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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배한동)가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다섯 차례 진행하는 '대구 시민 독립운동유적 답사 프로그램'의 네 번째 답사가 지난 7일 실시되었다. 

이날 답사에 참가한 시민 30여 명은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 지사 고택, 대한광복회 창립지인 달성토성,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진 시비인 '상화 시비', 구 원화여고 자리의 조양회관 터, 서문로 입구의 이종암 군자금 모금지, 우현서루 옛터(대구은행 북성로지점), 두류공원 인물동산의 우재룡·박희광·이상화·현진건·백기만·조기홍 지사 기념물 등을 둘러보았다.

의열단 핵심 지도부의 한 사람이었던 이종암

의열단은 1919년 11월 10일 만주 길림 '이종암의 집'에서 결성되었다. 이종암은 대구은행 직원이었는데, 은행돈 1만500원(현 시세 대략 10억 원)을 임의로 반출하여 만주로 망명했다. 그 돈으로 길림 파호문 밖의 중국인 반씨 집을 세 얻은 이종암은  김원봉 등과 동거하면서 항일 무장결사체 결성을 준비했다.
 
 이종암 군자금 모금지 (옛 대구은행)
 이종암 군자금 모금지 (옛 대구은행)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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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직후 의열단은 조선총독부 등을 폭파하기로 결의하고 '제 1차 암살 파괴 계획' 준비에 착수했다. 아직 서울에 마땅한 거점이 없었던 의열단은 폭탄을 연고가 많은 밀양 등지로 들여보내는 데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거사를 치르기 전에 일제에 탄로나 황상규, 윤세주, 곽재기, 김기득, 이낙준, 이성우, 신철휴, 김병환, 배중세, 김재수, 이주현, 윤치형 등 의열단 초기 조직원의 대부분이 피체되었다.

의열단원들이 구속된 곳은 주로 부산과 밀양이었다. 만주에 머물러 있었던 김원봉과 검거망을 벗어나 계속 국내에서 활동 중이던 이종암은 부산경찰서와 밀양경찰서를 공격하여 원수를 갚기로 결의했다. 이종암은 부산으로 갔고, 김원봉은 싱가포르에서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던 부산상업학교 '구세단' 출신 박재혁을 만났다.

이종암은 1920년 9월 14일 박재혁 단원의 부산경찰서 투탄(폭탄을 던짐)을 지휘했고, 같은 해 12월 27일 최수봉 단원의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도 총괄했다. 부산경찰서의 일본인 서장을 현장에서 폭사시키는 등 의열단의 의혈 투쟁은 나라 안팎을 뒤흔들었다. 몇 달 전 6월의 '제1차 암살 파괴 계획' 실패에 대한 성공적 보복이었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배한동)가 진행한 '대구시민 독립운동유적 답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1910년대 최고의 무장항일결사 대한광복회가 창립된 달성토성을 답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참가자들은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 지사의 고택도 찾았다(오른쪽 사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배한동)가 진행한 "대구시민 독립운동유적 답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1910년대 최고의 무장항일결사 대한광복회가 창립된 달성토성을 답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참가자들은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 지사의 고택도 찾았다(오른쪽 사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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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이종암은 1922년 3월 28일 오성륜, 김익상과 함께 상해에서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까를 저격했고, 의열단의 재정 형편이 어려워진 1925년 9월에는 다시 국내로 들어와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경비가 원활히 조달되면 동경으로 건너가 거사를 펼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종암은 11월 5일 대구 노곡동에서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1930년 5월 29일 순국했다.

이종암이 순국한 곳은 대구 남산동의 형 이종윤의 집이다. 일제는 죽음 직전의 이종암을 5월 19일 형 집행 정지로 풀어주었는데, 지사는 출옥한 지 열흘 만에 순국하고 말았다. 현재 집의 담에는 이곳이 이종암 유적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대한광복회 활동은 의병의 후신, 의열단의 전신

이종암 고택 앞에서 묵념을 한 답사자들은 달성토성으로 향했다. 달성토성은 의열단의 전신인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곳이다. 박상진, 우재룡, 채기중 등은 1915년 8월 25일 국권 회복을 염원하고 있던 전국 각지의 지사들을 규합하여 대한광복회를 창립했다.

대한광복회는 친일파 처단, 일본 헌병 주재소와 광산 공격, 군자금 모아 만주 독립운동가에 전달, 일제 세금 마차 탈취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918년 1월 이후 일제에 피체되기 시작했고, 박상진·경상도 지부장 채기중·충청도 지부장 김한종 등 간부들이 순국했다. 지휘장 우재룡과 권영만은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다시 귀국한 후 주비단을 결성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한 활동을 펼치지만 끝내 체포되었다.

