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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을 접할 때마다 아이들 성교육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나 부모인 내가 성장하는 동안 제대로 '성'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 성교육의 가장 큰 문제다.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아이들의 발달 단계별 성 특징과 가정 내 성교육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마음은 앞서지만, 일상에서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지난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이 성교육'이라는 주제로 전문 강사를 초청해 부모교육을 열었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으로는 한계를 느끼던 중이라 정말 반가웠다. 성교육은 엄마 혼자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남편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따로 성교육을 듣기 어렵기 때문에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평일 오후 7시에 시작하는 강연이었지만 보육교사, 부모, 조부모 등 100여 명이 어린이집 강당을 꽉 채웠다. 다른 양육자들에게도 '성' 교육이 큰 고민인 듯했다.

어린이집에서 마련한 교육이니 영유아 아이들의 인지 발달과 특성을 고려한 성교육을 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강연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만 있는 거다, 남녀가 사랑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에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성애는 에이즈를 유발한다... 옮겨 적기도 민망한 동성애 혐오 발언을 늘어놓았다.

이제 좀 다른 주제로 넘어가나 싶었는데 이어지는 교육은 더 황당했다. 임신중절 합법화는 잘못된 판결이었기 때문에 다시 되돌려야 하며 결혼 전 섹스를 못하도록 '혼전순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단다. 최근 피임 방법을 구체적으로 교육하는 성교육 흐름은 아이들을 문란하게 만든다면서 비판했다. "자위는 더럽다"는 말까지 듣고는 머리가 멍해졌다. 100년 전 성교육 현장에 앉아 있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아이의 성기 명칭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몇 살까지 남매를 함께 목욕 시켜도 되는 건지, 가족끼리 하는 신체접촉에 동의 과정이 생략돼도 괜찮은 건지, 자기방어 능력은 어떻게 키워줄 수 있을지 등 가정에서 양육자로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교육을 배우고자 했건만. 웬 뜬금없는 차별금지법 반대, 낙태죄 폐지 반대, 혼전순결 강조인지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귀한 평일 저녁 시간을 기꺼이 빼서 참여한 부모 성교육은 시대착오적이었고 큰 불쾌감만 남겼다.

형이 무서워 팬티를 내렸다는 아이

"(어린이집) 통합반에서 K형이 엉덩이 보여달라고 해서 바지랑 팬티를 내렸어. 친구들이 웃어서 너무 슬펐어."

며칠 후 저녁 식사를 하다가 5살 아들이 울먹이며 말한다. 나와 남편은 깜짝 놀라서 아이를 달랬다. 다른 사람의 몸을 들춰보거나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반대로 누가 몸을 보여 달라고 할 때는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기본적인 성교육을 누차 해왔으니 5살 아이도 형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왜 싫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K형은 무서워!"

같은 기관에 다니는 7살 딸에게 상황을 물었다. 딸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다. 동생이 심한 공포와 수치심을 느끼는 줄도 모르고 함께 그 상황을 웃고 즐긴 모양이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일이었고 "팬티를 보여달라"는 장난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5살이나 7살이나 아이들일 뿐인데, 아이들끼리 두 살 차는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요구를 거부하거나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기 어려울 만큼 형은 두려운 존재였다.

다음날 어린이집에 상황을 전했다. 이건 '장난'이라고 가볍게 넘기면 안 되는 심각한 일이니 이번 일을 계기로 기관의 모든 아이에게 재발 방지 성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어린이집에서는 알았다는 대답을 해놓고 일주일이 지나도 성교육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쉽게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교육을 해야 했는데도 말이다.

실망스러운 부모교육에 이어 정작 필요한 아이 성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니. 보육기관이 제 역할은 하는 건지, 성인지 감수성은 있는 건지, 아쉬움을 넘어 화가 났다.

사회가 영유아 성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생님과 함께 놀이수업을 하고 있는 누리과정 어린이들(자료사진)
 선생님과 함께 놀이수업을 하고 있는 누리과정 어린이들(자료사진)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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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다시 한번 성교육을 요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심하고 있던 차에 성남 어린이집 성폭력 사건 소식을 접했다. 남 일 같지 않다. 피해 여아가 내 딸일 수 있고, 7살 형이 무서워 엉덩이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고 울먹이던 아들이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간 성폭력 사건을 많이 접해 왔지만,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 사건이라 충격이 더 컸다.

성교육은 수시로, 어릴수록 반복해야 한다. 시기별로 아이들의 성 욕구가 어떤지, 발달 단계에 적합한 교육 방법은 무엇인지 양육자와 교사가 함께 배워 지도해야 한다. 부모가 아무리 성폭력에 관한 문제의식이 있어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기관에서 제대로 가치관을 심어주지 않으면 역부족이다. 사회적으로 영유아 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부모 잘못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 찾아간 '우리 아이 성교육'은 황당한 내용이었고, 내가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어도 내 아이는 성폭력을 피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아주 어린 나이부터 유튜브, 각종 커뮤니티, 게임, 만화, 포르노 등 자극적인 콘텐츠의 접근이 쉬운 시대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숙한 영유아도 성인들의 성폭력을 모방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걸맞은 적절한 규제나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아이에게 건강한 성인식을 심어주는 것에 한계가 많다.

부모를 법정으로 내모는 사회라니

K의 문제행동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멈출까?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잘 모르니까 '장난'이라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 엉덩이를 보여달라는 요구가 더 심각한 성폭력으로 진화하지는 않을까? 친구들이 웃어서 슬펐다고 말하며 눈물짓던 아이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부모 입장에서는 걱정과 불안이 쌓인다.

어린이집에 전화하여 상황을 알릴 때, K를 가해자로 지목하지 않았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구분 없이 모든 아이에게 재발 방지 성교육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인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니 어린이집을 옮기라 한다. 국공립어린이집은 좀 낫지 않을까 하여 대기를 걸어둔 상태다. 그러나 기관을 바꾸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대안이 되어서도 안 된다. 어느 기관을 다니건 상관없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성남 성폭력 사건이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일어났다는 말에 그나마 걸었던 기대도 무너졌다).

아이들이 일상의 사소한 폭력도 인식하며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은데 간단한 일도 쉽지 않다. 이제 나는 어떤 절차로 접근해야 아이들의 감각을 키워줄 수 있는 걸까? 어린이집 원장에게 얼굴을 붉히면 될까? (예의를 갖춰 말했더니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성교육 강사를 직접 알아봐서 아이들, 양육자, 보육교사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시켜야 할까? 기관의 강사 초청 수준이 100년 전 수준이라 믿고 맡길 수가 없다. K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사과를 받으면 될까? (내가 원하는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도움받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성남 어린이집 성폭력 사건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씁쓸하다. 만 5세 아이가 신체적 피해와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해결방안이 엄격한 법뿐이라는 건 소통하고 공감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공동체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 아닐까.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어른이 되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건가. 참 슬픈 현실이다.

태그:#성남어린이집성폭력, #경계존중, #성폭력, #성교육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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