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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촛불 프라하의 레트나 부지에 약 30만명의 시민이 모여 안드레이 바비쉬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 체코 촛불 프라하의 레트나 부지에 약 30만명의 시민이 모여 안드레이 바비쉬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 "민주주의를 위한 백만번의 순간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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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체코] 1편에서 이어집니다.

몇년 만에 다시 찾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도심은 한마디로 축제 분위기였다.  

정확히 30년 전, 벨벳혁명이 시작된 11월 17일의 행진을 재현하는 찰스대 학생들의 퍼레이드 직후엔 정치풍자적인 성격의 현대판 카니발도 이어져 흡사 브라질의 카니발 축제를 연상시켰다.

전경의 진압이 있었던 나로드니 거리엔 벨벳혁명을 기념하는 수많은 쇼와 토론회가 열렸고, 수만 명의 방문객이 몰려들어 보행자 포화 상태를 알리는 TV방송도 방영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바츨라프 광장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에는 벨벳혁명전시회가 열렸고, 그 주위 길가에는 지난 혁명의 기억을 담은 흑백 사진 전시회가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또한, 17일 일요일 저녁에는 "미래를 위한 콘서트"라는 타이틀로 국내 인기 가수들의 공연과 유명인사들의 연설이 이어졌고 이를 보기 위한 무수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프라하 이외에도, 체코 각지에서 기념행사들이 열렸다.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브르노(Brno)에서는 벨벳혁명의 상징인 열쇠를 6000세트나 특별히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체코인들은 왜 다시 광장으로 나왔나

체코 언론이 지난 주말의 벨벳혁명 30주년 행사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모행사로 평가하는 가운데, 프라하의 레트나 부지에서는 최근 비리 혐의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된 안드레이 바비쉬 현 총리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는 총궐기집회가 열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집회 주최 측인 "민주주의를 위한 백만 번의 순간들"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날 참가자는 무려 30만 명에 달한다. 지난 4월 시작해 이번이 8차 집회였는데, 참가자 수는 여름(25만 명)에 비해 더 증가했다. "민주주의 다시 한 번"이라는 타이틀로 11월 16일(현지시각) 재개된 총궐기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체코인들도 연대했다. 뉴질랜드, 캐나다, 이스라엘, 나이로비, 멕시코, 한국 등 세계 60여 개 도시에서도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벨벳혁명 당시 바츨라프 광장에는 폭력적으로 진압당했던 학생들뿐만 아니라, 공장의 노동자들, 극장의 배우들과 예술가들, 지방의 농부 등 각계각층의 국민 수십만 명이 운집했다. 넓은 바츨라프 광장도 변화를 원하는 무수한 체코슬로바키아 시민들을 모두 담아내기엔 여전히 물리적으로 부족한 공간이었기에, 당시 시민포럼의 지도자들은 집회장소를 공터인 레트나 부지로 옮기게 된다. 당시 총 인구는 16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최대 100만 명에 육박하는 시민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 역사적인 공간에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체코인들이 다시 모였다.

안드레이 바비쉬 총리는 체코의 재벌 아그로페르트(Agrofert)사를 창립한 억만장자로 체코 내 4번째 갑부로 알려져 있다. 슬로바키아출신인 바비쉬 총리는 고위관료의 부정부패에 지친 체코 시민들에게 청렴할 것을 약속했고, 본인의 회사처럼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며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을 벌여 2017년 당선됐다. 하지만 현재 비리 의혹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프라하 외곽에 위치한 화려한 컨퍼런스 센터이자 리조트, '황새 둥지'(Stork's Nest)와 관련, 200만 유로(한화 약 26억 원)에 상당하는 유럽연합 지원금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 십년 전, 그의 가족 명의로 지원받았던 이 프로젝트는 중소기업만 신청가능했다. 차후 황새둥지 센터가 다시 아그로페르트로 넘어가면서 '이해관계 충돌' 의혹을 받게 된다.

<파이낸셜 타임스>(FT)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4월 체코 경찰은 사기혐의로 총리 기소를 권고했으나, 법무부장관은 다음날 갑작스레 사임하고, 총리의 측근이 후임으로 대체되었다. 유럽연합도 독자적인 감사를 벌였는데, 그가 펀드배당 관련 의사결정에 참가했던 사실을 감안해 '이해충돌'로 잠정 판결했다.

