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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삶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일상적으로 보지 못 하는 것 중 하나가 '바위' 아닐까 싶다. 거대한 바위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을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앞에서 느끼기는 어렵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이런 경외감은 자칫 오만해지기 쉬운 인간을 제어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어쩌면 비타민을 챙겨 먹듯 일부러라도 챙겨야 할 일이다.

대전광역시 동구 비룡동 신선봉에는 절로 고개 숙여지는 바위 군락이 있다.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에 해당한다. 이 길을 걸으며 바위 군락 아래로 스쳐 지나가 보지 못하는 이도 많다. 이 군락을 봉우리 이름을 따라 신선바위라고도 부른다.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2호인 이곳은 공식적으로 신선봉유적이다.

이 신선봉유적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비룡교차로 쪽에서 대청호수로 옆, 산비탈에 난 길을 따라 오르거나 아니면 반대편인 금성마을에 들어가 산길 진입로를 따라 오르는 방법이다. 봉우리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석축을 만난다. 일부는 무너져내리고 일부는 남았고 일부는 새롭게 정리한 듯하다. 문화재청 자료를 보면 동, 서, 북벽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남쪽에만 1.5~2m 높이의 벽이 남아 있다. 동서남북 사방을 빙 둘러 석축을 쌓았으니 그 형태가 흡사 산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곳을 방어 목적이 있는 산성으로 보지 않는 모양이다. 봉우리 부근에 많은 군사가 머물거나 관련 시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평평한 땅이 보이지는 않는다. 군사가 상시적으로 주둔하지 않고 전쟁이 발발하거나 필요할 때 올라와 임시로 주둔해 적을 막거나 하는 용도로 썼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도 추정하지 않는 이유는 정상 부분에 있는 기암괴석 때문이다. 범상치 않은 그 모습을 마주하면 종교적 행위가 벌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어렵지 않게 든다. 신선봉 정상에서 만나는, 하늘 아래 커다란 바위는 그 자체로 경이롭다. 누구든 그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묘한 기운이 서렸다.

바위 앞에선 누구든 겸손해진다
 
신선봉 정상에서 만난 기암괴석
 신선봉 정상에서 만난 기암괴석
ⓒ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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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여러 개가 마치 정교한 계획에 의해 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처럼 툭툭 던져졌다. 바위 모양새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거북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코끼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의 얼굴이나 도깨비 얼굴처럼도 보인다. 바위 하나하나가 모두 범상치 않으나 중앙 부분에 놓인 바위 세 덩어리는 특히 그렇다.

언뜻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고인돌 형태처럼 기둥석 두 개 위에 거대한 판석이 올라가 있다. 기둥 노릇을 하는 바위는 서로 다른 바위 두 개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 하나가 둘로 갈라진 것처럼 보인다. 갈라진 그 틈은 성인 남자 한 명이 바듯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그 통로는 급한 경사를 이룬다.

그 틈 안으로 들어서면 통로 안에 새겨 둔 글자를 발견할 수 있다. '皇皇上帝位 性性主人翁' 의미는 전혀 모르겠지만 무언가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옥황상제에게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성성주인(性性主人)이라는 별호를 쓰는 노인이 새긴 글자라는 추정을 해 본다. 비교적 선명한 이 글자 말고도 큰 바위 곳곳에는 해독이 불가능한 문자가 여러 개다.

문화재청은 이곳에 쓰인 글을 '조선시대' 것으로 짐작한다. 또 이 유적 부근에서 오래된 토기 파편이 발견되는 점을 들어 유적의 유래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정한다. 무엇인가를 기리거나 기원하던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그리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바위 곳곳에는 구멍 흔적도 여러 곳이다. 언제 팠는지 모르겠지만 인위적으로 파놓은 것으로 보이며 굵은 대나무 기둥을 꽂기에 적당한 크기다. 차일을 치거나 깃발을 꽂기 위한 기둥자리가 아닌가 싶다.

신선바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문자는 호신발(號神發)이다. 낯선 글자다. 예전에 얼마나 많이 행한 행사인지는 모르겠으나, 호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호'를 크게 외치며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일종의 의식이란다. 근래에도 이곳에서 자신이 받은 호를 외치며 기운을 받으려는 행사가 간혹 열리는 모양이다.

