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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집에 있는 장난감 가져와서 놀아도 돼요?"
"그럼. 위험하지만 않으면."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나는 6학년 담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아이들은 위험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선생님의 당부를 매우 폭넓게 받아들였다. 시작은 부드러웠다. 

다음 날, K가 제기를 가져왔다. 흐뭇했다, 민속놀이 제기. 순발력도 기르고 체력도 향상되는 제기를 금지할 담임은 없다. 제기는 금방 인기를 끌었다. 아이들은 서로 제기를 차고 싶어서 순서를 기다렸다. 툭! 툭! 제기 차는 소리가 끝없이 계속되었다. 쉬는 시간에 교사용 책상에 앉아 공문 처리를 하고 있으면 모니터 너머로 은빛 제기가 오르내렸다. 

제기차기는 곧 단체 스포츠로 진화했다. 남자애들이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제기를 공중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주변 아이를 밀치고, 길을 막았으며, 소리를 질렀다. 놀이는 민폐가 되었다.

운동장이나 놀이터에 가서 하라고 경고 하였으나 영하를 오가는 날씨 탓에 아이들은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복도에서, 화장실 앞에서, 교실 구석에서 단체 제기를 하다가 나에게 걸렸다. 세 번 경고 규칙에 따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제기를 압수했다. 
 
 500냥쌍방울민속제기를 압수했다. 미안해도 규칙상 어쩔 수 없다.
 500냥쌍방울민속제기를 압수했다. 미안해도 규칙상 어쩔 수 없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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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아닌 의심
     
제기가 사라진 교실은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자연이 진공 상태를 허락하지 않듯, 아이들은 놀거리 없는 교실을 허락하지 않는다. 교실 뒷 게시판에 애들 작품을 붙인다고 낑낑대고 있으니 어디선가 짝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딱지를 치거나 실내화로 장난을 치겠거니 했다. 그림을 다 전시하고 자리에 돌아오는 데 명절에 자주 본 풍경이 펼쳐졌다. 

"엄마가 똥이 좋은 거라고 하던데."
"쌍피라서 그래."


녀석들은 민속명절놀이 제기를 금지당하더니, 민속명절노름 화투를 가져왔다. 도박도 정신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버럭 화를 내려다가 슬그머니 다가갔다. 풋! 웃음이 터졌다. 손이 작아서 패도 제대로 못 쥐고, 피와 광도 헷갈려하면서 열심히 짝을 맞추고 있었다. 자기가 가져온 화투장을 어디에다가 두어야 할지 몰라서 쌓아두기까지 했다. 

"그래 가지고 점수 계산은 하겠냐? 딱 한 판 만이다."
"죄송해요. 미술 콜라주 준비물인데 애들이 하자고 해서... 근데 이거 여기 맞추는 거 맞아요?"


나는 아이들을 혼내다 말고 이미 패를 분석 중인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광이 우선이야, 피박은 면해야지, 쌍피부터! 같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담임 신분으로 필승 전략을 전수할 수 없어서 그냥 "비슷한 문양끼리 연결하면 돼"하고 침을 꿀떡 삼켰다.

한 판을 끝으로 교실에서 사라진 화투패 중 몇 장은 콜라주 작품에 들어가게 되었고, 아이가 정말로 자기 번호를 화투로 표현한 것인가 하는 의심 아닌 의심을 했다. 
 
 화투를 곁눈질로만 배웠는지 쥐는 법도, 놓는 법도 잘 모른다.
 화투를 곁눈질로만 배웠는지 쥐는 법도, 놓는 법도 잘 모른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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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김구 선생님

그 후로도 종이접기, 배드민턴 등 크고 작은 놀잇감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장난은 수업 시간에도 계속되었다.

국어 시간에 김구 선생님의 '내가 원하는 나라'를 진지하게 읽던 중이었다. '내가 원하는 나라'는 백범일지 '나의 소원' 중 일부로서 김구 선생님의 사상적 정수가 담겨있는 글이다. 더욱이 우리 반은 1학기에 근대사를 배우며 영화 <암살>을 보았고, 김구 선생님에 대해서도 따로 공부했기 때문에 관심도가 높았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큭큭큭."


감정이 한참 고조되어 있는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왜 웃냐? 이게 웃기니?"
"아니 M이 계속 웃기잖아요."


웃음소리가 2모둠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눈에 불을 켜고 둘러보았다. M이 평소답지 않게 양팔로 책상 위를 가리고 있었다.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교과서를 빼내었다.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큰 숨을 뿜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김구 선생님.
 죄송합니다. 김구 선생님.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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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거 왜 그린 거니?"
"김구 선생님이 좋아서요."


좋다는데 어찌하나, 고인 모독죄를 물을 수도 없고.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면 집중력이 떨어지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하고 책을 돌려주었다.

학교에서 웃는 아이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종례를 하다 말고 물었다. 

"너희는 가만히 보면 학교에 놀러 오는 것 같아."
"네 맞아요. 친구들이 있잖아요."


해사한 웃음. 곧 중학생인 녀석들의 당당한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문득 1학기 상담 중에 어떤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저는 집에서 혼자 유튜브 볼 바에야, 친구들이랑 같이 게임이라도 하라고 PC방비 줘요."

학업 및 행동 관리도 잘 되고, 아이도 꽤 균형 잡힌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기에 그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같이 놀 친구가 드문 아이들. 학교는 공부하는 공간이기 이전에 친구를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흔히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곳이 학교라고 하는데, 어느샌가 건전한 놀이문화를 가르치는 게 학교의 주요 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 

말초적이고, 건강을 해치며,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나쁜 놀이 말고 좋은 놀이를 아이들에게 권장하고 같이한다. 스마트폰 없이도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친구와 함께 몸과 마음을 쓰는 놀이. 학교에서 웃는 아이들을 자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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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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