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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사라지지 않는 곳, 턱거리마을박물관

 
해가 지고 금세 어둑해진 길, 턱거리마을을 가로지르는 광암로에는 가게 몇 곳만 드문드문 빛을 밝히고 있다. '콜롬보(COLOMBO)', '초이스 클럽(CHOICE CLUB)' 이라고 쓰인 레트로 느낌 물씬 풍기는 네온사인이 여기가 동두천 턱거리마을이라고 알리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홍보는 없다.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조용하다. 그 적막을 깨고 턱거리학당 광암로 30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마을 일에 앞장서는 턱거리사람들 협동조합 김현호 신부, 터기리 마을신문 이영란 편집장을 비롯해 동두천생활문화센터 활동가, 나눔교회 전도사, 마을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광암탑동애향회 어르신, 사랑의손길협동조합 대표, 마을 아주머니들과 친구 따라 턱거리학당에 처음 온 시인 등. 나이도 직업도 다르지만 모두 턱거리마을 주민이다. 스무 명 남짓 모이자 턱거리학당이 꽉 찬다. 마을 사람들은 '턱거리마을박물관'을 소개하는 글과 상징하는 로고를 정하기 위해 모였다.
 
11월 30일 카페 샹제리에 광암로17번길 67 자리에 '턱거리마을박물관'이 문을 연다.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드는 '턱거리마을박물관'. 앞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사랑방이 될 것이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고, 꾸몄다. 공동체로 똘똘 뭉쳐 다시 활기를 되찾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 턱거리마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턱거리마을이 지나온 시간들
 
턱거리마을을 상징하는 로고를 정하려고 사람들은 머리를 맞댔다. 마을 로고에 어등산과 동두천을 모티브로 미군, 여성, 마을 세 가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만들어 본 시안에는 높은 산과 물줄기를 배경으로 미2사단 마크와 빨래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시안을 본 마을 사람들은 의견을 하나씩 내놓았다.
 
"저는 결혼해서 턱거리마을에 처음 왔는데 그 당시에 (턱거리마을박물관 앞) 개울에서 빨래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때 생각이 나네요"라고 한 아주머니가 말하자, 다들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맞장구쳤다.
 
다른 어르신들도 의견을 냈다.

"우리 주민들 입장에서는 미군에게 억눌린 감정이 있어요. 기브미 쪼꼬렛! 했던 시절이 있으니까. 미군부대 마크를 그대로 넣지 않고, 별만 넣어도 충분히 미군을 상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 미군부대 마크에 대한 의견이 이어진다.

"산 위에 마크가 있으면 아직도 미군이 우리를 위에서 보는 것 같지 않아?", "그런데 아래로 내리면 마크가 더 커지겠는데?", "저 산 뒤로 작게 일부분만 보이게 하면 안 될까요?"
 
마을 사람들은 마을 로고를 만드는 일에 열심히 의견을 낸다.

"이 작은 그림으로 우리 마을을 다 나타내는 거잖아! 신중하게 결정해야지! 우리의 첫 이미지니까."

'로고'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어르신들도 아주 적극적이다. 마을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어르신들의 기억과 의견이 많은 보탬이 된다. 어르신들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턱거리마을을 기억하는 중요한 증인이다.
 
턱거리마을은 높은 산과 동두천이 흐르는 조용하고 깨끗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끝나고 동두천에 미군이 들어왔다. 전체 면적의 42%가 미군의 공여지인 동두천의 변두리, 턱거리마을은 1954년 미군기지 캠프 호비가 들어서면서 기지촌이 되었다. 턱거리마을에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주해왔고, 마을 사람들은 미군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거나 일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며 미군들의 수요가 줄어들자 사람들도 차츰 마을을 떠났다.
 
한편 2015년 턱거리마을 광암동 일대에 LNG복합화력발전소가 준공됐다. 수도권 동북부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소다. 많은 일자리를 기대한 결정이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환경문제가 발생했다. 발전소에서 흰 연기가 배출되고 나면 지붕에도, 농작물 위에도 분진이 내려앉았다. 그 보상으로 마을발전기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 마을기업인 세탁공장 오렌지라운드리를 세웠다. 그런데 그마저도 운영비리 등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탑동과 장림 일대를 관통해 지나가는 송전탑 건설도 마을의 골칫거리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갈등이 생겼고 결국 등을 돌렸다.
 
공동체로 다시 만난 턱거리마을 사람들
 
어르신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이 마을이 참 좋다. 하지만 사람들이 먹고 살만한 일거리가 없어 안타깝다. 새로운 일자리로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를 기대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버스는 자주 오지 않고, 시장은 멀어 불편하다. 마을에 사람들이 줄어들다 보니 이제 약국 같이 꼭 필요한 시설도 찾아보기 힘들다.
 