하지만, 프라하 검찰은 지난 9월 지원금 신청과정에서 불법행위에 관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기소를 거부했다. 이에 더해, 총리와 정치적 동맹관계인 밀로쉬 제만 체코 대통령은 총리가 기소되더라도 자신이 사면권을 행사하겠다는 전례없는 발언으로 이미 극에 달한 국민의 분노를 더 부추겼다.

필자도 지난 16일 토요일 오후 퇴진요구 집회를 참가하기 위해 레트나 부지 근처 전철역에 도착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현지인 샤르카씨를 역에서 만나서 함께 커피를 마실 계획이었으나, 역과 주변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우리는 행사시간에 제때 도착하기 위해 천천히 도보로 이동했다. 붐비는 인파로 집회장소까지 가는 데 30분 정도 걸린 듯하다.

"혁명이 아니라, 지금의 민주주의 보호하는 것"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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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어 함

나는 한국의 촛불집회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던 차에 거리에서 마주친 이들의 손팻말을 유심히 지켜봤다. 지인의 통역을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이들의 손팻말엔 현 바비쉬 총리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그림과 사진들이 많았고, "30년 전에도 거짓말 하더니, 지금도 거짓말 한다" 등 정치인들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는 문구들로 가득했다. 바비쉬 총리와 정치적 성향이 유사한 주변국들의 권력자들의 얼굴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한국의 집회 풍경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민들을 상대로 배지를 나눠주는 것 이외엔 먹거리를 파는 길거리 행상인들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전반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집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레트나 부지에는 두 시간 정도 이어진 집회로 심심해진 아이들을 위해 시소를 태우는 광경도 보였고, 심지어 어떤 젊은이들은 배구와 유사한 스포츠를 하는 여유도 보였다.

이 집회는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찰스대 학생들이 시작했다. 주최 측의 대표와 부대표 모두 찰스대 학생이다. 과거 '시민포럼 (OF)'의 대변인 역할을 했고, 같은 장소 레트나에서 집회 사회를 보던, 바츨라프 말리 신부도 무대에 올라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했다.

체코의 유명 배우들도 무대에 올라 과거 나치에 의해 희생된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겼고, 현 정국에 대해 자신들의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농화학업이 주요 사업인 총리 소유 아그로페르트사의 독점에 항의하는 농부협회 대표들도 지방에서 거대한 경운기를 몰고와 독특한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대에 오른 부대변인 벤자민씨는 먼저 벨벳혁명 추모의 발언을 한 뒤, "우리는 홍콩의 사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홍콩 시민에게 연대의 의사를 표했다. 자신을 신학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바비쉬 총리에게 집중된 권력이 너무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바비쉬 총리는 재벌을 운영하는 가운데, 국가를 클라이언트로 하고 있어 이해관계가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가 과도하게 언론장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그로페르트의 자회사인 마프라 미디어그룹은 엠에프 드네스, 리도베 노비니, 메트로 등 체코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 주간지를 비롯해 다수의 온라인 매체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집회 중 총리를 기소하지 않은 검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것에 의아해 하는 필자에게 그는 일단 사법부의 결정을 반박할만한 구체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고, 검찰총장이 재검사 등 다른 판단을 내릴 여지가 있다며 현재로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공식 대표인 미쿨라쉬 미나르스(Mikuláš Minář)씨도 "우리는 과거처럼 혁명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현 민주주의 체제를 최대한 보호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야당들도 현실적인 비전을 지니고, 통합을 통해 차기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철학과 체코어&체코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현재 집회 일로 너무 바빠서 휴학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백만번의 순간들" 집회 주최 측은 "네 가지 레드 라인"을 제시했다. 즉, 총리와 대통령이 "사법시스템과 공공 미디어를 장악하려는 시도, 이해충돌,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 행동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총궐기를 이어가겠다고 경고하며, 연말까지로 총리퇴진의 최후 통첩 시한을 요구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이들이 원칙을 지키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이런 가치가 우리 전세대가 이뤄낸 벨벳혁명의 가치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체코의 밀로쉬 제만 대통령은 지난 주 체코 매체 파를라멘트니 리스티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정신이 정상인 사람들만 만난다"며 현 집회 리더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정곡을 찌른 체코 촛불소녀의 질문
 
ⓒ 함상희

많은 연설과 무대공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필자는 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자 부지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집회 가장가리에 큰 돋보기 안경을 쓴 모습이 인상적인 초등학생이 큰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양쪽에 선, 부모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한국에서 온 지지자라고 소개하자 미소로 반갑게 답했다.

