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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흔히 말하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주연과 조연이 나뉘지 않는다. 좋은 대본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어우러져 극 중 다양한 캐릭터들이 살아 숨을 쉰다. <동백꽃 필 무렵>도 극중의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사연을 따뜻한 위로와 함께 풀어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고 고민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도 극중 요소요소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도덕교과서처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각자의 삶의 여정에서 어떤 주제도 정답이란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면서 열린 결말처럼 시청자의 판단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대표적인 예가 동백이와 동백엄마가 나누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동백꽃 필 무렵' 중에
 "동백꽃 필 무렵" 중에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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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 "그래도 원칙적으로는 고생끝에 해피엔딩인데..."
엄마 "신데렐라고 콩쥐팥쥐고 개똥멍청이지. 나중에 좋자고 그 꼬라지를 참고 살아? 해피엔딩이고 나발이고 아껴먹으면 맛대가리만 없지. 당장 배고플 때 홀랑 먹어야지. 그게 와따지. 그러니까 나중에 말고 당장 야금야금 부지런히 행복해야 돼."
동백이 "음... 엄마는 그래서 문제야. 아니 뭐 행복하자고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 행복은 쫓는 게 아니라 음미야 음미. 내가 서 있는 데서 발을 딱 붙이고 찬찬히 둘러보면, 봐봐 천지가 꽃밭이지…"


이 둘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행복을 느끼고 음미하는 결이 다르다. 평생을 고아원에 버린 딸에 대한 회한과 죄책감을 가슴에 묻은 채 돈 벌고 성공해서 버린 딸 동백이를 찾아오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엄마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없이 급하게 달려왔지만 정작 이룬 것 없이 병만 얻었다.
 
'동백꽃 필 무렵' 중에
 "동백꽃 필 무렵" 중에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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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 중에
 "동백꽃 필 무렵" 중에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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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이룬 후에 딸과 함께 누려보겠다는 행복은 산산이 부서졌던 것이다. 그러니 누릴 수 있을 때 느낄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을 때 얻어야 한다는 나름의 확고한 원칙이 생긴 것이다. 반면 동백이는 엄마한테 버려져 고아로 살면서 미혼모가 되지만 무엇이 되고자 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지금 느낄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섬세한 감각을 갈고 닦는다.

나도 한때는 동백이 엄마처럼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는 행복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즐길 수 있을 때와 즐김이 필요할 때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하고 싶을 때 못하거나 할 수 있음에도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다.

그 불협화음이 또 불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것이 인생이겠거니 하다보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가 아니라 '느낄 수 있을 때 충분히 느껴라'가 되었다. 동백이처럼 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 무엇을, 내가 있는 지금의 시공간을 충분히 음미하고 느낄 수 있을 때 묘한 안정감과 행복이 밀려왔다.

나는 지금을 음미할 수 있는 행복은 손절매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더 큰 손해를 피하기 위해 일정정도의 손해를 감수하고 판다는 주식시장의 용어인 손절매에서 나는 왠지 삶의 지혜가 느껴졌다. 결국 소탐대실 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화가 치밀고 미움이 솟구칠 때 그 곱씹음을 더 나가지 않게 끊어내는 것, 더 누리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것 그게 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에 과몰입하여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그 타협선이 어디인지는 본인만 알 수 있다. 내 마음의 평화가 깨지지 않는 선, 나를 나답게 보호할 수 있는 그 선을 지켜내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그 지점으로부터 내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행복이 시작된다.

태그:#행복, #동백꽃필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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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질풍노도 시기를 넘기고 있다. 이 시간이 '삶'을 이해하는 거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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