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07 08:14최종 업데이트 19.11.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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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가 저녁 내내 영어숙제를 하느라 끙끙 대고 있다. 아픈 지구를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장 독창적인 방법, 가장 재미있는 방법을 각각 찾아내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이가 해야 할 숙제였다. 교사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발견한 지구를 더 건강하게 지켜내는 방법과 그 이유를 영어로 설명하게 한다. 반 아이들은 서로가 찾아온 신박한 아이디어를 나누게 될 것이다.

모든 학교 지붕에 태양열 에너지 패널을 설치하고, 세상의 유명 셰프들이 개발하게 한 채식메뉴들이 학교 급식을 통해 전파되며, 모든 아이들이 하루에 다섯 그루씩 나무를 심는다. 아이는 이 세 가지 아이디어를 찾아놓고, 그것이 가져다 줄 생태적 이점을 구구절절 적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환경이라는 키워드가 전체 과목을 관통하는 주제가 됐다. 영어뿐 아니라 지리, 지구과학, 심지어 수학까지. 


수학교사는 인구 5천 명의 마을사람들이 쓰는 휴지를 공급하기 위해 숲에 있는 몇 그루의 나무가 희생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지리교사는 태평양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만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이들과 토론한다. 마치 모든 인류와 모든 학문이 각자의 지혜를 모아, 함께 해결해야 할 공통의 과제가 환경문제라고 합의를 보기라도 한 듯하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채식 식단 의무화
 

이제 프랑스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채식 메뉴를 최소 일주일에 한번 이상 제공해야 한다. ⓒ unsplash

 
이런 분위기에 올해 11월 1일부터 프랑스는 유치원부터 초중고에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채식 급식을 제공하도록 의무화 했다. 육식은 물론 생선과 해산물도 배제된 식단을 최소 1주일에 한 번 이상 제공해야 한다. 이 법안은 농림부 장관이 축산업계 의견을 대리해 반대 의사를 표했음에도 상당수의 여당 의원들이 가세해 통과됐다. 지난해 10월이었다. 

법안은 2020년까지 급식 재료의 절반을 지역유기농산물로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60%의 프랑스인들은 이 법안에 찬성하였고, 18~34세의 젊은층의 찬성률은 74%였다. 15~26세 청소년층의 11%는 매일 채식 급식을 먹을 의향이 있다고 답하면서, 젊은 층일수록 채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의회의 결단을 가능하게 한 직접적인 힘은 3개의 시민단체연합(그린피스, 전국학부모협회 AFCP, 프랑스채식협회)의 노력에서 나왔다. 이들은 앞장서서 여론을 조성하고 확장해왔다. 채식 식단 의무화 및 지역 유기농산물 확대가 아이들에게 균형 있는 식습관을 마련해 줄거란 기대와 기후 변화 억제, 동물권 보호, 미세먼지 축소 등 환경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복합적 방안이라는 합의가 이들 안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단단하게 공조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3개 시민단체 연합은 녹색급식(cantineverte.fr)이란 이름의 사이트를 열었다. 이곳에서 학교들이 지역 유기농 재료 사용을 늘리고 채식 식단을 더 자주 제공하도록 압력을 넣도록 시민들을 북돋았다. 또 채식 급식 최소치 의무 적용이 학교에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이고, 채식주의자들의 오랜 요리법을 널리 알리고 교육했다. 

접시의 구성을 바꾼다는 것
 

프랑스에서는 접시의 구성을 바꾸는 실험이 계속 확대되는 중이다. ⓒ unsplash

 
채식 급식이 '의무'화 된 것은 올 11월부터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3~4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실시해 왔다. 파리 근교의 몽트로(Montreau)시는 4년 전부터 채식메뉴에 대한 사전 수효 조사를 벌인 뒤 채식메뉴와 일반 메뉴를 매일 함께 제공했다. 적용 첫 해에 10%의 아이들만이 채식 메뉴를 선택했다면, 3년 만에 그 숫자는 25%로 늘어났다.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채식 메뉴를 맛있게 여기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채식 메뉴가 질적으로 향상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몽트로시의 사례는 채식 메뉴가 일단 지속적으로 제공되면 그것을 즐기는 인구는 점점 늘어난다는 긍정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급식을 먹는 시간 역시 교육이 이뤄지는 시간." 시민단체연합이 힘주어 하는 말이다. 우리의 식탁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식을 먹는 행위가 지구를 해치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도록 아이 때부터 확고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목축업이 지구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4.5%를 차지하며,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온 인류가 전환하면 이를 7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아마존에서 멈추지 않던 화재가 목축업을 위한 평지 확대, 그리고 사료를 재배할 농지 확보를 위한 것임이 알려지면서 육식의 축소는 지구를 위해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선택지로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확산된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과 그렇게 길러지는 가축들이 전염병 등 심각한 건강 문제에 시달리는 것 또한 프랑스 식단을 급격히 변화시킨 중요한 요인이다. 그 전까지는 육류가 식단을 전적으로 지배해왔다. 

스타 셰프들도 합세

전체 프랑스 인구 중 채식주의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3%에 못 미친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채식을 즐기는 사람은 꾸준히 늘어나 2018년 한 해에만 채식주의자 시장이 24% 증가했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2년간의 실험'이라는 단서가 붙은 채식 급식 의무화 법안이 지속적 확대로 이어지려면, 우선 아이들이 이 음식을 좋아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음식문화 속에서 채식이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성공의 열쇠는 채식 메인요리 개발에 있다. 채소와 곡물, 과일이 육류를 밀어내고 메인 요리의 자리에 올라서게 하기 위해선 각각의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요리 언어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셰프들의 과제다. 

현재 최고급 식당의 스타 셰프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린 채식 메뉴를 앞다퉈 내놓는 중이다. 채식이 지구를 살리기 위한 양심있는 시민의 의무일 뿐 아니라, 만인의 즐거운 선택이 되게 하기 위해, 프랑스의 요리 장인들이 멋진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프랑스 아이들이 날마다 학교에서 교사들과 함께 지구를 구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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