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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 서재에 읽지 않은 책이 쌓여 있는 것은 책을 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읽는 속도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단 사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더 이상의 용도가 없어져서 그냥 아무렇게나 내 팽겨 둔 이유가 더 크다.

좋은 책은 사두면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라는 기대는 별로 없다. 유혹하는 책을 발견하고,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고, 도착한 택배를 열어서 새 책을 만지작거리는 몇 분 정도까지가 책과 관련된 나의 즐거움은 거의 끝난다. 철이 없는 것은 알겠는데 호사스러운 취미는 아니다. 한 달에 40만 원 정도의 투자로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취미 생활이 책 사재기 말고 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은정 작가가 쓴 <눈물이 마르는 시간>은 사는 즐거움, 읽는 즐거움, 읽은 보람을 모두 만족시키는 희귀한 책이었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유난히 책을 사는 재미가 뛰어났고, 도착한 책은 '손맛'(적당한 크기, 재질, 재본 상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이 탁월했다. 표지는 화사한데 제목은 '멜랑꼴리'하다. 
 
표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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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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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대로라면 잡은 물고기를 통에 휙 던져 넣는 것처럼 내 서재나 책상 구석에 꾸겨 넣어야 하는데 이 책은 시선을 잡아끌었다. 읽기 시작했는데 온종일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쪽까지 읽고 나서야 이 책을 내려놓았다.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가졌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심정이 이해가 되겠더라.

읽고 나니까 이 책을 읽은 감상을 쓰고 싶어졌다. 내 글쓰기 인생에 졸음을 참아가면서 글을 쓴 것이 아마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을 때 언제 가장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가 하면 책 속에서 꼭 나 같은 사람을 만날 때다. 현실 세계에서는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고 별나다 싶은 나의 독특한 면을 책 속에서 캐릭터나 화자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면 그것만큼 재미나고 위안이 되는 경우가 없다.

만선 하지 못하고 항구로 돌아오는 어선에 탄 선원의 근심을 읽어내고, 엄마가 없는 엄마를 위로할 줄 알며, 동네 할머니가 건네준 오래된 수저와 며칠 뒤에 세상을 달리한 그 할머니의 죽음 사이에 있는 개연성을 생각하는 공감이 감동적이었고 위로가 되었다.

남들은 아름답고 늠름하게 여기는 나무를 정작 본인은 '목매달기 딱 좋은 나무'로 보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궁핍하고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담담한 어조로 찬란한 슬픔을 말하는 이은정 작가의 글쓰기가 놀랍고 존경스럽다.
 
쳐다보는 것만도 아까워서 눈물이 났던 그 사람이, 기필코 이생에 이 사랑 하나는 지키겠노라 다짐하게 했던 그 사람이, 이제는 남이 된 채 미안해, 미안해를 반복하며 내 우체통에 꽂혔다. 그 수많은 편지를 쓰며 그가 흘렸을 후회와 자책의 눈물 자국이 편지지에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나는 그저 할 만큼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할 만큼 하고 미련 없이 당신 인생을 살라는 뜻이었다. 그는 이미 늦은 사람이었다.
 

이은정 작가만큼 책에 대한 진솔한 사랑을 보여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꿈과 낭만이 담긴 수 백 권의 책을 헌책방에 팔아넘기기로 하고 트럭으로 실려 나갈 때 작가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책을 판 돈을 들고 내내 울었다. 나는 안다. 이은정 작가는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생명이 없는 물건에도 연민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어머니가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났을 때 우리 아버지는 나를 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쳐다보는 것만도 아까워서." <눈물이 마르는 시간>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태그:#이은정, #마음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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