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조커>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조커>의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가난하고 정신적으로도 온전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하는 생활인이다. 우스꽝스러운 광대분장을 하고 거리에서 피켓을 흔들며 열심히 일하고, 한편으로는 코미디언의 꿈을 꾸며 조크들을 메모하고 또 연습하며, 생기 있는 눈동자로 유명 코미디언의 토크쇼를 챙겨보기도 한다. 꼬박꼬박 상담소에 나가 상담을 받고 약도 꾸준히 챙겨먹는다. 그는 홀어머니까지 부양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녹록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그의 기를 무자비하게 꺾어놓는 것은 그에게 쏟아지는 주변과 사회의 냉대다. 그가 고용된 광대회사의 사장은, 업무 중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청소년들에게 피켓을 뺏기고 폭행당한 일)에 대해 그의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혼자 판단하고 그를 질책할 뿐이다.

그는 동료에게도 무시와 조롱을 당한다. 그나마 그의 정신적 버팀목은, 노쇠하고 병약한 그의 어머니뿐이다. 그는 상담소의 상담사에게, '누구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감 없이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친부라고 생각했던) 고담시장선거 출마예정자 토머스 웨인 앞에서 그는 "왜 다들 이렇게 무례하죠?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줄 수 없나요?"라며 울부짖는다. 온갖 냉대와 차별, 혐오를 경험한 그는, 조금씩 '조커'가 되어간다.
 
 아서 플렉은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했'었'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아서 플렉은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했'었'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사람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면,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와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말이다.

조커는, 단순히, '정신질환자의 광기'의 산물인가, 약자의 소외와 배제를 방치한 그 사회의 산물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흉기의 언어'를 구사한 정치인의 책임은 없는가. 그가 그나마 누릴 수 있었던 (상담, 약물 등의) 복지예산을 삭감해버린 시 당국의 책임은 없는가.

플렉은 왜 조커가 되었나, 신창원은 왜 신창원이 되었나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은 "국민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학교에 낼 돈도 가져오지 못하는 놈이 뭐하러 오냐며 심한 욕설을 한 뒤 내 마음에 악마가 생겼다"고 회고했다. 그가 자신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주장한 것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혹은, '학교에 낼 돈' 자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복지정책이 있었다면, 그의 마음에는 악마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회의 냉대와 가난 속에서도 이를 극복한 영웅들이 많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영웅'이라 칭하는 만큼,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극복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회의 냉대와 혐오를 경험하며 아서는 조금씩 '조커'가 되어간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사회의 냉대와 혐오를 경험하며 아서는 조금씩 '조커'가 되어간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아서는 자신이 동경하던 토크쇼에서, 진행자에게 소리친다.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며 말이다.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면 어떻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쓰레기'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우리사회가, 제3세계 외국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여 그들을 차별하고, 경제활동과 취직의 기회를 박탈하면, 그들은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없게 된다. 누군가를 '범죄자'로 취급할 경우, 말 그대로 '범죄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무자비한 조커라도, 자신을 유일하게 존중해준 난쟁이 동료에겐 자비를 베푼다. '너는 나를 유일하게 잘 대해준 사람이었다'며. 사람은, 취급받은 대로 행동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비정규직, 장애인, 외국인, 여성 모두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설적인 살인마 조커의 탄생'으로 결말을 맺은 이 음울한 영화를, '이 역경을 극복하고 유명한 코미디언의 꿈을 이룬 한 남자의 감동휴먼스토리'로 맺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영화 <조커>의 결말을 바꾸는 방법
 
나 살기도 바쁜데 왜 그들에게까지 신경을 쓰고 예산을 투입해야 하느냐고? 영화 말미, 고담시는 잿더미로 변하고 부유한 자들에 대한 테러가 곳곳에서 자행된다. 약자에 대한 소외와 차별의 결과는, 결국 모두의 '공멸'이다. 약자에 대한 지원은, 그래서 강자와 부유한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조커가 등장하고, 온 도시가 불길에 휩싸인 뒤 이를 복구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아니면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여 이 사회의 일원으로 동화되게 하여 조커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이 효율적일까.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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