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하얗게 일렁이던 꽃빛이 어느 순간 쌉싸래한 국수 가닥으로 씹히기 시작한다. 붉은 대궁과 짙은 초록의 잎들이나 산밭을 가득 채워 피던 꽃빛 어디에서도 다소 거칠면서도 풋풋하며 쌉싸래한 맛을 짐작할 수 없었다. 메밀막국수는 오래전 맛보았던 기억에서는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일정 부분 그때의 풍미를 간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메밀막국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국수의 종류와 메밀이 언제부터 이 땅에서 재배되었는지부터 살펴보려 한다.
  
메밀밭 구황작물로 재배되었다는 메밀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재배된 주요 작물이다. 현대에 와서는 봉평과 같은 지역에서는 작물 이상의 역할도 해낸다.
▲ 메밀밭 구황작물로 재배되었다는 메밀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재배된 주요 작물이다. 현대에 와서는 봉평과 같은 지역에서는 작물 이상의 역할도 해낸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중국은 면요리가 발달된 나라고, 일본 또한 다양한 면요리가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하는 나라다. 면을 만드는 재료 또한 밀가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중국은 면을 만드는 방식에서 한국이나 일본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대체로 밀가루를 반죽해 숙성을 시킨 상태에서 필요한 양만큼 즉석에서 다양한 기술로 면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은 우동과 라멘 그리고 우리의 막국수와 비슷한 메밀을 재료로 한 소바(蕎麦, そば)가 있는데 이는 대부분 역사적으로 중국과 한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만큼 우리를 포함한 동양3국은 서양에서 즐겨 먹는 파스타가 중국이 원조라 할 만큼 보다 다양하게 발달됐다.

국수의 발달에서는 서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들도 나름으로 다양한 면요리가 발달되어 있다. 밀을 원료로 한 면류에서 서양은 '파스타(Pasta)'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요리(재료)가 있는데 이는 형태나 모양으로 다시 다양하게 구분된다. '스파게티(Spaghetti)'도 길이가 긴 파스타를 가리킨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스파게티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보다 길거나 상상 이상으로 넓은 형태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동양의 면류 요리보다는 종류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파스타 중국에서 건너간 국수로부터 발달했다는 파스타는 또 다른 국수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 파스타 중국에서 건너간 국수로부터 발달했다는 파스타는 또 다른 국수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밀가루로 만든 파스타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크기와 만들어진 형태나 굵기는 물론이고 첨가되는 재료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 그 종류만도 300여 종이 넘는 걸로 알려졌다.

가령 오징어먹물을 넣고 만든 파스타는 물론이고, 귀리나 보리, 또는 쌀과 같은 곡물을 첨가한 파스타도 있다. 심지어 피자처럼 얇게 도우를 만들고 거기에 속을 넣은 우리의 만두와 같은 방식으로 즉석에서 제조해 조리하는 라비올리(Ravioli)나 토르텔리(Tortelli)가 있고, 이보다 작은 아뇰로티(Agnolotti)도 있으니…

이제 파스타나 스파게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겠다. 그리고 강원도 양양의 메밀막국수가 주요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잠시 국수의 주요 재료인 밀과 메밀이 작물로 언제부터 재배되었을까?

"메밀이나 메밀막국수에서 양양군이 뭐 대단한 고장이라고 그러느냐" 하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석호가 많이 발달된 양양군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해 살았던 고장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양양군도 거기 걸맞게 다양한 형태로 이 땅의 음식문화 발전에 기여해 왔으리란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양양의 습지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들어오며 발달한 석호(潟湖)는 인류문명이 정착해 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손양면 오산리 선사유적지는 바로 그런 석호에 위치해 있고, 거기서 멀지 않은 서면 범부리 지석묘 또한 기원전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았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 양양의 습지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들어오며 발달한 석호(潟湖)는 인류문명이 정착해 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손양면 오산리 선사유적지는 바로 그런 석호에 위치해 있고, 거기서 멀지 않은 서면 범부리 지석묘 또한 기원전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았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에서 밀이 재배된 걸 확인된 기준으로 평남 대동군 미림리에서 발견된 밀은 기원전 200~1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경주의 반월성지와 부여의 부소산 백제 군량창고의 유적에서도 밀이 발견되었으니 어쩌면 그보다 일찍부터 주요작물로 이용되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메밀 또한 백제의 유적에서 발굴된 사실로 비추어 최소 5세기엔 작물로 이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엔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백제의 영토가 한수이남(漢水以南)이란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수이남이라 함은 지금의 경기도 일원과 충청남북도를 비롯해 전라도 전역을 모두 이르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이에 비추어 메밀이란 작물의 재배특성상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같은 시대나 그 이전부터 주요작물로 이용했다고 보아 무방하다.

