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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미술사'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계의 숨은 이야기들, 유명한 미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일화, 그리고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재능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기자말]
우리는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한 혁명적인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로 흔히 코코 샤넬을 떠올린다. 그러나 여기 샤넬을 능가하는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 1876~1975)이다.

패션계의 라이벌, 코코 샤넬과 마들렌 비오네               
 
        
마들렌 비오네
 마들렌 비오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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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패션의 역사는 위대한 세 명의 디자이너로부터 시작된다. 폴 푸아레(Paul Poiret)와 코코 샤넬(Coco Chanel), 그리고 비오네.

이들 모두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하고 현대미술의 모더니즘과 아르 누보와 같은 장식미술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특히 패션을 단순히 옷을 만드는 일에서 현대 예술의 한 분야로 격상시킨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은둔형 디자이너인 비오네는 무대의 전면에 나서서 활동했던 폴 푸아레와 코코 샤넬에 비해, 패션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다.

샤넬이 장 콕토,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등 저명한 작가, 화가, 음악가들과 교유하며 국제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할 때, 비오네는 자신의 모델들이 부유한 고객들, 저널리스트들, 외국의 바이어들 앞에서 그녀의 옷을 선보일 때조차 작업실에만 머물러 있었다.

특히 비오네는 샤넬과는 같은 시대를 산 여성 디자이너이라는 점에서 비교가 되는데, 샤넬처럼 비오네도 하류층 출신이었고, 의지와 능력을 통해 성공한 여성이었다. 하얗게 센 머리에 수수한 외모의 비오네는 그녀의 경쟁자 샤넬이 열렬히 추구했던 세상의 이목을 피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그녀는 내성적이고 신비로운 수수께끼의 디자이너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당대에는 샤넬과 같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20세기 위대한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되지 않았다.

발렌시아가는 비오네를 자신의 스승이라고 불렀고, 크리스천 디올은 옷의 예술, 즉 패션은 결코 그녀를 뛰어넘거나 더 멀리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 옷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다. 그녀는 옷이란 인체의 곡선을 거슬리거나 왜곡하지 않고 몸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따라야 하며, 몸을 속박하지 않고 활동하기에 편해야 한다는 기본철학을 가졌다.

따라서 인체를 인위적으로 성형하고 구속하는 코르셋, 패드, 뻣뻣한 재료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코르셋 같은 여성의 몸을 압박하는 속옷의 착용을 반대한 그녀의 옷은 여성의 인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했고, 사람들에게 그것이 더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패션에 예술을 입히다

비오네는 당시 유럽 미술을 장악한 피카소의 큐비즘(Cubism)이 선보인 기하학적인 조형 감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현대 기술 문명의 역동성을 표현한 미래파(Futurism) 예술가인 사이여트(Thataht)와 밀접한 예술적 교류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패션을 옷 만드는 재봉 기술에서 예술적인 차원으로 격상시키려 했던 것이다.

비오네는 자신의 옷을 만들 때 매우 철저하고 정교하게 작업했다. 그녀에게 드레스는 단지 사람에게 실용적으로 입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개념이었다. 그런 접근 방식은 건축에서 장식적인 것을 배제하고 구조와 형태를 중요시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그것에 가까웠다.

1920~1930년대 비오네가 만든 드레스들에서 주목할 것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옷이 세 개의 건축적 형태, 즉 사각형, 직사각형, 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일생 그러한 기본 형태들에 몰두했다. 어떤 장식도 전체적인 구조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또한, 이전의 무거운 드레스와 대조적인, 가벼움과 조임이 결여된 느슨한 디자인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비오네의 드레스
 비오네의 드레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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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네는 코르셋, 패딩(옷의 형체를 잡기 위에 안에 대는 충전재), 다트(천에 주름을 잡아 꿰맨 부분) 등 어떤 불필요한 장식도 혐오했다. 비오네는 여성의 자연스러운 몸의 곡선을 강조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녀가 추구하는 패션의 기본적인 방향은 현대 여성의 생활에 맞는 기능성과 자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녀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드레스는 주로 바닥에 닿는 길이의 유동적인 곡선으로 느슨하게 몸을 감싸며 여성의 신체의 장점을 드러냈고, 반면 허리와 엉덩이 선은 타이트하게 제작됐다.     

이렇듯, 그녀는 장식적이고 제약이 많은 옷에서 벗어난 옷을 만들려고 했다. 고대 그리스 여신의 드레스의 고전적 요소를 차용해 현대적으로 해석한 패션 양식을 내놓았다.

