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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N]은 뉴스의 이면을 봅니다. 그 이면엔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면N]입니다.[편집자말]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인 고 이지혜양의 가족들이 지난 1일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1999년 10월 30일 발생한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인 고 이지혜양의 어머니 김영순(65)씨가 지난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고인의 유품을 꺼내 보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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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서부로의 한 주택. 고 이지혜양의 어머니 김영순(65)씨가 떨리는 손으로 푸른색 천 보자기 매듭을 풀었다. 색 바랜 헌 양말부터 고이 접힌 치마, 재킷, 속옷, 머리띠가 차례로 나왔다.

"지혜 꺼가." 귀가 잘 안 들리는 외할머니 김경희(88)씨가 물었다. "응. 엄마도 지혜 보고 싶나." 구멍 나고 해진 양말을 매만지던 김씨가 큰소리로 답했다. "그런다고 아 볼 수 있나. 너무 안 됐다..." 외손녀의 유품을 보던 할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20년 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로 손녀를 잃은 할머니는 손녀의 유품을 보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가족들끼리 지혜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2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아요. 아프니까... 그냥 각자 삭히는 거죠. 저는 지혜 지갑에 들어있었던 만 원짜리 한 장이 아직도 생각나요. 사고 전날인가 지혜가 '오빠 용돈 좀 줘' 하길래 만 원을 줬었거든요. 근데 나중에 유품으로 돌아온 지혜 지갑에 제가 준 만 원이 그대로 들어 있는 거예요. 그 만 원이 얼마나 슬프던지... 더 줄걸... 후회도 되고. 그 만 원짜리 안 쓰고 참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는데 나중에 지갑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같이 없어졌어요."

줄곧 차분하던 이지혜양의 오빠 이정환(40)씨가 끝내 울먹였다. 지혜양의 외삼촌 김병호(61)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너무 억울하니까 얘기도 안 꺼내는 거라. 거기다 우리 가족만 보상을 못 받았잖아요. 우리 지혜도 똑같은 고등학생이었고 거기서 똑같이 불이 나서 죽은 희생자인데 아르바이트생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보상에서 혼자 빠진 거예요. 이게 말이 돼요? 우리는 명예마저 잃은 거라. 겨우 알바 첫날 일하러 간 그 어린애가 무슨 책임이 있다고... 나중엔 인천시에서 우리 가족한테 장례비용이랑 식비까지 다 다시 물어내라고 했다니까요? 희생자가 아니다 이거지, 참... 국가가 우리 가족을 두 번 죽인 거예요. 우리 같이 힘없는 서민들만 이래 당하고 사는 거 아입니꺼. 하도 억울하니까 우리 지혜 아부지가 없어서 무시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거라."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인 고 이지혜양의 가족들이 지난 1일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인 고 이지혜양의 가족들이 지난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이 고인의 외할머니 김경희(88)씨, 오른쪽이 고인의 외삼촌 김병호(61)씨.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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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는 20년 전인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4층 상가 지하 노래방에서 난 불이 불법 영업 중이던 2층 호프집까지 번져 대형 참사로 이어진 비극이다. 당시 호프집에 있던 중고생 52명을 포함해 57명이 사망했고 78명이 다쳤다. 희생자 대부분이 인근 고등학교 십여 군데에서 가을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기 위해 모여든 고등학생들이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불법 영업을 한 호프집과 경찰, 공무원 사이의 유착이 드러났다. 소화기의 부재, 석고보드로 가려진 창문, 탁자나 의자가 잔뜩 쌓여 통행을 막던 통로도 참사를 키웠던 것으로 지적됐다.

유가족들이 사고 이후 90일 넘게 체육관 생활을 이어가며 분투한 끝에 인천시는 당시 희생자들에게 보상금 1억 8천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당시 제정된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 화재사고 관련 보상 조례'에는 "보상금의 지급대상은 인현동 화재 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에 한한다. 다만, 인현동 화재 사고의 실화자와 가해자이거나 그 종업원과 건물주 및 공무수행 중인 자는 제외한다"라고 돼 있었다.

가족들은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 없이 처음 알바를 하러 갔던 지혜도 고등학생이었지만, '종업원'으로 분류돼 학생 희생자 중 유일하게 보상에서 제외됐다.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 있나"라고 했다.

<오마이뉴스>는 고 이지혜양의 어머니 김영순씨를 김해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김씨는 사고 5년 후 인천을 떠나 고향인 김해로 내려왔다고 했다. 취재진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지혜양의 오빠, 외삼촌, 외할머니 등 가족들도 한데 모였다. 가족들은 지난 20년 동안 언론의 관심은 처음이라고 했다.