메밀은 서늘하고 습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데 대개의 산간마을들이 이에 해당된다. 따라서 백두대간을 축으로 한 지역들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메밀을 많이 재배하지 않았을까 싶다. 강원도의 전역에서 메밀음식이 감자나 옥수수처럼 대표적 작물로 인식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부에서 메밀막국수를 춘천의 대표적 음식으로 생각한다. 이는 그만큼 수도권과 교통이 쉽게 연결되는 점을 감안해야 된다. 그리고 봉평지역이 메밀의 주산지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가산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으로부터 기인했다.

소설에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공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딱 이 부분부터 두 마디만 더 메밀을 그려냈을 뿐인데 말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공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 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부지."

-가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하기야 붕어빵이 모양은 붕어 모양이기는 하지만 붕어는 향조차도 안 들어가 있고, 노래 한계령에 한계령이란 단어는 단 한 마디도 사용되지 않았어도 붕어빵이요 한계령이 아닌가. 거기에 비하면 메밀꽃 필 무렵은 이만큼이라면 상당한 분량으로 고지대에 속하는 봉평의 산자락에 흐드러지게 피는 메밀꽃의 서정을 풀어놓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 두 고장이 메밀의 본고장이라 주장하면 오히려 백제의 유적지들이 있는 고장 모두가 자신들의 고장이 메밀의 원산지라 우겨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다만 가산 이효석 선생이 소설을 통해 한층 더 강원도 산촌지역의 늦여름 풍경을 살갑게 살려내었음을 고마워하면 된다. 평창군에서 소설이 그려낸 풍경을 살리고자 매년 봉평 일대에 많은 양의 메밀을 심어 꽃을 만나게 한 건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메밀막국수 메밀을 빻은 가루에 전분을 약간 섞고 반죽을 해서 가마솥 위에 걸친 분틀에 넣고 뽑아낸 국수는 냉면과 순메밀국수의 중간 정도 질긴 식감을 지녔다. 요즘은 배 한 조각과 삶은 계란 반쪽, 그리고 저며 썬 편육을 함께 넣은 막국수를 만날 수 없다.
▲ 메밀막국수 메밀을 빻은 가루에 전분을 약간 섞고 반죽을 해서 가마솥 위에 걸친 분틀에 넣고 뽑아낸 국수는 냉면과 순메밀국수의 중간 정도 질긴 식감을 지녔다. 요즘은 배 한 조각과 삶은 계란 반쪽, 그리고 저며 썬 편육을 함께 넣은 막국수를 만날 수 없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면수 국수를 만드는 사람도 면수라 하는 걸 봤다. 그러나 막국수를 먹을 때 메밀면을 삶은 뜨거운 물을 주전자에 담아내는데 이 또한 면수라 한다. 그대로 마시거나 약간의 간장을 타 마신다.
▲ 면수 국수를 만드는 사람도 면수라 하는 걸 봤다. 그러나 막국수를 먹을 때 메밀면을 삶은 뜨거운 물을 주전자에 담아내는데 이 또한 면수라 한다. 그대로 마시거나 약간의 간장을 타 마신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양양군은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는 전국에서 단연 선두에 서있다. 송천 떡마을이나 해담마을 등 그 이름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냈다.

여기에 최소한 구룡령이나 한계령 아래 비탈진 산밭마다 삼복에 메밀을 뿌려 꽃을 피워놓으면 가을 서정을 찾는 발길들이 줄을 이으리라. 아깝게 방치된 산밭들이 얼마나 많으며, 온갖 잡초와 잡목들로 밭도 아니요 산도 아닌 형국으로 볼썽사나우니 안타깝다.

물론 양양군에도 여러 곳에 메밀을 심고 초가을로 접어들면 붉은 대궁에 하얗게 피기 시작하는 꽃을 만난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찰 수 없다. 방치된 밭들만 모두 메밀을 심어도 매년 두 차례 수확이 가능하니 양양지역의 메밀막국수집들은 모두 관내 생산만으로 충분히 운영하지 않을까.

대담함과 적극성은 이미 마을사업들을 진행하며 터득한 상태니 이런 정도의 시도는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메밀밭이 그림처럼 주변에 빙 둘러선 메밀막국수집은 상상만으로 믿음이 가지 않는가.

어차피 메밀이란 작물이 강원도의 지리적 여건이나 토양과 잘 어우러지고, 강원도 전역이 메밀막국수의 본고장이다. 양양군의 수려한 자연환경에 기대어 온통 하얗게 핀 메밀꽃으로 정점을 찍는다면 참으로 멋진 그림이 그려지겠다.
  
