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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 서재에 읽지 않은 책이 쌓여 있는 것은 책을 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읽는 속도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단 사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더 이상의 용도가 없어져서 그냥 아무렇게나 내 팽겨 둔 이유가 더 크다.

좋은 책은 사두면 언젠가는 읽게 되겠다는 기대는 별로 없다. 유혹하는 책을 발견하고,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고, 도착한 택배를 열어서 새 책을 만지작거리는 몇 분 정도까지가 책과 관련된 나의 즐거움은 거의 끝난다. 철이 없는 것은 알겠는데 호사스러운 취미는 아니다. 한 달에 40만 원 정도의 투자로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취미 생활이 책 구매 말고 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책을 사는 것은 왜 그토록 재미날까?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은 애머런스 보스크가 쓴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에 나온다. 많은 사람들에게 책은 처음 만나는 장난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독자들(아이이건 어른이건)의 눈에 들려고 노력한다.

알록달록한 무늬와 색깔로 아이들을 유혹하는 것이 책이라는 말랑말랑한 장난감이다. 나처럼 어른이 되고 늙어가면서도 책 사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좀 더 오랫동안 책과 함께 놀았기 때문일 테고 많은 시간에 걸쳐서 책이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전자책이라는 라이벌이 처음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종이 책의 종말이 다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 책이라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은 코웃음을 치었다. 전자책은 쓰다듬고 냄새를 맡으며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의 원래 용도는 장난감이 아니고 '사람의 지식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의 형태로 배포하기 위한 저장고이기도 하면서 기호를 배치함으로서 정보를 전하는 매개체' 이었다. 수메르 인들은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이동 가능한 저장 장치로 유크라테스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흙을 선택했다. 

진흙을 사용하기 편하게끔 납작하게 만들다가 결국 점토판이라는 '수첩'까지 진화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비석처럼 크지 않았다.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필경사의 손바닥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성냥갑에서 큰 휴대폰 크기까지 다양하였으며 앞 뒤 면만 쓸 수 있는 오늘날의 종이와는 달리 좌우면도 쓸 수 있었다. 제작도 간단해서 대부분 햇볕에 말리는 것이 제작 과정의 전부였다. 

점토 책은 또 다른 장점도 있었다. 문서를 보관해 두는 보관소(도서관)에 대화재가 났을 때 두루마리는 유실되었지만 불에 타지 않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점토 책은 끄떡없었다. 다만 점토판 도서관의 주인인 왕들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의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점토판 책에는 빌려갔다가 당일 반납하지 않으면 혼찌검을 내주겠다는 경고문이 기록되어 있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지식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휴대용 장치'를 발전시킨 수메르 인처럼 이집트인들도 나일 강 유역에서 흔히 자라는 파피루스를 책으로 개발하였다. 파피루스 책의 빈번한 용도중의 하나는 죽은 사람의 무덤에 함께 매장한 '이집트 사자의 서'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에게 내세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200개의 주문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이게 빈부에 따라서 차별되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은 화려하고 정교한 그림이 그려진 고객 맞춤형을 그렇지 않은 보통사람들은 기성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맞춤형은 고객이 디자인을 직접 선택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사전에 제작된 저가용 두루마리 빈칸에 죽은 사람의 이름만 기입하는 방식이었다.

비록 파피루스가 원시적인 형태의 저장장치였지만 오늘날의 최첨단 정보 취득 장치인 인터넷과 책의 현대적인 형태의 기원을 제공했다. 두루마리가 영어로 스크롤 (scroll)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당시 두루마리는 길이가 9~12미터였으니 한눈에 모든 내용을 다 볼 수 없었고 위아래로 펼치면서 쓰고 읽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모니터의 한 면에 모든 내용을 다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위아래로 커서를 움직이면서 읽거나 보는 행위를 스크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두루마리의 겉면에 내지의 내용이나 첫 구절 또는 저자의 이름을 기록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책 표지의 기원이 되었다. 

파피루스에 이어 등장한 신기술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드는 양피지였다. 양피지가 비록 파피루스보다 더 질기고 매끄러운 고급소재였지만 수세기 동안 파피루스를 밀어내지 못하고 공존했다. 양피지가 좋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제작하는데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고 짐승을 도살해야 하는 만큼 비용도 많이 드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자책을 비롯한 혁신적인 형태의 책이 나타나더라도 최소한 몇 세기는 종이 책과 공존할 확률이 높다. 새로운 형태의 매체가 나타났다고 해서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옛 매체를 단번에 밀어내지는 못한다.

메소포타미아인, 이집트인과 마찬가지로 중국인도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책을 만들었다. 중국인은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나무를 끈으로 엮어서 이른바 간책을 만들었다. 간책은 중국 최초의 휴대용 정보 저장 및 전달 장치였다. 한자 책(冊)은 글자를 새긴 대나무를 엮은 모습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다. 