특이한 팻말의 문구가 무슨 뜻인지 물어봤더니 '역겨움의 의성어'라고 했다. 아마 한국어로는 '캭, 퉷'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소녀에게 왜 집회에 참가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우리나라 총리는 공금횡령에, 거짓말쟁이에,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조숙한 아이의 똑소리나는 대답에 우리는 모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가 그의 부모에게 한국의 촛불시민들이 몇 년 전 정권교체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이 체코 아이는 내게 "그래서 국민들은 새 대통령에 만족하냐"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집회 당시, 통역 등 내 취재 일정을 도와준 현지 주민 샤르카씨는 유난히 들떠 보였다. 그녀는 벨벳혁명 당시 17살이었다고 했다. 당시의 경험을 묻는 내게 "어린 나이에도 역사를 바꾸는 혁명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또렷한 주체의식이 기억난다"며,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격해진 감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거리나 학교 등 공적인 장소에서 그토록 감정이 넘치는 것을 처음 목격했다"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 내게 제일 중요한 일은 굳게 닫혔던 국경이 열렸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국경너머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돈이 전혀 없었지만, 친구들과 여기저기 히치하이킹을 하며 공원이나 벤치, 심지어 구덩이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학생 때는 서유럽에서 여름 동안 할 수 있는 알바를 했고, 돈이 조금 모이면 그걸로 더 돌아다녔다"며 당시 처음 접한 자유의 느낌을 자세히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또한, 1991년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된 직후인 대학 시절의 기억도 전해주었다. 그녀는 "이전에는 전혀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서적들과 개념이 체코어로도 번역되고, 서유럽의 뉴스와 잡지 등 수많은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이 무척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한 사르카씨는 이후로는 아무리 정치에 혐오감을 느껴도, 꼭 투표를 하며 선거에 참여한다고 내게 당부하듯 말했다.  
 
ⓒ 클레어 함

벨벳혁명 당시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공산당정권은 시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느슨해진 검열로 서유럽의 레코드도 살 수 있게 되었고, 금기시되었던 의사 표현도 가능해졌다. 오스트리아의 국경도 열리면서 첫 주말에 무려 20만 명이 여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궁극적으로 자유선거를 원했고, 11월 17일 혁명이 시작된 지 42일만에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취임하게 된다.

체코인들로부터 존경받는 하벨 대통령은 그간 체코인들은 거짓으로 둘러싸인 허위의 삶을 살아왔다고 평가했다. 그가 남긴 "진실과 사랑은 거짓과 증오를 이길 것이다"라는 경구는 언뜻 듣기엔 새로울 게 없어 보이지만,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삶을 살아왔던 체코인들에겐 큰 울림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진실은 체코인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와 상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타임랩스 스타일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사회주의체제 아래 소시민의 삶을 몇십 년간에 걸쳐 영화로 재구성했던 헬레나 트레슈티코바 감독은 하벨 대통령의 이 명언은 체코인들의 머릿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헬레나 감독은 필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30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1989년 11월 17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다. 당시 엄혹한 사회주의 독재정권의 끝이 보이지 않아 절망했던 나는 드디어 희망의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어 행복했다"며 자신의 소회를 전했다. 그래서 "현 체코 사회의 상황에 불만이 많지만, 최소한, 개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도 말했다.

나는 다음날 일요일 얀 팔라흐 열사의 추모비를 방문하고자 바츨라프 광장을 다시 찾았다. 올 여름 체코의 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얀 팔라흐> 영화를 인상깊게 봤고, 주연배우 빅터 자바딜씨와 만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도 소개되었던 같은 소재의 <버닝 부쉬 Burning Bush> TV영화도 잇달아 챙겨봤다. 얀 팔라흐 열사는 분신 전 유서에 검열폐지와 당시 '프라하의 봄' 이후 주둔한 소련 점령군의 공식 신문, 스프라비 (Zprávy)의 폐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시 상황에 낙심하며 타협의 길을 가던 체코슬로바키아 민중들을 일깨우고자 분신했다고 전해진다.