봉평의 메밀밭 메밀이 봉평에서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이는 강원도의 전체 유휴농지를 활용한다면 최상의 마케팅자원이라 생각된다.
▲ 봉평의 메밀밭 메밀이 봉평에서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이는 강원도의 전체 유휴농지를 활용한다면 최상의 마케팅자원이라 생각된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흙돌담 오래전 양양지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던 돌담과 흙돌담을 이제는 만나기 어렵다. 관광지로 1980년대 개발된 오색마을은 직전까지 돌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나 획일적인 개발로 그 정취가 사라졌다.
▲ 흙돌담 오래전 양양지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던 돌담과 흙돌담을 이제는 만나기 어렵다. 관광지로 1980년대 개발된 오색마을은 직전까지 돌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나 획일적인 개발로 그 정취가 사라졌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음식은 분명히 하나의 문화다. 그것도 유구한 역사와 함께 숨 쉬며 발전해왔고 발전해갈 살아있는 문화생명체다.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풍부하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적응하며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왔는지는 김치나 장(醬)류 음식만 보더라도 확인된다.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음식이 되고, 또 다른 재료와 어우러지며 전혀 새로운 형태로의 맛을 낼 줄 아는 김치와 간장, 고추장, 된장 아닌가.

그 모두를 아우르며 메밀을 재료로 하여 강원도의 음식문화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메밀막국수는 그 기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지금과 같은 형태 이전에도 제면(製麪)기법은 존재했고 이용했으리라 봄이 옳다.

홍두깨로 두리반에 반죽을 밀어 얇게 만든 다음 칼로 썰어 면을 만드는 방법이 먼저일 수도 있는 일이고, 시루나 성긴 체(얼기미 : 구멍이 큰 체를 이름)에 올려둔 반죽이 구멍을 통해 아래로 빠지는 현상을 발전시켜 분틀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메밀로 만든 음식으로는 국수와 밥도 있지만 팥소(팥앙금)를 넣은 부꾸미와 김치나 만두를 빚을 때 넣는 소를 채운 전병도 있다. 그리고 메밀묵도 빠질 수 없는 메밀을 재료로 한 음식이다.

메밀전병은 예전엔 '메밀소뎅이'라고도 했다. 소뎅이는 솥뚜껑을 뒤집어 화로에 올려 기름을 두룬 뒤 여기에 밀가루나 메밀가루와 같은 반죽을 얇게 펴 부쳐낸 전(적)을 이르는 또 다른 말이기도 한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만두소처럼 김치와 두부, 돼지고기, 시래기 등을 다져 넣은 메밀전병도 메밀소뎅이라 했다.

요즘에야 메밀전병도 상품으로 제조되어 각 음식점에 납품을 하는 업체가 있다. 거기에 메밀을 직접 빻아 사용하는 음식점도 만나기 어렵다. 하물며 맷돌로 메밀껍질을 벗기는 과정인 '능군다'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도 "우리는 메밀막국수가 전문"이라는 세상이니.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요즘은 메밀가루가 그냥 반죽만 하면 되게 나와요"라 말엔 도리어 질문한 입장에서 당황한다.

이쯤 되면 메밀막국수에 대해 왈가왈부를 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불만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걸 알아차렸으리라 본다. 중국에서 배워간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서유럽 전역에서 300여 종이 넘는 파스타로 새롭게 탄생했듯, 메밀막국수의 맛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불만이라면 스스로 길을 모색하면 된다.

대자리 깔린 황토구들장에 엉덩이 뜨거워 비비 몸을 비틀며 톡 쏘는 겨자는 물론이고 설탕과 식초까지 욕심을 부려 먹던 풍경도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고, 누구나 자신이 최고라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다. 이미 원조란 이름이 상호로 사용되었다고 그 곳이 원조가 아니고, 옛날이나 전통이란 말을 끌어다 붙였다고 옛날 방식이나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란 거 정도는 충분히 알게 됐다.

맛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한다.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일이다. 객관적이지도 않은 여행지에서 어쩌다 먹게 된 음식을 자랑한 거에 현혹되고, 이제 막 문을 연 업소의 부탁으로 소개하는 누군가의 얘기를 사실로 믿고 찾아가 실망하는 일은 조금만 노력하면 피하는 거 어렵지 않다.

이 정도로 이번 이야기를 끝내고 다음 이야기부터는 양양군의 6개 읍면의 막국수집들에 대해 소개하겠다. 최소 1개면에 한 꼭지의 이야기는 족히 될 일이고 보면 최소 6편으로 나뉘어 소개되리라 본다. 물론 그 수가 현저히 많거나, 소개할 자료가 많은 경우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