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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을 통해 광화문 5호선 지하철역으로 가는 통로 한편에는 조선조 시대별 지층 단면을 재현해 놓은 전시물이 있습니다. 18세기~19세기, 근대층 등 각 시기별로 지층은 적게는 수십 센티미터에서 수 미터에 이릅니다.

자연스럽게 의문이 듭니다. 불과 수백 년 사이에 이토록 다양한 지층이 새롭게 형성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광화문 앞 육조 거리 등은 조선조 시대 사람들이 가장 조밀하게 거주했음에도 수 미터씩이나 흙이 쌓일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시기별 단면을 살펴보면 제법 굵은 돌들도 지충 사이에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임금이 거주하는 바로 앞이고 인구가 조밀하게 거주하는 지역이기에 백성들이 쓸고 닦고 했을 텐데 불과 600여 년 동안 새로운 지층이 수미터 씩이나 쌓일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공주시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웅진백제의 왕성 공산성이 있습니다. 백제시대 웅진 도읍기(475~538)의 공주를 방어하기 위한 왕성으로 금강 변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백제는 문주왕 원년에 한강유역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후 성왕 16년인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 까지 5대 64년간 왕도를 지켰다고 합니다.

실제 공산성내 가장 넓고 평탄한 지형에서는 왕궁 부속 건물지 축대도로 저수시설 배수시설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저수시설에서는 2011년 옻칠한 갑옷 마갑 화살촉 등 백제 유적이 나오면서 이곳이 백제시대 왕궁임을 증명했습니다.

공산성 해설사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서 조선조 유물은 지표면으로부터 3미터 부근에서 백제 유물은 7미터 부근에서 발굴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산성이다 보니 10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바람에 산이 깎이고 무너져 내리면서 켜켜히 쌓였을 것입니다.

 
부여 관북사 역사 유적과 관련해 현재는 도성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굴하고 있는 중입니다.
 부여 관북사 역사 유적과 관련해 현재는 도성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굴하고 있는 중입니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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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연구사가 전하는 발굴 현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는 해리슨 포드가 고고학자인 주인공역을 맡아 고대 이집트의 유적지인 피라미드를 탐험하면서 나치를 상대로 하는 영웅적인 활약상으로 영화적 재미를 한껏 불러 세웁니다.

그렇다면 현실속 우리나라의 고고학자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 11월 8일 부여군에 있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을 방문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김대영 학예연구사를 만나 발굴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천 수백 년 전 백제시대의 유적을 손으로 더듬고 있는 그는 한국판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인 셈입니다. 

김대영 학예연구사에게 가장 먼저 조선 궁궐 바로 앞인 광화문 인근에 불과 수백 년 만에 수 미터씩 새로운 지층이 쌓일 수 있는 현상에 대해 물었습니다. 김 학예사는 인위적 퇴적과 자연적 퇴적을 들면서 설명했습니다.

즉 "큰 건물을 지을 경우 터파기를 한 후 기단을 세우지만 흙보다는 기와나 돌이 단단하기 때문에 낡은 건물을 허문 후 잔해를 들어내지 않고 그대로 다진 후 건물을 세우면서 인위적으로 퇴적층이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반해 "공산성 같은 경우는 자연 퇴적에 의해 유구 층이 시기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역마다 다르지만 신석기 청동기 시대 근현대까지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서 "퇴적 지형에서 경사가 심한 경우 사람들이 살면서 계속 메우면서 쓰고 흙도 퇴적되니까 그런 곳은 깊이마다 다르게 유구가 나온다"고 해설해주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의문을 말끔하게 풀어주었습니다.
 
지난해 부터 시작된 발굴은 내년까지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부터 시작된 발굴은 내년까지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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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학예사는 현재 발굴중인 관북리 유적과 관련해서도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는 근대 층을 조사한 후 그 아래시기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면서 "작년 11월부터 시작했는데 내년까지 발굴을 예상한다"고 예상했습니다.

이어 "바로 건너편이 세계문화유산인 관북리 유적"이라면서 "교수님들에 의해 시가지 안쪽으로 중요한 유적이 있을 수 있어 조사를 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건물이 철거되고 매입이 완료돼 기회가 와서 조사를 먼저 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의 발굴 성과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특별한 유물은 아직 없다"면서도 "현재 드러난 지표면이 백제시대 사람도 사용했던 바닥이다. 이곳까지 발굴하는 과정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도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발굴을 진행하면서) 현재 드러난 지표면 아래로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뭐한 행동이 안보여서 저희는 이것을 생토나 기반토라고 부른다"면서 "현재 드러난 표층 아래로는 내려가도 의미가 없어 현재는 퇴적 순서를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유물 발굴 요령과 관련해 "옆으로 조심스럽게 조사해 나가면서 유물이나 돌 같은 것이 나오면 무조건 수습하는 게 아니라 남겨놓는다"면서 "그래야 (발굴이 마무리 된후) 어디쯤 어느 위치에서 나왔는지 그 층에서 나온 것을 파악한 다음에 수습을 해야 그 유물이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학예연구사는 이 같이 말한 후 인디아나 존스와의 현실속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무덤 방식도 만든 방식도 다르다. 피라미드는 입구에 들어가면 안에 큰 공간이 있어서 탐험도 하고 함정도 있다고 하지만 저희는 지하에서 하나하나 층층이 발굴하는 것"이라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영화 속 고고학자와 현실속 대한민국 유물 발굴현장에서 손으로 더듬어 내려가는  고고학자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웃음으로 비교해 설명한 셈입니다.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도 부여 관북리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도 부여 관북리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 시사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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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기의 왕궁 관련 유적으로 정림사지 공산성 왕궁리유적 송산리고분군 능산리고분군 미륵사지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북리유적에는 대형건물지 지하저장시설 연못 도로유구 등 왕궁 관련시설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대형건물지(35m×18.5m)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서 왕궁 내에서 가장 중요한 정전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며 거의 동일한 구조와 규모의 건물지가 사비 후기 왕궁인 익산의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부소산성은 왕궁의 후원이자 비상시 방어성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그 당시의 성벽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소산성에는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애잔한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 낙화암과 고란사 등 백제의 전설과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관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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