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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나에게는 2~3학년 동안 같은 반이었으며 같이 야간자율학습을 했고 또 수 없이 그 짧은 쉬는 시간에 엄청 떨어져 있는 매점으로 쉼 없이 달렸던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나보다 월등히 공부를 잘해서 어떨 때는 선생님보다 더 잘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친구였다. 이런 친구를 둔 것이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 것은 뭐 특이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친구는 그때마다 너무 친절하게 문제를 풀어주었다.

대학입학시험이 다가올수록 우린 조용해졌다. 포기한 아이는 포기한대로 열심히 하는 아이는 열심히 하는 대로 각자 저마다 선택한 길을 습관적으로, 맹목적으로 갈뿐이었다. 등하교의 즐거움도 지겨움으로, 조급함으로 바뀐 지 오래된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나는 여느 때처럼 수학 문제 하나를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친구는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넌 이것도 모르니?"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내 친구가 그렇게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 너무 충격적이어서 다시 한 번 친구를 바라봤다. 그저 내가 잘못 들은 것이기를 바라며. 하지만 친구는 "야, 시험이 며칠 밖에 안 남았는데..." 뒤에 말은 더 듣지 않았다. 난 친구에게 내밀었던 수학 문제집을 빼앗아 내 자리로 돌아왔다.

친구는 뒤늦게 자신의 말이 나에게 기분 나쁘게 들렸음을 알아챘지만 그렇다고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친구에 대한 실망 때문이 아니라 상처받은 내 자존심이 그 친구와 화해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고 그 친구는 예상대로 서울대로 진학하였다.

축하해 주고 싶었다. 졸업식날 같이 사진 찍고 싶었다. 그 즐겁고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낸 전우로서 서로 칭찬하고 위로하고 축하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교실에서, 졸업식장에서 우린 서로 마주 봤지만 그뿐이었다.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그 당시 나를 위해, 그 친구를 위해 변명한다면 상대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그런 비인간적인 "쫓김"이 우릴 그렇게 만들었지 싶다. 수준 낮은 문제를 물어보는 친구의 상처난 자존심을 위로해 줄 여유도, 친구의 날카로운 대답을 웃어넘길 여유도 그때의 우리에게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쫓김"에서 풀려났을 땐 우린 이미 화해의 시기를 놓쳐 버린 후였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그 친구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친구의 아무 것도 아닌 말을 내 열등감으로 왜곡해서 해석하고 제 멋대로 행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우리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만들던 시험이라는 괴물이, 성적으로 미래가 좌지우지되는 사회가 지금도 여전히 친한 친구들을 갈라놓고 있는 것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시험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했던 것보다 더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시험과 상관없이 우리들의 시간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안 지금은 더더욱 그 친구가 그립다.

며칠 있으면 또 수많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꿈을 꾸며 수학능력시험을 본다. 내가 대학 입학 시험을 볼 때와는 다르게 다양하고 복잡한 입시 방법이 있어 수학능력시험의 중요성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쫓음"은 여전한 것 같다. 시험 결과에 따라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도, 좌절감을 느끼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을 먼저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나는 곧 전쟁을 치를 아이들에게 이 한 번의 시험이 너의 노력을, 너의 능력을 오롯이 평가하지 못하는 것임을, 그리고 앞으로 여러 번의 기회가 있음을 따라서 너무 쫓기지 말고 시험을 치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서로를 위로해 주라고, 이 힘든 고난을 견딘 것만으로도 훌륭한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더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친구들과 사진 찍고 화해하며 때론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다.

태그:#수능, #시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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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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