한 사진사" 나종민 대표 <바라봄 사진관>을 운영 중인 나종민 대표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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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가득 찬 곳간

"돈이 빠진 부분을 채우고도 남아요."

취미로 시작한 일이 수익 모델을 지닐 정도로 큰 사업이 되었다. 취미가 본업이 되면 흥미를 잃는 경우가 많은데 나 대표의 눈에는 여전히 생기가 가득했다. 나 대표는 자신의 일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본업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바라봄 사진관>의 활동은 조직의 수익과는 연계되지만, 나 대표 개인의 수익과는 연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보다 나 대표 개인의 자산은 줄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곳간은 더 풍요롭다.

나를 달리게 하는 연료, 보람

나 대표를 8년간 달리도록 한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그가 역으로 질문했다. "제가 하는 일에 동력이 되는 게 뭐가 있겠어요?" 돈이 아니라는 것은 앞서 말했던 것들로 입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명예? 나 대표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걸 하면서 명예를 얻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현실적인' 것 중 나 대표가 이 일을 계속할 만한 요소는 없었다. "그럼 남는 건 일을 하며 느끼는 보람 아닐까요?"

기억에 남는 손님? 없다

매 순간이 보람찬 나 대표지만, 그럼에도 특별히 더 강렬한 느낌을 준 손님이 있지 않을까.

"있죠. 그런데 특정 누군가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제가 하는 일에) 조금은 안 맞지 않나…."

예전에는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냐는 질문에 특정 인물을 예시로 들곤 했다. 그러나 촬영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 모두 다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면 사연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되는 것 같았다. 또한 어쩌다 아주 특별한 케이스의 사연만이 그에게 동력이 되면 이 일은 유지되기 힘들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을 대변하는 답인가' 고민 끝에 새롭게 작성한 답안이다.

카메라 앞에서 얼어붙기는 '누구나' 매한가지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사진을 처음 찍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인지 더 어색해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 대표는 이런 편견에 일침을 놓았다.

"신체가 불편하면 자세 잡기가 어려운 경우는 있죠. 그런데 비장애인도 몸집이 있는 분은 다리 꼬는 자세를 힘들어해요. 그건 잘못되거나 이상한 게 아니고 다른 거잖아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아요."

"비장애인분." 나를 지칭한 말이었다. "저 조명 앞에서 자신 있게 포즈 잡을 수 있어요?" 한껏 어색해하며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있을 것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카메라 앞에서 얼어붙기는 매한가지다. 나 대표는 편견에 사로잡혀 당연한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진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광각렌즈로 더 많은 사람 담고파

매일 카메라를 잡는 나 대표. 자신을 렌즈에 비유한다면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광각은 넓고 얕게, 망원은 좁고 깊게 보는 거거든요. 저는 광각 렌즈인 것 같아요."

그는 장애인의 촬영 권리에 집중하고, 이들 한명 한명의 모습을 담아내는 일을 한다. 얼핏 보면 좁고 깊은 '망원 렌즈'다. 그러나 나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촬영하는 시간 동안 방문하는 이들의 사연을 깊숙이 파고들 수는 없으리라.

보다 많은 이에게 사진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게 나 대표의 몫이다. 사진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이 사진관을 개업했던 햇병아리 사진사는 어느새 능숙한 8년 차 사진사가 되었다. 그가 광각렌즈로 바라보는 세상이 더 따뜻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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