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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에 차려진 고공 농성장. 서상옥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농성장을 홀로 지키고 있다.
 나무위에 차려진 고공 농성장. 서상옥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농성장을 홀로 지키고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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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산은 서울의 아차산처럼 야트막하고 낮은 산이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일봉산 숲은 천안 시민들에게는 허파와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오는 2020년 7월부터 시행되는 도시공원 일몰제로 인해 일봉산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는 '사업시행이 없는 토지의 사적 이용권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이 같은 결정에 따라 2000년 7월을 기준으로 20년 이상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도로, 공원, 녹지 등이 도시계획 시설에서 해제되어 개발이 가능해졌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일찍부터 난개발을 우려하며 대책을 요구해 왔다.

충남 천안시에 있는 일봉산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천안시는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응하겠다"며 민간공원특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오는 2020년 도시공원 지정이 종료되는 일봉산이 민간공원 특례사업에 포함되면서 발생했다. 일봉산 절반 이상 허물어지고 그 위에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봉산 일대의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일봉산 지키기 주민대책위는 "일봉산 일대에는 민간공원 특례제도에 따라 10~32층 규모의 아파트 34개 동에 대한 건축계획이 진행되고 있으며 일본산의 30%가 콘크리트 건물 아래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천안시의 민간공원 특례제도는 '보존'이 아닌 '개발'을 위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일봉산 개발 추진한 구본영 전 시장은 시장직 상실


설상가상으로 구본영 전 천안 시장은 시장 직을 상실하기 불과 일주일전인 지난 8일, 민간사업자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일봉산 개발을 밀어 붙였다. 하지만 구본영 전 시장은 협약을 체결한 직후 시장직을 잃었다. 대법원(노정희 대법관)은 지난 14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구 전 시장에게 벌금 800만 원과 추징금 2천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봉산 개발을 강행한 구본영 전 시장은 물러났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일봉산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주민들과 연대 중인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서상옥 사무국장은 지난 13일부터 일봉산 숲속에서 "일봉산 개발을 철회"하라며 '고공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8일 서상옥 사무국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 위해 일봉산 농성장을 찾았다. 
 
일봉산을 지켜 달라며 서명을 하고 있는 주민들
 일봉산을 지켜 달라며 서명을 하고 있는 주민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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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산에 꾸려진 고공농성장과 상황실 주변에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주민들은 기자에게 "일봉산이 처한 현실을 널리 알려 달라"며 여러 차례 부탁의 말을 건넸다.
 
"집 근처에 일봉산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


중년 여성 A씨는 "일봉산 근처 사는 중년 여성들은 일봉산에서 갱년기를 무사히 보내고 있다. 일봉산이 나를 살렸다고 하는 엄마들도 많다"며 "자연을 보면 마음부터가 달라진다. 일봉산을 거닐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만약 일봉산이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사갈 생각이다. 생각만해도 너무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중년 여성 B씨도 "일봉산은 천안에 얼마 안남은 산이다. 광덕산은 여기선 너무 멀다. 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고 집 근처에 이런 좋은 산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며 "이렇게 좋은 산을 없애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아파트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분양이 안 되는 곳도 많은데 이해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구본영 전 시장에 대한 원망도 나왔다. 조신동 일봉산주민대책위원 "일봉산이 좋아서 근처 아파트로 이사 온 것도 30년이 되었다. 일봉산은 천안 시민의 허파이다. 천안 시민의 산인데 시장 한사람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라며 "대화와 주민투표를 요구했지만 구본영 전 시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서상옥 "환경부는 일봉산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해야"

서상옥 사무국장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 사무국장은 10여 미터 높이의 나무위에 만들어진 고공농성장에서 20일을 기준으로 7일째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나무위에 차려진 농성장과의 거리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서 사무국장과는 서로 마주보며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 사무국장은 "가까이에서 전화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하려니까 좀 어색하다"며 웃어 보였다. 아래는 서 사무국장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농성장 아래에서 촬영한 서상옥 사무국장
 농성장 아래에서 촬영한 서상옥 사무국장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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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부터 문제가 되어 왔던 걸로 알고 있다.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사업 초반에는 우리도 몰랐다. 환경영향평가 초안과정에서 알았다. 개발사업의 규모와 일몰제로 인한 공원 해지 문제도 그때 알게 되었다. 주민대책위를 꾸리고 개발사업의 이면을 살폈다. 일봉산의 경우 주민 수용성이 높은 곳이다. 일대에 8만 세대가 살고 있다. 14만 평 되는 일봉산 공원 딱 하나가 남아 있는 상태다. 일봉산 공원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 일봉산 민간 특례공원 사업을 승인한 구본영 시장은 최근 정치자급법 위반으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혹시 구 전 시장에게 전할 말이 있나.
"우리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민들은 일봉산 민간 특례 사업과 관련해서도 구본영 전 시장을 고소할 계획을 갖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2년 동안 사업철회를 요구했지만 구 시장은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일봉상 개발 사업을 강행 처리했다. 구본영 시장은 직을 상실하기 바로 직전 비밀리에 사업자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67만 천안 시민을 우롱한 처사이다. 그에 따른 책임은 구 전시장이 전적으로 져야 한다."

-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유와 요구사항이 무엇인가.
"현재 절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환경영향평가 본안이 서면 심의 중에 있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통해 일봉산 개발과 관련된 모든 절차를 중단 시켜야 한다. 내가 일봉산 숲속에서 농성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춥지는 않은가.
"추운 것도 추운 것이지만 생리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응급초치를 취하고 있다(웃음)."
 
지난 18일 천안 일봉산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지난 18일 천안 일봉산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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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상옥 , #일봉산 , #천안 일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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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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