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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없다'와 만나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염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염치'란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편집자말]
부끄러움, 그의 책에 담겨 있는 마음이었다.

"부자도 빈자도, 권력자도 노숙인도, 남성도 여성도,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미세먼지가 대한민국 판사보다 훨씬 더 공평해 보인다"며 "각성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의 삶은 지옥이 되어가는데 누군가의 천국은 더욱 공고해질 때, 그런 결과에 부역해야 할 때 슬펐다"고도 했다. 둘째 아이 출생신고가 하루 늦어 동사무소에서 느꼈던 부끄러움 또한 상세하게 풀어놨다.

"서류 한 장을 불쑥 들이밀며 '사유서도 적어내세요'라고 했다. '게을러서라고 적어야 하나? 아니면 정신이 없어서? 바빠서라고 적을까? 사유서를 들고 망설이는 내가 답답했던지 담당자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바쁜데 뭐 합니까? 받아쓰세요. 법에 무지하여...'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박주영 부장 판사(51세,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의 <어떤 양형 이유>(김영사)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변호사 시절 겪은 일이라고 했다. 책 끝머리에서 그는 "좋은 판사의 덕목으로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란 염치의 사전적 정의와도 통하는 문장이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울먹였던 젊은 판사... TV 보며 심하게 부끄러웠다" 
 
박주영 판사는 1996년 사법 시험에 합격한 후 7년 간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2005년 최초로 공개 모집된 경력 법관 제도로 판사가 됐다. 사진은 2006년 부산지방법원 초임 판사 시절 모습.
 박주영 판사는 1996년 사법 시험에 합격한 후 7년 간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2005년 최초로 공개 모집된 경력 법관 제도로 판사가 됐다. 사진은 2006년 부산지방법원 초임 판사 시절 모습.
ⓒ 박주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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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질문 중에는 '삶에서 가장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도 있었다. 돌아온 답에는 그 순간이 많았다. 그 일부를 옮긴다.

"변호사 할 때 의뢰인의 비윤리적 행위에 동조했을 때,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술이 과해 이런저런 실수를 했을 때 그 다음 날 사무실에 가기 싫을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일을 미룰 때, 위선적인 글을 쓸 때, 잘 모르면서 많이 아는 척할 때, 그러다 정말 그 분야의 고수를 만날 때, 1987년과 그 언저리에 집회 도중 빠져나와 도서관으로 갈 때도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물론 "둘째 출생신고가 하루 늦었음을 나중에 알았을 때도 부끄러웠다"는 순간도 포함돼 있었다. 하나 하나 세어보니 열 일곱 개나 됐다. 그는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원래 많다"면서 "딱 한 순간을 고르라고 하시니 어렵다"고 했다.

판사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도 상세하게 열거했다. 그는 "판결문의 오탈자부터 유무죄 판단이나 손해배상 금액을 잘못 계산하는 등의 실수"를 전했고, "2017년경 사법농단 인터뷰를 하며 울먹이는 젊은 판사님을 관사에서 TV로 혼자 보았을 때 정말 심하게 부끄러웠다"면서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사람 없는 것을 보고, 사표를 써버릴까 망설이다 끝내 쓰지 못할 때도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왜 이렇게 부끄러워할까. 또 왜 그걸 굳이 이렇게 많이, 그것도 자세하게 밝히고 있을까. 그와 처음 이메일을 주고받은 지 열흘째 되던 날, 울산지방법원, 그의 사무실에서 우리는 마주앉았다. 앞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런 저런 일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그는 "요즘 상황을 보면 씁쓸하다"며 역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1987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잘못된 체제에 저항하고 막 욕하고 그랬던 세대였던 저희가 어느덧 기득권 세대가 돼 버렸다"며 "(젊은 세대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사법 농단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사법연수원 28기 동기인 최한돈 부장판사가 사표를 냈었다, 그것도 되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2017년 2월, 현안조사 소위원장이었던 최 판사는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를 강하게 요구하며 사표를 제출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당시였다.

"법대에서는 근사해 보이지만, 별 볼일 없는 똑같은 인간"
 
박주영 판사의 1999년 사법연수원 시절 모습.
 박주영 판사의 1999년 사법연수원 시절 모습.
ⓒ 박주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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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사법 파동이 몇 번 있었잖아요. 책임지고 사표 쓰겠다는 선배 법관들이 많았죠. 판사들이 워낙 조용해서, 좋은 말로 하면 점잖은 거고, 나쁜 말로 하면, 좀 그냥 자기 일밖에 모르는 거고, 그래서 그렇지, 판사는 헌법 기관이잖아요. 판사 한 명의 발언이 엄청 세거든요. 한 열 명쯤 모여 서명해서 연판장 돌리면 사법부가 휘청휘청했습니다. 그런데 (사법 농단 관련) 제대로 사죄하거나 반성한다는 얘기 제대로 못 들어봤거든요. 그나마 최한돈 부장이 사표를 내줘 조금 부끄러움을 덜긴 했습니다."

사표를 쓰고 싶었냐고 물었다. "쓰고 싶었다"고 했다. 사표를 내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는 "평소에 아무 반응 안 하던 사람이 (사표를) 던지면 주변 사람들이 '쟤는 뭐지? 갑자기 왜 사표를 쓰지? 애가 이제 고3이고 하니까 돈 벌어야 하나?'(웃음) 이렇게 반응할 거 같았다"고 했다. 그는 "제가 사표를 던지면 그 효과가 전혀, 또는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면서 "저는 뭐 정말, 듣보잡"이라고 말했다.

