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5년,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6부작이 만들어진 시간이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이 다큐멘터리는 진화 심리학적으로 '증오'의 기원을 추적했다. 1, 2부에서는 '증오'가 진화의 결과로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정서적 기제'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내재되어 있는 증오의 문을 열어제치는 건 무엇일까? 12일 방송된 3부 '증오를 부추기는 기술' 편은 바로 그 열쇠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열린 문은 봇물처럼 증오를 키워 '극단주의'로까지 흘러간다. 그 내용은 13일 방송된 4부 '증오의 극단주의' 편에 담겼다.

증오를 부추기는 기술... 누가 증오를 부추기는가?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 KBS

 
방송에서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젤라니 콥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해선 안 될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주범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와 언론'을 손꼽았다. 특히 사실 보도를 사명으로 했던 '언론'은 어떤 단체보다 당파적이며 편향적인 기사를 쏟아내, 극단적인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리더와 언론의 선전, 선동이 사람들에게 편향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하기에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대표적 사례는 바로 1994년 무려 1백만 명이 살해당한 '르완다 학살'이다. 당시 벨기에는 르완다를 식민 지배하며 소 열 마리 소유를 기준으로 투치족과 후투족을 나눴다. 15%의 소수 투치족이 85%의 다수 후투족을 지배하며 반목을 거듭했고, 시간이 흐른 뒤 이들은 서로를 다른 종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후투족 언론, 그 중에서도 친정부적 언론이었던 '캉구라'는 투치족을 마치 없애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며 반투치 선전에 열을 올렸다.
 
문맹율이 높았던 르완다에서 영향력이 컸던 라디오 방송국은 더했다. "투치족은 인간이 아니니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며 '바퀴벌레 소탕 작전'이라 부추겼다. 더구나 "지주 계급이었던 투치족을 죽이면 그들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고 "그러니 더 많이 죽여 더 많은 땅을 가지라"고 선동했다.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 KBS

 
언론과 방송을 통한 지속적인 선동과 사상 교육(투치족은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아이들과 노예를 죽였다고 교육했다)을 받고 자라난 후투족은 투치족을 상대로 싸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또한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를 내재화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 선전의 '핵심'은 '비인간화'였다. 유대인들을 가리켜 지하에 들끓는 쥐떼와 같다고 했던 나치처럼, 후투족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라며 박멸해야 할 존재로 치부했다. 공격해서 죽이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대량 학살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후투족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스며든 선전과 선동은 사회적 인지 능력인 공감 기능을 관장하는 내측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을 떨어뜨렸다고 했다.

방송에서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도표로 만들어 놓고 미국에서 342명에게 조사를 한 결과도 보여줬다. 질문에 답한 미국인들 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진화의 최종 단계인 100%라 답했다. 반면 이민자인 멕시칸들은 75% 정도 밖에 진화되지 못한 존재라 여겼다. 유럽인도 마찬가지다. 무슬림에 대해 60%라, 즉 미개하고 야만적인 존재가 간주했다. 

문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편견이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활개치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찰스턴 감리교회에 들어가 성경 공부 모임을 하던 흑인들을 총기로 난사한 빌런 도프. 그는 흑인들이 매일 백인을 죽이고 백인 여자를 성폭행하고 있다는 가짜 뉴스를 인터넷을 통해 습득했다. 

백인에 대한 흑인들 범죄를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 빌런,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사이트는 '보수 시민 위원회'라는 백인 우월주의 선전 사이트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에 입각한 정보가 아니었다. 단지, 돈을 더 내면 상위에 링크시켜주는 구글의 상업적 알고리즘의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오늘의 날씨를 검색하듯 이들 사이트에 대한 사실적인 믿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포털 사이트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증오를 퍼뜨린다.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 KBS

 
과거 끔찍한 증오범죄들을 보며,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며 예외적인 일탈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런 인간의 '증오'에 기반한 대량 학살은 우리 역사가 가진 오랜 전통의 산물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정치 지도자들은 인간이 가진 전통을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기꺼이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8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재선 가도에서 떨어지는 지지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해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반난민 정책'을 자신의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외국인 침략자가 몰려오고 있다'며 유세 내내 공포를 부추겼고, 바로 자신이 맞서 싸울 적임자라, 헝가리를 지킬 수 있다며 '증오' 감정에 불을 질렀다. '대중 영합적 민족주의 운동'을 조장했던 빅토르는 결국 재선에 성공했고, '반난민, 반EU' 정책을 앞세워 4선까지 기세를 몰아붙였다. 