드디어 채륜이 종이라는 최첨단 제품을 발명했는데 놀랍게도 5세기 내내 종이와 대나무 책 즉 간책은 불편한 동거를 했다. 결국 종이가 정보 저장 및 전달 매체의 지배자로 등극하게 되지만 현대인이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편리한 종이가 불편한 간책을 서서히 밀어낸 것이 아니라 황제 환현이 더 이상 낡아빠진 간책을 사용하지 말고 신제품인 종이를 사용하라고 칙령을 내림과 동시에 전격적으로 종이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표지 사진 표지
▲ 표지 사진 표지
ⓒ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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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엄청나게 큰 책은 지식을 취득하는 매개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자랑질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큰 책을 '커피 탁자 책'(coffee-table book)부르는데 한 손에 들고 읽기 힘들기 때문에 탁자위에 올려두고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세시대에 이런 책들은 수도원이나 부잣집에서 다리가 긴 탁자위에 과시용으로 올려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경외심과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금테를 두르고 보석을 박는다면 그 효과는 더 컸으리라. 

중세 말기 때는 발달된 인쇄술 덕분에 소맷부리나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크기의 기도서가 출간되었다. 생각 날 때마다 꺼내서 기도를 올림으로서 자신의 부와 신앙심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건 마치 현대인이 시간을 보는 척 하면서 명품 시계를 남에게 쓱 보여주는 경우와 비슷했다.

17세기에 들어서자 책을 상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들이 속속 등장했다. 다른 인쇄업자가 만든 책과 자신이 만든 책을 구별할 수 있도록 오늘날의 출판사 로고 비슷한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책 내용을 독자들에게 맛보여주고 홍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가능한 긴 제목을 정했다.

우리가 <돈키호테>라고 알고 있는 소설의 원래 제목은 <기상천외한, 기지가 넘치는, 재능이 넘치는 라만차 출신의 돈키호테>이다. 18세기에 들어서 이 마케팅 기술은 더욱 발전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원제목을 알려줄 테니 놀라지 마시라.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 이 정도면 제목이 곧 줄거리이자 요즘 말로 스포일러다. 

책의 '서문'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출판업자와 저자들은 독자들과 친밀감을 높이는 사적인 공간으로 '서문'을 만들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기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것이지를 이야기함으로서 친밀감을 높이려고 애썼다. 이른바 메인 공연을 하기 전에 바람잡이 공연으로 관중들의 시선을 끌어오려는 마케팅이었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귀족과 왕족 그리고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책은 모두의 문화가 되었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책이 대중화 되면서 인쇄업자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저작권'이다. 16세기에 이미 책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가 인정이 되었고 매매도 이루어졌다.

인쇄업자들은 새 책을 내면 왕이나 교황에게 저작권을 인정해 달라는 청원을 해야 했다. 승인권을 가진 권력자들은 정부에 고분고분한 인쇄업자와 그렇지 않은 인쇄업자를 차별함으로써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삼이나 담배 사업자를 지정해서 관리하듯이 성서나 교과서 같은 꾸준히 잘 팔리는 책에 대한 소유권은 선별된 소수에게만 부여했다. 

책에 대한 권리가 물건으로서의 책이 아니고 책 속에 담긴 내용(텍스트)로 넘어가는 법률적 변화도 일어났다. 오늘날 출간계약서에 저자가 갑, 출판사가 을로 표기되는 기원이 이때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평범한 책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눈길을 끄는 표지 디자인, 저자와 책 제목이 한눈에 보이도록 인쇄된 책등, 뒤표지에 인쇄된 ISBN 바코드는 1980년대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 호황을 누릴 때 형성되었다. 가능한 많은 책을 보기 좋게 전시하고, 독자들이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도록 상품에 가능한 많은 정보를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책이라고 부르는 상품 중에서 가장 찬란한 영광을 누리고 가장 비참하게 쇠태를 한 것은 백과사전이다. 최초의 백과사전인 드니 디드로의 17권짜리 <백과전서>가 1751년에 출간되었는데 무려 수천 명의 인력이 투입된 대공사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백과사전의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저가용 보급판을 따로 판매했다고 한다.

1990년대 시디롬 형태의 디지털 백과사전이 등장할 때 까지 200년 이상의 영광을 누리고 장렬히 사라졌다. 한 때는 교양 있고 돈깨나 버는 가정이라면 위풍당당하게 서재에 꼭 꽂혀 있었는데 요즘은 가구 전시장의 소품으로 전락했다. 마치 수많은 관중 앞에서 우승을 밥 먹듯이 한 경주마가 동네 놀이공원에서 효도관광을 하러 온 노인을 태우고 다니는 늙은 말 신세라고 해야 될까. 

최근의 출판시장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 하나를 바로 잡는다. 우리의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2016년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전자책의 판매량이 감소했고, 2015년 미국에서의 종이책 판매량이 3.3 % 증가했다.

세부 수치에서 주목할 만 한 것은 아동용 보드북 판매량이 무려 7.4% 늘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는 이 기이한 현상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운동능력을 연습하고 개발하기 위해서는 만지고, 놀 수 있는 촉각적 사물이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자 기기로 정보를 얻고 학습하는 것보다 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동의 발달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부모들이 알아차리고 있다.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를 읽으면서 알게 된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지식 하나는 book이 예약하다는 동사의 뜻으로 쓰이는 이유가 예약 내역을 장부에 기록한 옛날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

애머런스 보서크 (지은이), 노승영 (옮긴이), 마티(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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