고 이지혜양 어머니 인터뷰 "알바란 이유로 홀로 보상 못 받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인 고 이지혜양의 가족들이 지난 1일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인 고 이지혜양의 어머니 김영순(65)씨가 지난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미만 남아 밥을 먹는 게 죄스럽다"고 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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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30일이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20주기였다. 20주기를 맞아 앞서 마련된 4월 22일 인천시청 기자회견에서 유족회는 "희생자 중 한 사람(당시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보상받지 못하고 장례까지 사용한 경비(식대, 장례용품, 기타)를 배상하라는 독촉 공문에 시달려 타지방으로 이사했다"고 했다(관련 기사 :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왜 기억하지 않는가").
"우리 지혜 얘기다. 사고 당시 지혜가 열여덟이었다. 지혜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나이에 똑같은 자리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아르바이트생이란 이유로 홀로 보상을 못 받았다. 왠지 돈 얘기로 흘러가 버리는 것 같아 지난 20년간 침묵하고 살았지만, 지나고 보니 이건 돈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명예 문제더라. 죽어서 지혜 만날 생각을 하면 엄마로서 딸 얼굴 볼 면목이 없다. 아직도 꿈에 지혜가 나오는데 늘 혼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이것 때문에 억울해서 아직도 울고 있나 싶어서... 호프집 업주처럼 사고에 잘못이 있는 건 어른들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지혜가 거기에 통으로 포함돼 보상에서 제외됐다, 얼마나 억울하냐. 게다가 사고가 난 그날은 지혜가 아르바이트를 나간 첫날이었다.

다만 유족회 기자회견 내용 중 '독촉 공문에 시달렸다'는 건 장례비와 식대를 포함한 경비가 아니라 소송 비용이었다. 2001년에 인천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지만 2003년까지 이어지다 결국 졌다. 이후 인천시로부터 소송에 들어간 비용을 물어내라는 독촉에 계속 시달렸다. 등기로 공문이 올 때마다 지혜 일이 떠오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사고 5년 후쯤 인천을 떠났다. 이사 가면 안 올 줄 알았는데 김해까지도 소송비 독촉이 오더라. 정말 질렸다. 한 6년 전까지도 독촉이 왔고 수백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단 한 푼도 줄 수 없었다. 내 새끼 잃고 억울해서 정부에 소송했는데 그 소송비를 대신 물어준다는 게 말이 되나.

20년 전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됐을 때쯤 인천시는 우리 가족에게 장례비용과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체육관 생활을 하며 치른 식비까지 변제하라고 요구했었다. 그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초상집에 대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장례비와 식비 독촉은 계속되진 않았고 사고 직후에만 있었다."

소송 비용 독촉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7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해 시에 소송 비용을 부담하라는 판결이 나오면 시청 입장에서는 체납 관리 의무 차원에서 고지서를 계속 보낼 수밖에 없다"라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사항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또 장례 비용과 식비를 변제하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20년 전 일이라 관련 자료가 남아 있는 게 없어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 지난 10월 30일 20주기 추모제 때 많이 울더라.
"부모들이 자식 잃고 슬픈 건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래도 좀 다르지 않겠나. 우리 지혜만 보상을 못 받았으니... 자꾸 지혜만 홀로 둔 것 같아 추모식마다 빠지지 않고 인천에 올라간다.

그나마 이번 추모제 땐 많이 안 운 편이다. 처음으로 유가족들이 사과를 받지 않았나. 인천시 부시장인가 하는 사람이 유가족들에게 고개를 팍 숙이고 사과하는 걸 보니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더라. 20년 동안 그 말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싶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지난 10월 30일 허종식 인천광역시 균형발전정무부시장은 인천시 중구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20주기 추모제에서 "참사 당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인천시를 대표해 너무 늦었지만 희생된 청소년들의 어머니, 아버지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관련 기사 : 인천 인현동 참사 20주기 추모제... "못난 어미 용서해줘").

"인천시청 옥상에 올라가 죽을 생각만..."  
 
 지난 10월 30일 오후 어머니 김영순(65)씨가 자신의 딸 고 이지혜양을 비롯해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인천 팔미도 앞바다를 찾았다.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20주기를 맞은 지난 10월 30일 김영순(65)씨가 자신의 딸 고 이지혜양을 비롯해 희생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인천 팔미도 앞바다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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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년간 어떻게 지냈나.
"사고 난 뒤 3년 동안은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서만 지냈다. 부모는 잃은 자식을 절대 못 잊는다. 지금도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거나 달력을 넘기다 10월만 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니까. 10월엔 그 흔한 단풍 구경 한 번 안 갔다. 사고로 알게 된 유가족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벌써 죽었을 거다. 2003년에 결국 소송에서 지고 나선 어떻게 하면 인천시청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을 수 있을지만 생각했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다른 희생자 엄마들과 만나 지혜 얘기를 하고 위로를 받으면서 그나마 지금까지 버티고 살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별다른 수입도 없이 소송만 이어지니 어렵게 차렸던 치킨집과 아파트도 모두 날려 인천을 떠날 때쯤엔 완전히 빈털터리가 됐다. 김해에 내려온 뒤론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살고 있다. 24시간 환자 곁을 지켜야 하는 요양보호사 일의 특성상 한 번 전담 환자가 생기면 한 달 넘게 병원에서 지낼 때도 있다. 20주기 추모제 때도 어렵게 대타를 구해 간신히 참석했다."