그 결과는 여성의 자유로워진 삶과 역동성, 대담한 단순성을 표현한 패션이었다. 시대를 훨씬 앞선 그녀의 패션 감각은 행커치프 드레스(handkerchief dress: 손수건 중심을 잡고 들어 올린 것처럼 밑단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뾰족한 드레스), 카울 넥(cowl neck: 여러 겹 늘어지듯 접히는 칼라를 가진 드레스), 홀터 탑(Halter top: 어깨, 등이 드러나고 끈을 이용해 목 뒤에서 묶는 드레스) 등 창의성이 빛나는 옷들을 만들어냈다.  

바이어스 재단의 창시자,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의 몸을 해방하다

어깨에서 등과 가슴을 거쳐 허리와 다리로 흘러내리는 유연한 흐름의 비오네 옷은 여성의 신체를 딱딱하고 속박하는 이전 드레스로부터 해방시켰다. 코르셋이나 패티코트, 어깨심 같은 인공구조물을 없애고 천으로만 만들어지는 입체적인 디자인을 개발함으로써, 여성의 자연스러운 신체의 형상을 보여주는 디자인을 창조한 비오네는 '드레스의 건축가' 혹은 '패션의 조각가'라고도 불린다. 그녀의 재단과 드래이핑 방법은 단순성과 우아함을 갖는 양식을 창조했다.

비오네의 혁신은 바이어스 재단(bias cut)에서 출발한다. 바이어스 재단이란 사선 방향으로 재단하는 것으로, 옷이 늘어지는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어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표현해낼 수 있다. 바이어스 재단으로 만들어진 비오네의 옷들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실루엣을 연출했다. 절개되지 않고 매끄러운 연결로 온몸을 둘러싸는 기법은 패션사의 혁명이었다.  

이 재단법으로 비오네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 즉 기하학적인 자유로운 형태라고 불리는 것을 창조하게 된다. 그녀는 천이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고 흐르면 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그녀는 디자인 과정에서 종이에 디자인을 스케치하고 이것을 천으로 옮기는 종래의 평면 재단법 대신에, 실제 모델이나 키 80cm 정도의 목각 마네킹 위에 직접 옷감을 두르고 필요한 모양대로 입체적으로 재단했다.

비오네는 해부학적인 몸의 구조에 관심을 갖고, 천이 신체의 선을 어떻게 표현할지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녀의 복잡한 건축적 테크닉은 옷이 신체에 입혀질 때 살아난다. 드레스는 쇄골 아래로 흘러내리고 바이어스 재단된 천이 배의 곡선과 엉덩이의 아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몸에 감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비오네가 만든 단순하고 유동성 넘치는 드레스들은 패션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주었다. 매우 절제되고 단순해 보이는 그녀의 드레스는 몸에 그냥 걸쳐 놓은 듯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은 복잡한 계산과 분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입는 법도 어려운 디자인이 많았다고 한다.

비오네의 드레스는 1930년대를 패션계를 주름잡았고, 마들린 디트리히, 캐서린 헵번, 그레타 가르보 등의 당대의 스타 여배우들이 입었다. 그들은 비오네의 옷의 형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완벽한 모델이었다.  
     
다시 샤넬 제국과 맞붙다... 비오네 패션의 부활
          
재즈 시대와 2차 세계대전 이전 몇 년 동안 무비 스타들, 왕족, 귀족, 슈퍼 리치들이 몽테뉴 50번가에 있는 비오네의 패션 하우스에 몰려들었다. 이곳은 '패션의 신전 (Temple of Fashion)'으로 불렸는데, 이는 비오네가 오트퀴트르에서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말해주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70여 년이 지난 2008년, 젊은 프랑스인 아르노 드 르망(Arnaud de Lummen)이 1939년 문을 닫은 비오네의 브랜드를 부활시킴으로써, 비오네는 샤넬과 다시 한번 경쟁하게 됐다. 저명한 디자이너 소피아 코코살라키(Sophia Kokosalaki)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용돼 비오네의 드레스 컬렉션을 국제 무대에 론칭했고, 현재는 러시아 패션업체에 인수돼 계속 브랜드를 이어가고 있다.
  
비오네의 패션 철학은 다음의 어록에서 그 핵심을 찾아볼 수 있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맞는 옷, 그리고 우아한 단순미, 이것이 그녀가 평생을 바쳐 추구한 장인 정신이자 예술가의 정신이다.    

"여자가 미소 지을 때, 그녀의 드레스도 미소 지어야 한다."

[참고문헌]

채금석 <현대복식미학> (경춘사, 2002년)
Rebecca Arnold, Madeleine Vionnet, LoveToKnow(https://fashion-hostory.lovetoknow.com)
Madeleine Vionnet(https://en.m.wikipedia.org)
Madeleine Vionnet(Biography)

태그:#패션, #디자인, #패션 브랜드, #드레스, #코르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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