증오의 극단주의, 결국 리더의 조종이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 '극단주의'가 탄생한다. 미국 필라델피아 빈민가 출신의 청년 프랭크는 1971년 백인 우월주의 세력 '스킨헤드'가 되었다. 나치 깃발을 들고 자신들이 유대인의 희생양이라 여기던 집단에서 그는 가족과도 같은 소속감을 느꼈다. 미국이 유대인에 의해 타락했다며 행동에 나선 그는 총기 판매, 조직원 납치와 감금을 일삼다 17살에 구속되어 3년 형을 살게 되었다. 

학대받던 가정에서 16살에 도망쳐 나온 제시 모틀은 흑인해방운동을 이끈 맬컴 엑스의 자서전을 읽고 이스람교로 개종했다. 유누스 압둘라 무함마드로 개명한 그는 살라피 자하디즘에 헌신, 오사마 빈라덴을 지지하며 알카에다 조직원을 모집했다.

극단주의 전문가인 샤샤 하블리첵은 백인 우월주의건, 극단주의 이슬람이건 다 똑같다고 말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극단주의 단체들의 1차적인 목표는 편가르기다.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 KBS

 
1971년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유명한 실험이 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을 무작위로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누고, 이들을 죄수와 간수로 분하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간수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잔인해졌다. 쇠사슬로 죄수를 묶는가 하면, 변기 청소를 시키고 기합을 하는 등 가혹 행위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은 자연스럽게 맡겨진 역할에,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실험에는 '비밀'이 있었다. 2001년 BBC에서 일반 대중 15명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한 것이다. 간수로 뽑힌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감옥을 운영하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1971년과 달리 간수들은 가혹 행위는 커녕 자신이 간수가 되어 죄수를 통제하는 상황을 싫어했다. 

그리고 1971년 실험에서 짐바르도 교수가 간수들의 가혹 행위를 '조장'했다는 충격적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인간들이 간수건, 죄수건 주어진 역할에 무조건 충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극단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가는데는 '리더의 지시'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리더의 지시'를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이라크 전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다.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KBS 1TV 특선 다큐멘터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의 한 장면 ⓒ KBS

 
2008년 오바마가 당선된 이후 백인 우월주의가 미국에서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에 트럼프는 "나는 당신들과 같다"며 이를 부추겼다. 위험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고 혐오 범죄에 대한 칭찬과 보상을 약속했으며 거기에는 그럴싸한 대의명분까지 더해졌다. 상황에 던져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극단주의적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된다는 것. 하지만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한 정치는 '민주주의'의 퇴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극단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엄격한 법'일까? 이에 대해 한때 스킨 헤드족이었던 프랭크는 방송에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를 구속했던 법도, 그가 거리에 나설 때마다 그에게 퍼부어지던 욕도 그를 바꾸진 못했기 때문이다. 외려 그를 바꾼 건 나치 문신과 스킨 헤드 복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었으며 그의 일탈을 견뎌준 유대인 상점 주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했던 이슬람 극단주의자 제시를 변화시킨 건, 그가 조직원들을 알카에다로 보냈던 모로코에서였다. 그가 미국에서 당연히 누리던 것들(언론의 자유 등)을 위해 모로코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며 싸우는 것을 본 제시는 지금까지 그가 투쟁했던 '극단주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모든 프랭크에게, 제시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 인간 사회의 비극, 그 악순환을 낳는다고 다큐멘터는 말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KBS특선 다큐- 스티븐스필버그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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