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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당시 정규 언론들은 광주 시민들을‘폭도'로 매도했다. 신군부의 삼엄한 검열 하에 어느 언론에서도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5.18 당시 정규 언론들은 광주 시민들을‘폭도"로 매도했다. 신군부의 삼엄한 검열 하에 어느 언론에서도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 5.18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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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시민을 대량 학살한 것이 신군부의 공수부대였다면, 두 번 죽이고 명예를 훼손한 것은 국내의 일부 신문과 방송이었다.

먼저 주요 외신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보도를 알아본다.

『UPI』, 『AP』, 『AFP』통신과 『뉴욕타임스』는 5월 25일 「고립된 광주에서의 참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다음과 같이 게재했다.

일반 시민들은 데모대와 동조하고 있으며 18일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공수부대의 야수적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검에 찔리고 구타당했으며, 수요일에는 군대의 발포로 최소 11명 사망, 여기의 상황은 한국의 타 지역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음은 일본 『요미우리신문』 5월 27일자이다.

현지로부터의 정보로는 육상에서는 도시를 포위했던 계엄군이 새벽 3시 30분 우선 시내 전화를 전부 단절시키고, 시내로 들어오는 주요도로를 확보한 후 장갑차를 선두로 무장세력이 구축한 바리케이트를 부수고 4개 간선도로를 이용, 전남도청으로 진격했다. 한 공수부대는 헬리콥터에 나눠 타고 도청 밖에 낙하, 시 중심에 있는 도청과 공원으로 진입했다.
 
 5.18 항쟁 기간중 유일하게 진실한 언론 역할을 했던 <투사회보>
 5.18 항쟁 기간중 유일하게 진실한 언론 역할을 했던 <투사회보>
ⓒ 5.18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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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동경신문』 5월 27일 「비극! 민족끼리의 싸움」의 내용이다.

격렬한 자동소총의 난사에 무장시민도 필사의 응전을 했다. 그러나 병력, 작전, 훈련도 등의 차이로 정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우기는 무리였다. 무장시민의 저항이 그치고 강경파 시민, 학생의 본거지였던 전남도청 건물은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점거되었다.

기자는 아침 6시 30분, 진압된 후의 시내로 들어갔다. 큰 길 사거리에서 진지를 구축한 육군부대 1개 소대가 총구를 시내로 향한 채 배치되어 있었고, 시내 도처에는 자동소총을 손에 든 군인들이 흩어져 있었다. 군인들은 야간작전시 자기들끼리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전원 헬멧에 흰 띠를 두르고 있었다. 이날 7시가 지나면서 도청 방면에서 맨 처음 투입된 부대가 대형트럭 10대에 나눠 타고 들어왔다.

이제 동포에게 총구를 겨눈 것에 대해 전원이 승리에 찬 표정을 띤 것처럼 보여졌다. 일부 군인들은 미소띤 얼굴에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이어서 체포된 사람을 태운 대형트럭 3대가 들어왔다. 전원 좌석에 엎드려 있고 양손을 머리 위에 올렸다…….


다음으로 국내 신문들의 사설ㆍ기사를 살펴본다.

『조선일보』는 5월 25일 「도덕성을 회복하자」란 사설 말미에서 "57년 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역사가 반교사적으로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에겐 지난날 대구와 제주의 폭동사건 그리고 여순반란사건 그리고 성남시와 사북에서의 소요사태 등의 경험이 또한 있다. 형용할 말이 없는 어려움을 당해서 슬기롭게 대처할 민족적 긍지와 지혜를 모으자"고 엉뚱하게 '제주폭동'사건, '여순반란'사건 등에 연상시키려는 논지를 보였다.

이 신문은 특히 5월 28일 「악몽을 씻고 일어서자」라는 사설에서 악의적인 곡필을 서슴지 않고 있다. 다음은 이 사설의 중간 부분이다.

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머지않은 평시에로의 회복을 또한 분명하게, 그리고 어김없이 약속하는 조건이고 환경이라는 사실이다.

광주사태를 진정시킨 군의 어려웠던 사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 30년 전 6ㆍ25의 국가적 전란 때를 빼고는 가장 난삽했던 사태에 직면한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군, 곧 국군은 광주시민을 포함한 온 국민의 아들이고 동생들이며, 그래서 국민의 국군이며, 국민으로 구성된 국가의 국군이다.

그러한 국군이 선량한 절대다수 광주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이번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계엄군은 계엄사령관이 지시했듯이 계속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민의 군대로서의 사명을 다해 줄 것을 우리도 거듭 당부해 마지않는다.


『조선일보』는 광주의 엄청난 학살사태를 두고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다는 것이나,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켰다는 주장이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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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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