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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발간된 국역덕봉집이다. 현재 남아있는 25수의 덕봉 시가 번역돼 실려 있다.
▲ 국역덕봉집 2012년에 발간된 국역덕봉집이다. 현재 남아있는 25수의 덕봉 시가 번역돼 실려 있다.
ⓒ 심미안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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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여성작가 중 송덕봉(송종개, 1521~1578)이 있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덕봉'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여성 최초로 개인문집인 '덕봉집'을 펴냈다고 전해지지만 안타깝게도 남아있지 않다. 이 때문에 비슷한 시기의 여성 작가인 신사임당(1504~1551)과 허난설헌(1563~1589)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에 대한 기록 대부분은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목판'(보물 제260호)에 실려 있다. 지난 4일 미암일기가 보관됐던 모현관이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모현관은 미암 유희춘 선생 고적 관련 수장시설로 1957년 건립됐다. 화재와 도난 방지를 위해 연못 한복판에 대지를 마련해 지은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개인이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계획을 하고 수장고를 만든 사례는 극히 드물어 역사·사회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문화재로 등록예고된 담양 모현관이다.
▲ 담양 모현관 지난 4일 문화재로 등록예고된 담양 모현관이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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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현관이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미암과 덕봉의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암 유희춘(1513∼1577)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기록의 달인'이라고 전해진다. 미암일기는 개인이 기록한 일기 중 가장 양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사뿐 아니라 당시의 생활모습 등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임진왜란 이후 훼손된 선조실록을 복원하기 위해 미암일기가 참고자료로 쓰였다고 하니 그의 기록이 얼마나 꼼꼼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암의 남아있는 11권의 일기 중 한 권의 일기 속에 송덕봉과 주고받은 글이 있다. 이 글을 통해 그의 필력과 작품관을 엿볼 수 있다.
 
덕봉의 남편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 목판이다. 남아있는 14권 중 1권에 덕봉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 보물 제260호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목판  덕봉의 남편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 목판이다. 남아있는 14권 중 1권에 덕봉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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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봉은 미암을 지음(知音)이라 부르며, 글을 짓는 지기로 소통했다. 미암의 일기 중 "시를 지었더니, 덕봉이 '직설하여 문장을 쓰듯 시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산에 오르고 바다를 건너는 것으로 시작하여 끝에 가서 벼슬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며 내가 놀라서 부인의 말을 따라 시를 지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고전여성시사'를 보면 송덕봉의 '차미암운' 시가 있다. 덕봉은 친정아버지의 무덤에 비를 세우려 했으나 비용 부족으로 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비석을 세우는 것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으나 미암은 비석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가정의 화목함만을 논했다.
 
(가정의) 화목함을 세상에 자랑하지 말고 莫誇和樂世無倫
정말 나를 생각한다면 착석문을 읽어 보십시오 念我須看斲石文
군자라면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君子蕩然無執滯
-차미암운-

 
 
석봉은 '차미암운'과 함께 편지글도 보냈다. 미암의 일기에 실린 편지는 "당신이 장가오던 날 아버지가 '금슬백년'이란 시구를 보고 어진 사위라며 아꼈다는 것과 자신의 형제는 곤궁해서 비용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특히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자신은 귀양 간 남편을 대신해 홀로 3년 상을 지냈기에 사대부 여인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했으나 당신은 장인이 사망했을 때 삼 년 안에 한 번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남편 태도의 모순점을 지적했다. 이에 미암은 송덕봉의 의견에 동의해 착석문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게 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송덕봉은 당시 유교적 규범에서 벗어나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줬다.

미암 박물관 관계자는 "덕봉 선생의 본가 홍주 송씨는 자녀교육을 중요시 여긴 집안으로 여성임에도 문학인으로서의 삶을 펼치는 것에 크게 제약받지 않았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25수지만 미암 선생의 일기에 따르면 더 많은 작품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덕봉 선생은 사대부 여인으로서의 본분, 지음(知音)이자 남편인 미암 선생과의 소통, 가족애, 당대 여성으로서의 잠재적인 욕망 표출 등 다양한 시각이 글에 나타나 있다. 남겨진 시들을 보면 이런 관점들이 잘 녹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문집을 만든 것으로 덕봉 선생이 당대 뛰어난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시대적 한계에 국한되지 않고 자기 뜻을 글로 남겼던 덕봉. 모현관의 문화재 등록을 계기로 덕봉의 삶과 문학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송덕봉, #여성문학가, #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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