마을에 필요한 것은 점점 없어지고, 발전소나 세탁공장처럼 불필요한 것만 생기니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누구든 떠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지면 떠났다. 마을에는 떠날 수 없는 사람들과 과거의 흔적만 남았다. 마을 어르신들의 가장 큰 희망사항은 마을에 다시 목욕탕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은 PC방과 편의점을 꿈꾼다.
 
턱거리마을 사람들은 다시 힘을 냈다. 마을에 유치되는 갖가지 시설들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마을 사람들마저 분열되는 모습을 보고 마을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부방 학부모가 앞장서고, 나눔의 집과 동두천생활문화센터 등의 활동가와 예술가들이 도왔다. 마을 주민들은 침체된 마을을 살리고자, 다양한 행사를 열고, 마을계획 수립활동에 참여했다.
 
12년 전 나눔이 집이 턱거리마을에 들어오며 공동체가 서서히 자리잡았다. 나눔의 집은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위해 함께 먹고, 놀며, 공부할 수 있는 공부방을 열었다. 나눔의 집 공부방은 정부의 지원으로 지역아동센터가 되었다. 그리고 턱거리사람들 협동조합(이사장 김현호)을 만들고,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터기리마을신문>을 발행했다. 턱거리학당에서 한글교실, 그림교실 등을 열어 어르신들이 마음껏 배울 수 있게 했다.
 
"이 나이에 학교라니 참말로 좋은 세상이군요. (중략) 턱거리 학교에서 배움은 즐거워요. 옛날에 육이오 전쟁 당시에 배움이 무엇이겠어요. (중략) 학교에서 좋은 학용품을 받았을 때 옛날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열심히 배워보겠습니다. 잘 가르쳐주세요." - 터기리 마을신문
 

이외순 할머니는 한글을 배운 소감을 글로 남겼다. 턱거리학당에서 한글을 배운 어르신들은 이제 꿈이 생겼다. 손주에게 편지를 쓰고 싶고, 자식들에게 이제 글을 읽고 쓸 줄 안다고 자랑하고 싶다. 공동체는 살 맛 나는 마을을 만든다.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다.
 
다시 일어설 수 있던 힘 '공동체'
 
매년 봄이면 턱거리마을축제, 연말이면 턱거리마을 송년음악회도 열린다. 아이들은 매주 목요일이면 반찬을, 매년 겨울방학이면 연탄을 이웃들에게 배달한다. 경기도 마을사업으로 생긴 턱거리마을학교 학생들은 올해 커피를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대접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르신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공동체가 되어 함께 했다.
 
마을 사람들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마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사람들은 공동체로 모여 도움을 받고, 다시 나누며 서로를 응원한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자고 이야기한다.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턱거리마을박물관'을 기획하며 사람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을 꿈꾼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마을, 어르신들이 한 평생 살던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서로 돌보는 마을. 턱거리마을 사람들이 꿈꾸는 마을에는 '사람'이 있다.
 
1962년에 동두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턱거리 마을에 살고 있는 광암탑동애향회 윤석진 어르신은 턱거리마을이 앞으로 더 달라질 거라 말한다.

"발전소로 인해서 마을 사람들이 양분되어 있었어요. 실질적으로 원주민들은 관심 밖이고, 조금이라도 이권과 보상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다퉜죠. 그래서 여기 주민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어요.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졌고요. 그런데 마을공동체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이번 기회로 상심한 지역 주민들이 다시 활기를 얻고, 뭉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새로워질 우리 마을에 무엇을 담든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에요."
 
이옥재 사랑의손길협동조합 대표이사는 턱거리마을에서 희망을 본다.
 
"마을에 사람들이 너무 없어요. 아이들이 없어지고 어르신들만 있으니 누구든 와서 쉬어가고, 차 한 잔이라도 하고 갈 수 있는 마을이 되었으면 해요. 모든 것이 잘될 것 같아요. 혼자 보단 여럿이라 할 수 있었어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서로 어우러져 공동체에서 여럿의 뜻을 모으다 보니, 더 확장됐어요. 턱거리마을이 예쁜 마을이 되도록 힘을 보태고 싶어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휘청거리며 살아온 턱거리마을, 턱거리마을에 공동체 꽃이 피고 있다. 변화될 턱거리마을이 기대된다.
 
샹제리에, 다시 불이 켜지다
 
턱거리마을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아픔도 역사라고 말한다. 실제로 턱거리마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다. 턱거리마을이 지니고 있는 역사, 문화적 가치와 더불어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쏟은 노력과 경험이 높이 평가받았다. 그 결과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대상지로 선정, '지붕 없는 박물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턱거리마을박물관'으로 변신한 카페 샹제리에는 기지촌 골목 초입에 있다. 이 건물은 1963년 사용허가가 난 후 구멍가게와 가정집으로 쓰이다 1972년 증축 후 미군을 상대로 술을 파는 작은 클럽 '황금스툴'로 운영됐다. 2008년 카페 샹제리에 간판을 달았지만 영업은 하지 않고 주거공간으로 개조되어 사용됐다. 이곳은 건물 주인의 협조와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다시 화려한 변신을 꿈꾼다.
 