공증을 받은 바는 없지만 신선바위에 새긴 글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기를 거치며 다양한 일화를 남긴 근대 주역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야산 이달 선생과 대오재 송을규 선생의 흔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오재 선생의 고향이 바로 이곳 비룡동이고, 야산 이달 선생도 고향은 경북 김천이지만 대전을 비롯한 충청권에 많은 자취를 남긴 분이다. 주역은 잘 모르지만 야산 이달 선생과 1900년대 우리나라 4대 기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지리산 문도사의 수제자로 알려진 대오재 송을규 선생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바위가 지닌 범상치 않은 기운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곳 큰 바위에 올라 북쪽 방향을 바라보면 대청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대청호가 생기기 전에는 금강이 굽이굽이 흘렀을 것이고 그 주변 비옥한 땅과 험하지 않은 산에 기대어 크고 작은 마을이 여럿이었을 터다. 그 마을 주민이 농사를 시작하기 전, 아니면 수확철 추수를 끝마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선봉에 올라 만나는 바위 군락에 특별한 감흥이 일었다면, 길을 나선 김에 조용히 비름들 마을도 다녀오기를 권한다. 신선봉에서 비룡동 쪽으로 내려와 큰 길을 건너 들어가면 '비름들'이라는 마을에 닿을 수 있다. 멀지 않다. 비룡동에 속하는 비름들 마을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안평이씨정려문을 만난다. 그곳이 마을 초입이다.

바위가 주는 위로
 
비름들 마을 초입에서 만난 범상치 않은 바위.
 비름들 마을 초입에서 만난 범상치 않은 바위.
ⓒ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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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름들 마을 초입부터 범상치 않은 바위를 만날 수 있다. 수형이 기가 막히게 자란 소나무 한 그루와 그 소나무에 꼼짝없이 붙잡힌 큰 바위다. 소나무는 자그마하지만 바위에 뿌리를 내려 험난한 삶을 살아서 그럴 뿐 실상 무척 오랫동안 그곳에서 마을과 함께 했다고 한다. 그 소나무 밑 큼지막한 바위에는 '송석당(松石堂)'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당이라는 말이 붙은 것으로 보아 소나무를 배경으로 그럴듯한 정자 하나가 있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맞았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볼 수 없다.

마을 초입에 바위는 시작에 불과하다. 눈을 크게 뜨고 안길을 따라 들어가면 곳곳에서 크고 작은 바위와 마주한다. 집 담에도 바위가 끼어있고 마당 한쪽에도 거대한 바위가 자리를 잡았다. 마을 주민을 만난다면 예의 바르게 바위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앞서 확인한 바위 이름은 돼지바우, 벽바우, 비석바우, 황새바우, 뒤깨바우, 갓바우, 굴바우, 왕바우, 떡채바우 등이다. 지금 다시 바우 이름을 확인해서 찍어보라면 그리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위지도라도 만들어 두면 좋을 텐데 말이다.

마을의 북서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꼴뫼'라는 곳에 다다른다. 주민들이 주로 농사를 지었던 황축이라는 들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그 즈음에 왕바우가 있다. 왕바우로 가기 위해 가로지른 포도밭도 온통 크고 작은 바위투성이다.

주민이 왕바우라 부르는 바위는 여러 개의 큰 바위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형태다. 지금은 흙이 채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옛날 바위 밑에는 제법 큰 굴이 있어 한국 전쟁 때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기도 했고 어린아이들이 놀던 놀이터이기도 했다.
신선봉에서 만난 바위 군락과 이곳 비름들 마을에서 만나는 바위 군락 사이에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왕바우와 신선바위는 묘한 쌍을 이루는 듯하다. 볕 좋은 날 살포시 바위에 몸을 기대거나 손을 벌려 온몸으로 안아본다면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받는 묘한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와바우로 가기 위해 가로지른 포도밭도 온통 바위투성이였다.
 와바우로 가기 위해 가로지른 포도밭도 온통 바위투성이였다.
ⓒ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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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월간 <토마토> 편집장, 저서 <대전여지도> 등 대전에서 월간지 <토마토>를 10년 이상 꾸준하게 펴내고 있으며 대전 구석구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태그:#대전그곳을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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