책에서 그는 모두가 노동자임을 강조하면서 "판사로 욕먹느니 재판공으로 칭찬 받고 싶다"고 했었다. 인터뷰 주제로 들어갔다.

- 염치란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잠시 생각하다가) 기본적으로 부끄러움이겠죠. 반성하는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판사, 법대에 앉아 있으면 근사해 보입니다. (법대에서) 내려가면 별 볼 일 없는 똑같은 인간들이거든요. 그런데 자꾸 혼동이 일어납니다.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저희가 법복을 입으면 개인적인 자아는 완전히 가려진다고 얘기하거든요? 실제 가리라고 얘기도 하고요. 아무리 찌질한 인간이어도, 못난 사람이어도, 법복을 딱 걸쳐 입는 순간 개인적인 자아는 잊어버리라고, 선배 법관들이 얘기하십니다. '네가 잘나서가 아니다', '네가 법을 대리하는 상황에서 개인적 인격이나 이런 게 투영되면 안 된다'는 거죠. 오로지 법을 대리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면, 내가 마치 대단한 힘이 있고 권한이 있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다"는 말이다. 박 판사 역시 "자신도 실제 착각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염치는, "자신의 지위 또는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인 흠결, 그 사이를 잘 파악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자연인으로 부족함을 아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정말 싫어하는 행위는 어떤 척 하는 것, "위선"이라고 했다.

염치는 "자각"
 
박주영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 부장판사
 박주영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 부장판사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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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행동하면서 직업적으로는 다른 모습 보인다는 건, 정말 염치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가장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 하는 게 위선적인 겁니다. 말은 이렇게 그럴 듯 하게 하고 있지만, 저도 많이 위선적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무슨 염치로 이 자리에 있는 거지?' 그런 생각, 많이 하거든요? 엄청난 권한이고, 엄청난 명예고, 엄청난 힘인데, 저의 개인적인 인격이 과연 이런 자리에 맞는가.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는 "법정에서의 모습을 자연인으로서 못 따라갈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못 돌아본다는 얘기니까", 역시 "내로남불도 정말 싫어한다"고 했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조용조용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목표나 가치, 또는 이상적으로 보는 사람의 모습, 이걸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염치 아닐까요. 그래서 또 내 개인적인 모습을 최대한 공적인 모습에 가깝도록 도와주는 게 염치라는 생각도 들어요. 부끄럽다는 건 결국 어떤 문제나 잘못된 현실에 대한 자각이라고 느껴지거든요? 이걸 잃어버리는 순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겠죠. 가급적 마이(많이) 안 벗어나려고요."

"순간 순간이 점이 되고 그 점이 연결돼서 선이 되고, 그 선이 인생이 된다"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그의 말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스스로 미래에 찍고 싶은 점,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지점에 대한 자각. 부끄러움도 마음인데, 왜 염치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으로 굳이 구분해 놨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염치는 그 마음을 자각하는 것이었다.

자각의 공공재, 그의 '양형 이유'
 
2006년 1월 법관 임용식 당시 모습. 박주영 판사는 인터뷰에서 "정성 들여 썼던 양형 이유가 시퍼렇게 남아 있으면, 초심의 현존이 계속 제 발목을 잡는다"면서 "자신의 양형 이유는 목표에서 자꾸 멀어지는 날 계속 돌아보게 하고, 태만함을 경고하는 옐로 카드 같다"고 설명했다.
 2006년 1월 법관 임용식 당시 모습. 박주영 판사는 인터뷰에서 "정성 들여 썼던 양형 이유가 시퍼렇게 남아 있으면, 초심의 현존이 계속 제 발목을 잡는다"면서 "자신의 양형 이유는 목표에서 자꾸 멀어지는 날 계속 돌아보게 하고, 태만함을 경고하는 옐로 카드 같다"고 설명했다.
ⓒ 박주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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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만의 '양형 이유'는 그의 자각이 공적으로 나타난 기록이었다.

박주영 판사는 지난 달 29일 공판에서 한 젊은이에게 징역 7년과 치료 감호를 선고했다. 그 젊은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했다.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망상 때문이었다고 했다. 조현병 환자였다. 다음은 그 날 '막장'에서 낭독된 양형 이유 중 일부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론 파워스는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책에서, 조현병 가족의 애끓는 심정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다시 빌자면, 어쩌면 정신 질환이라는 이 무서운 질병에 눈감고 외면하는 우리야말로 '질병인식불능증' 환자들일지도 모른다.

전도 유망한 청년이, 사랑 넘치던 어머니가 갑자기 정신질환자가 되어 부모와 아이들을 살해하고, 길가는 낯선 사람을 해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수없이 목도한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참혹하고 안타까운 이 사건을 앞에 두고, 조현병으로 대표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한 번 촉발되기를 바란다.

조현병을 가진 자식을 둔 부모가, '내 아이는 조현병입니다'라고 당당히 밝히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 그 요청에 귀 기울이고 함께 걱정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누구도 신경 써 주지 않는 그 미친 사람이 바로, 내 아이일 수도 있다." (2019고합XXX, 판결문 양형 이유 중)


다시 그에게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 박주영 판사와의 인터뷰는 10월 30일자 서면 문답을 포함해 모두 세 차례 이뤄졌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 <"역사는 디스코 팡팡 같아... 진보와 염치는 한 몸"> ( http://omn.kr/1llmq )로 이어집니다.

태그:#박주영, #염치주의, #판사, #양형 이유, #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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