마을의 상징이 될 박물관 건물을 새로 짓지 않고 오래된 건물을 다시 꾸며 사용하는 일, 그 건물의 역사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새기는 일. 이런 수고로움이 바로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지붕 없는 박물관' 프로젝트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산 증인이자 증거다. 카페 샹제리에의 옛 이름 역시 그 건물 앞에 사는 어르신이 찾아주었다. 어르신은 카페 샹제리에 간판이 생기기 전 오래된 옛 클럽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턱거리마을 사람들은 서로 믿고 응원하며 '턱거리마을박물관'을 만든다. 진행과정을 설명할 때마다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옛 기지촌 클럽을 복원해 문화예술 공간을 만드는 일이 흥겨워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 마을' 일이라 더 열심이다. "(턱거리마을박물관) 공사는 전문가도 없이 뚝딱뚝딱 했어요. 요즘 인테리어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인데, 거의 새로 짓다시피 했죠. 대단해요. 껄껄." 광암탑동애향회 윤석진 어르신은 공사를 맡은 마을 사람들의 공로를 높이 산다.
 
김현호 신부는 박물관 주변 정리에 앞장서고 있는 마을 주민들 소식을 전한다. "마을에 젊은 분들로 구성된 '꽃미모'라는 모임이 있어요. 모두 할머니들이지만 그래도 비교적 젊은 세대에요. 하하. '꽃미모' 분들이 (턱거리마을박물관) 주변에 꽃도 심고 예쁘게 꾸미고 있어요. 기대해주세요." 워크샵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찼다.
 
'턱거리마을박물관'을 총괄기획하고 있는 사람은 마을에서 미술 수업을 하는 이혜진 작가다. 이 작가는 2018년 턱거리마을에 왔다. 소요산 성병관리소에서 전시를 하게 되어 현지답사를 다니다 우연히 마을과 인연을 맺게 됐다.
 
"턱거리마을에서 아이들과 어르신들과 미술 수업을 하다가 공모사업을 알게 되었고, 6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어요. <턱거리마을박물관>은 리모델링 공간조성사업이에요. <턱거리마을박물관>이 문을 열면 박물관, 미술관, 마을 사랑방 등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될 거예요. 그동안 발전소 건설 등 여러 가지 일로 주민들이 해체된 상태에요. 화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주민들은 우리 마을에도 이런 문화예술 공간이 생긴다는 것에 기대감이 아주 커요."
 
아주 특별한 지역을 제외하면, 마을의 역사는 그 마을 사람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그 마을의 역사를 알기 위해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진 않는다. 그래서 마을박물관을 만드는 일이 관광 산업과 이어지길 기대하긴 힘들다. 토지가 국가 소유라 마을박물관 조성과 유지관리가 비교적 수월한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토지와 건물이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마을 재생 구역의 임대기간이 끝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애써 꾸민 마을이 다시 전처럼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카페 샹제리에 역시 건물 주인이 따로 있어 임대 계약을 맺었다. 건물 주인도 동두천에서 나고 자랐다.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해준 건물 주인은 '턱거리마을박물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첫걸음이고 아직 작은 움직임일지 모르지만, 턱거리 마을이 동두천 발전의 마중물이 될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턱거리마을 박물관 '샹제리에' 개관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대상지로 선정된 턱거리마을에서 진행된 ‘지붕 없는 박물관’ 프로젝트를 만나보았습니다.
▲ 턱거리마을 박물관 "샹제리에" 개관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대상지로 선정된 턱거리마을에서 진행된 ‘지붕 없는 박물관’ 프로젝트를 만나보았습니다.
ⓒ 윤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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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턱거리마을박물관'을 '샹제리에'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주민들이 쉽게 부를 수 있고, 친근한 애칭이다. 비록 영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10년 넘게 그 자리에 걸려있던 카페 샹제리에라는 간판 이름 그대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샹제리에'를 검색하면 바로 카페 샹제리에 광암로17번길 67 가 뜨니 찾기도 쉽다.
 
이제 <턱거리마을박물관>을 무엇으로 채워 나갈지가 중요하다. '턱거리마을박물관'이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까지 4번에 걸친 주민 워크숍을 준비했다. 잡초요리연구가를 초대해 잡초로 비빔밥을 만드는 이야기를 듣고, 미군들이 사격을 하는 곳이었던 매향리가 오래된 교회를 재생한 사례를 공부했다. 그리고 가수 '인디언 순이'와 함께 턱거리마을에 음악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 해보고, 마지막으로 마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한 고민을 건축가와 함께 풀어본다.
 
턱거리마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턱거리마을박물관, 샹제리에 과연 어떤 모습으로 턱거리마을을 담아낼지 기다려진다. 턱거리마을의 축제인 개관식은 11월 30일 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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