20세의 나이에 체코의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해간 그의 희생을 기리고자 많은 체코 시민들이 추모장소에 촛불을 켜놓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정성스레 촛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크리스틴과 블란카씨는 "벨벳혁명 30주년을 맞아 그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고자 여기를 찾았다"고 전했다. 쾌활한 성격의 두 여성은 필자가 어제 촛불집회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자, 봇물이 터지듯 바비쉬 총리에 대해 비판했다.
 
얀 팔라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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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어 함

나로드니 거리에서 희생자 추모행사에 참가했던 그에게 "전직 비밀경찰이 무슨 추모를 하냐며 야유를 퍼붇는 시민들이 많았다"며, 이 뜻깊은 시기에 해리포터 배우와 셀피 사진이나 찍는 그의 행보도 비난했다. 블란카씨는 특히, 총리 회사, 마프라 미디어그룹의 메트로 신문은 심지어 어제 열렸던 총리퇴진집회 행사시간을 고의로 틀리게 적었다는 우스꽝스런 일화도 들려주었다.

그녀는 "오후 2~4시 사이에 진행되는 집회 시간을 일부러 오후 4시에 시작한다고 보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퇴진집회가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라는 자신감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유럽위원회의 최종 리포트가 이전의 예비 수사결과처럼 바비쉬 총리의 유죄를 입증할 경우, 퇴진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큰 힘을 실어 줄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정치 분석가의 이야기를 전했다.

아울러 한국의 촛불집회 과정도 자세히 소개해주었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비가 올때까지 쉬지않고 끈기있게 노력하다 보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격려했다. 그러자, 그녀들은 내 말이 맞다고 수긍하며 무척 고마워하기도 했다. 한국의 촛불시민으로서 체코의 젊은 촛불시민들을 격려하며 우정어린 대화를 나눈 뒤, 나는 옆에서 열리는 "미래를 위한 콘서트"를 보기 위해 이동했다.

30년전 이 바츨라프 광장에서 정권퇴진을 외치던 체코 시민들은 그 성공의 결과를 자축하고 있었다. 인기그룹 'MIG21'의 공연을 끝으로, 국립박물관 전체 건물 위로 장엄한 이미지의 비디오매핑이 상영되었다. 과거 벨벳혁명 당시의 사진과 영상들을 멋지게 조합해낸 이 프로젝트를 보고 있는 체코 시민들은 무척이나 진지해 보였다.

일부 시민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복잡한 감정이 얽히고설킨 엄숙한 분위기에 같이 있노라니, 왠지 외부인인 나도 코끝이 찡해졌다. 이어 수많은 체코 시민들이 애국가를 함께 부르는 가운데, 모든 벨벳혁명을 기념하는 공식행사는 막을 내렸다.

체코의 진실과 사랑은 거짓과 증오를 이겨낼까
 
ⓒ 클레어 함

광장을 채우던 수십만의 군중이 흩어지는 가운데 나는 내 옆에서 딸과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페트라씨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요가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는 체코사회가 맞닿은 현실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었다. 페트라씨는 프라하는 실업률이 낮지만, 아파트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고 했다. 아울러, 수도 프라하와 다른 지방 간의 경제적 격차가 크다며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지금 '미래'를 말했지만, 실제로 미래를 담당할 차세대를 교육하는 교사들의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며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과거에 비밀경찰과 공산당으로부터 고통을 당했는데 왜 비밀경찰 출신의 총리를 선택했는지 의아하다는 내 질문에 그녀는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인간은 망각의 존재가 아니냐"며 씁슬한 답변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안드레이 바비쉬 총리도 "미래 세대를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의 비리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부인해 왔고, 심지어, 슬로바키아 정부 기록에서 과거 비밀경찰요원으로 밝혀졌음에도 사실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체코 시민들의 정의를 위한 열망이 새로운 변화를 몰고올까? 아직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니만큼 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

역사는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체코 현대사만 보더라도 실패와 성공의 연속이 이어졌다. 다시 아름다운 프라하를 찾았을 땐 바츨라프 하벨처럼 국민들이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를 TV와 신문에서 접하게 되길 희망하며 기차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진실과 사랑은 거짓과 증오를 이길 것이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체코 시민들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이들의 정당한 싸움을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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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함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칼럼니스트및 인권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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