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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친척도 만나며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데, 호주에 사는 이웃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동네에 산불이 크게 났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산불이 자주 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국 방문을 끝내고 호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왔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이 떠날 때의 설렘 못지않게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설렘도 남달랐다. 비워두고 떠난 집이 그리웠다.

밤 비행기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을 맞았다. 밖을 보니 호주 대륙이 펼쳐져 있다. 숲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벌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푸른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거대한 산불 연기가 대여섯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모니터를 보니 비행기는 뉴캐슬(Newcastle) 북쪽을 지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산불이 난 것이다.
 
검은 연기가 강풍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덮는다.
 검은 연기가 강풍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덮는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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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도착했다. 친구 집에 주차해 놓았던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서너 시간 운전해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피곤한 몸을 쉬어가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어느 정도 집에 가까워지는데 도로 통제 요원들이 고속도로를 막고 목적지를 물었다. 목적지(Hallidays Point)를 이야기하니 산불에 도로가 막혔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트렁크에는 풀지 않은 짐으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시드니 한국 식품점에서 산 음식물도 있었다. 오늘 중으로 집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경고를 무시하고 일단 집으로 향했다. 동네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착했는데, 자동차가 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고속도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동네로 통하는 샛길은 열려있었다.

어렵게 도착한 동네에서 마주한 검은 풍경
 
비행기가 계속 돌아가며 산불 진압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비행기가 계속 돌아가며 산불 진압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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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길을 달리는데, 도로변 숲은 불탄 나무들로 가득했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차례 큰불이 휘젓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항상 다니는 익숙한 삼거리에 도착하니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이 보였다. 모든 운전자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다행히 우리 동네 방향은 괜찮단다.  

어렵게 집에 도착했다. 앞마당에는 불에 탄 나뭇잎들이 흩날리고 있다. 우리 동네는 산불 피해를 간신히 비켜갔다. 그러나 시야를 가리는 연기와 매캐한 산불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했다. 대충 짐을 풀고 베란다에 나가 보니 가까운 곳에서 시커먼 산불 연기가 무섭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람도 심했다.

여행의 피로가 엄습해, 산불 걱정은 뒤로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집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그러나 쉽게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을 맞았다. 동네엔 여전히 심한 연기가 가득했다. 베란다에서 밖을 봤다. 가까운 곳에서는 검은 연기가 아직도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헬리콥터와 비행기 서너 대가 계속 돌아가며 진화 작업을 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비행기가 물 폭탄을 쏟아내는 광경은 처음 봤다. 심한 바람이 불지만, 다행히 우리 집 쪽으로 불지는 않았다.
  
호주 수상이 우리 동네에 와서 기자 회견하는 모습.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있다.
 호주 수상이 우리 동네에 와서 기자 회견하는 모습.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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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국영 방송에서는 산불 소식을 24시간 전하고 있다. 앵커가 타리(Taree)에 주둔하면서 산불 소식을 전했다. 타리는 쇼핑하러 자주 들르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네다. 수상과 주지사도 타리에 와서 대국민 메시지를 전했다. 이렇게 심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점심 식사 후 자동차로 동네를 돌아봤다. 동네 주위 숲이 검게 불탔다. 우리 집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도 산불 흔적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불길이 도로를 넘어 오지 않아 우리 동네는 피해를 면한 듯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불도저가 산불이 넘어 오지 못하도록 초목을 밀어내고 있었다. 타리로 향하는 도로 입구에는 소방차가 대기했다. 도로 건너편에 사는 주민은 모두 대피했다고 한다. 심한 바람을 타고 치솟아 오르는 불기둥을 가까이서 보며 난생 처음으로 산불의 위력을 실감했다.

집 앞에 있는 소방 시설에 소방차들이 와 물탱크에 물을 채웠다. 소방관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국립공원에도 산불 피해가 심각하다고 한다. 바람 방향이 바뀌면 우리 집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 집 앞 소방 시설에서 물을 담아가는 소방차. 수시로 소방차가 온다.
 우리 집 앞 소방 시설에서 물을 담아가는 소방차. 수시로 소방차가 온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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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지붕 위를 오가며 화재 진압에 안간힘을 쏟는 헬리콥터
 수시로 지붕 위를 오가며 화재 진압에 안간힘을 쏟는 헬리콥터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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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걱정하며 불을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다. 어제 저녁 우리 집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한국에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어젯밤은 심한 바람과 산불 걱정에 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이웃은 우리에게 짐을 쌌느냐고 묻는다. 동네는 비상 상황이라고 한다. 집을 비우고 피신한 이웃도 많다고 한다. 자신도 자동차에 중요한 물건을 싣고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중요한 물건들은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고 한다. 집이 타버리면 보험 처리를 위해서다. 우리만 전후 사정을 모르고 태평하게 지냈다.

환경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검은 연기가 강풍을 타고 무섭게 솟구친다.
 검은 연기가 강풍을 타고 무섭게 솟구친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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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매년 산불이 일어난다. 더운 여름에 바짝 마른 나뭇잎이 강풍에 휩쓸리면서 생기는 자연발화가 대부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산불이 발생했다. 그러나 예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기가 빨라졌고, 피해 범위가 방대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산불을 계기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책이 미온하다며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텔레비전에는 전문가들이 나와 산불 대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기후 변화가 산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구는 하나밖에 없는 삶의 터전이다. 인간의 욕심에 비례하여 지구의 수명은 짧아질 것이다. 환경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경험한다. 산불 위험에 노출되어서야 환경 문제에 예민해지는 나를 본다.
 
베란다에서 찍은 산불의 검은 연기가 스며든 석양 풍경
 베란다에서 찍은 산불의 검은 연기가 스며든 석양 풍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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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산불, #TAREE, #HALLIDAYS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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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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