피체를 면한 황상규·김대지 등은 만주로 망명한 후 김원봉·이종암 등을 지원하여 의열단 결성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대한광복회의 활동은 구한말 의병의 후신이자 1920년대 의열 항일의 전신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우재룡과 권영만 등은 산남의진과 청송의진에서 장수로 활약한 의병 출신이기도 했다.

조양회관과 이종암 군자금 모금지도 확인

달성토성을 나온 답사자들은 구 원화여고 자리인 조양회관 터를 확인했다. 등록문화재 제 4호인 조양회관은 1922년에 건립되었다. '조선에 해가 뜬다'는 뜻을 가진 조양(朝陽)회관은 대지 500평, 건평 138평의 2층 건물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대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양 거점이었다.

답사자들을 태운 버스는 이종암 지사가 군자금을 확보한 대구은행 터로 이동했다. 경상감영길 1번지 현장에는 지금도 건물이 남아 있다. 건물 내외를 대대적으로 고친 결과 본래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골조는 원형 그대로인 것으로 알려진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는 우재룡 지사(왼쪽)와 박희광 지사를 기려 세워진 흉상과 기념비 등이 있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배한동)의 12월 7일 '대구시민 독립운동유적 답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인물동산을 찾았을 때는 우재룡 지사와 박희광 지사의 아들 우대현 광복회 대구달서구지회장과 박근용 수성구지회장이 직접 해설을 맡았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는 우재룡 지사(왼쪽)와 박희광 지사를 기려 세워진 흉상과 기념비 등이 있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배한동)의 12월 7일 "대구시민 독립운동유적 답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인물동산을 찾았을 때는 우재룡 지사와 박희광 지사의 아들 우대현 광복회 대구달서구지회장과 박근용 수성구지회장이 직접 해설을 맡았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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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버스는 오늘 답사의 마지막 여정인 두류공원 인물동산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이상화·현진건·백기만 문학비, 우재룡·조기홍·박희광 기념비, 대구사범학교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등이 세워져 있다. 그래서 '인물동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우재룡·박희광 지사 유족이 직접 해설

우재룡은 구한말 산남의진 선봉장과 1910년대 최고의 항일결사 대한광복회 지휘장을 역임한 독립지사이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일제로부터 무기징역 처분을 당했고, 18년에 걸쳐 옥에 갇혀 지냈다. 박지극 시인은 '헌시'를 통해 우재룡 지사의 독립운동 내역과 1945년 이후 펼친 광복회 재건 운동, 그리고 해방 정국에서 권력을 잡은 친일파들로부터 줄곧 암살 위협을 당한 '아픈 역사'를 증언했다.   

박희광 지사도 20년 가까운 세월을 일제의 감옥에서 생활한 독립지사이다. 지사는 만주에서 친일파를 처단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또 이등박문의 수양딸로서 '매국의 요정'으로 유명한 배정자 암살을 시도했고, 봉천 일본 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했다. 경북 구미 금오산 아래 호숫가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인물동산에서는 우재룡 지사의 유족인 우대현 선생(광복회 대구 달서구 지회장)과 박희광 선생의 유족인 박근용 선생(광복회 대구 수성구 지회장)이 직접 해설을 맡았다. 행사를 주최한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배한동 상임대표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께서 이렇게 현장에 나와 해설까지 해주시니 참으로 감동적"이라면서 "앞으로 독립운동가 후손과 일반 시민들이 독립운동 유적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현충원의 우재룡 지사 묘. 왼쪽에 남자현 지사의 묘가 있다.
 서울 현충원의 우재룡 지사 묘. 왼쪽에 남자현 지사의 묘가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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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답사 계획

12월 14일 : 이두산 생가터, 문석봉 생가터, 문영박 유적, 이상정 이상화 묘소, 정학이 동상
(아래는 이미 실시한 답사)
11월 16일 : 신암선열공원, 봉무동 일제 군사 동굴, 향산 일제 군사 동굴, 최종응 고택
11월 23일 : 수성못 상화 동산, 수기임태랑 묘, 서상돈 묘소, 강제 위안부 유적, 조양회관
11월 30일 : 이육사 고택, 동화사 학승 유적, 남산교회 광복의 종, 대구형무소 터, 녹동서원
12월 7일 : 이종암 고택, 대한광복회 창립지, 조양회관 터, 이종암 군자금 모금지, 인물동산
*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반월당 적십자병원 앞에서 출발, 6시 이전 출발지로 귀환
* 참가비 없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 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등 독립운동 관련 도서를 한 권씩 증정
* 문의 : 버스로 이동하는 답사는 참가자 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하여
참가하실 분은 (12월 14일 경우) 오후 2시 이두산 생가터(달성군 화원읍 명곡리22길 18 앞 주차장), 3시 전에 문석봉 생가터(달성군 현풍면 성하길 68-7), 4시 전에 문씨세거지, 4시30분 전에 이상정·이상화 묘소(달서구 명천로 43)로 오시면 됩니다. 0105151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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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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