집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김씨는 자신의 소형차에서 지혜양의 사진을 잔뜩 꺼내왔다. 오빠 졸업식 날 찍은 사진, 인천 대공원에서 밝게 웃으며 찍은 사진, 엄마와 둘이 놀러 간 정동진에서 찍은 사진... 늘 차에 보관해 갖고 다니다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본다는 그 사진들이 김씨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고 했다.

- 어떤 딸이었나.
"지혜가 중학교 다닐 때 내가 이혼을 했는데 아빠가 없어도 기 하나 안 죽고 항상 밝은 아이였다. 철이 일찍 들어서 아르바이트도 했던 거고... 옷 같은 것도 그냥 사는 게 아니라 꼭 아끼고 모아뒀다가 하나씩만 사고 그랬다. 사고 난 날 지혜가 입고 나간 베이지색 재킷도 며칠 전에 사서 아껴뒀다가 처음 입고 나간 옷이었는데... 그 옷을 입고 지혜가 병원에 누워 있는 걸 보고 실신했었다.

애살도 많은(긍정적인 의미로 '승부욕이나 욕심이 많다'는 경상도 말) 아이였다.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고 노래를 잘 불렀다. 하루는 전화비가 너무 많이 나왔길래 알아보니 지혜가 서울의 라디오 방송국 전화 노래 콘테스트에 참가했다는 거였다. 1등 해서 선물까지 탔다고 좋아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는 음악 쪽으로 가고 싶다고 예술고등학교에 보내 달라고 그렇게 떼를 썼는데... 학비가 부담돼 안 된다고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너무 후회되더라. 혹시 그때 예술고등학교에 보냈으면 이런 사고도 안 당하지 않았을까 하고..."

김씨는 "지혜가 부산으로 전학을 가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해줬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지혜도 아르바이트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 사고가 안 나지 않았을까"라는 등 계속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20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아직도 "밥 먹는 게 죄스럽다. 딸은 밥도 못 먹는데 엄마만 먹으니"라고 되뇌고 있었다.

"아무도 우리 얘길 들어주지 않았어요"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인 고 이지혜양의 가족들이 지난 1일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씨가 자신의 딸 고 이지혜양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들고 있는 사진은 정동진에서 딸과 함께 찍은 것.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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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는 게 있을까.
"이번 추모제 때 사과를 받았으니 이제 남은 건 지혜 명예가 회복되는 것이다. 지혜도 똑같은 고등학생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처럼 보상을 못 받았다.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 아니냐. 지혜에게도 국가가 똑같이 보상해야 한다. 제대로 계약서도 안 쓴 고등학생이 알바 첫날 사고가 나 죽었는데 사고 책임이 있는 호프집 '종업원'으로 취급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김씨의 아들이자 지혜양의 오빠인 이정환씨는 유가족들의 심리 치료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2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하시거든요. 얼마 전에 제가 가족들이랑 여름 휴가를 갔는데, 비행기에선 전화가 안 되잖아요. 어머니께서 수십 통을 전화해도 제가 안 받으니까 너무 불안하시다고, 저희 장모님한테 새벽 4시에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연락 안 되는 게 지혜 사고 때랑 똑같은 기분이시라면서...

저도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가끔 누워서 자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애가 가버리면 어떡하지? 소름 끼치게 무섭죠. 저도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데 어머니는 오죽하시겠어요."


지혜양의 사진들을 함께 넘겨보던 가족들은 얘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가족들은 20년 동안 아무에게도 지혜양 얘기를 터놓고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오빠 이씨가 말했다.

"너무 답답했어요. 아무도 우리 얘길 안 들어주니까. 시간이 좀 지나면서 슬슬 주변 사람들에게 동생 얘기를 하려고 말을 꺼내면 '아 그 술 먹다 죽은 애들?', '자식 시체 두고 흥정했던 거?' 이런 반응이 나와요. 잘못한 사람들은 불법 영업을 했던 점주나 그걸 눈감아준 공무원과 경찰들 같은 어른들인데, 자꾸 애들이 불량하다는 식으로 몰아가니까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는 거죠. 게다가 우리 지혜는 알바생이라고 보상마저 못 받았고...

이렇게 큰 사고였는데도 그에 마땅한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어요. 호프집 사장이었던 정성갑, 징역 5년 받은 게 고작이었어요. 피해자들 가족들은 숨도 못 쉬고 조용히 지내는데... 화만 계속 쌓였던 것 같아요. 세상이 원망스럽고. 가족들과도 지혜 얘길 안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단 한 번이라도 국가가 명쾌하게 설명해주거나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인 고 이지혜양의 가족들이 지난 1일 김해시 진영읍에 위치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 고 이지혜양의 사진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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