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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지난 3월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부결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지난 3월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부결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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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병원에 다녀왔다. 재판을 앞두고 어제 공황장애 증세가 심해져서... 이런 일이 몰아치면 또 (증세가) 시작된다."

휴대폰 너머로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의 쓴웃음이 들렸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그는 5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떤 것으로도 내 상처는 회복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울고등법원에선 박 전 사무장이 대한항공과 조현아 전 부사장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2심 선고 공판이 진행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8부(박영재 부장판사)는 "대한항공은 7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해, 1심 2000만 원 지급 판결보다 배상액을 높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대한항공의 불법행위 내용 등에 비춰 지급할 위자료를 상향해 선고한다"고 밝혔다. 다만 조 전 부사장의 배상과 강등처분 무효 요청은 1심과 같이 인정하지 않았다(박 전 사무장은 사건 이후 사무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다).

박 전 사무장은 배상액이 늘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두고 "제 인생이 깡그리 망가졌는데 이게(배상액 7000만원) 많은 건가"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2014년 땅콩회항 이후) 5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피해를 뒤집어썼다. '내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왜 구제되는 게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대표적으로 조 전 부사장은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 기자 주). 뿐만 아니라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오너 일가는 800억 원 퇴직금을 받는다. 왜 많은 사람들이 권력자들에겐 그렇게 마음이 너그러운지, 그리고 제가 받는 7000만 원은 많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박 전 사무장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한 것에 대해 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라면 이 정도의 판결로 만족하면 안 된다"라며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의 가치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계급화가 고착된 사회가 돼 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대한항공을 그만두면 지금 이 상황에 취직이나 할 수 있겠나. 이 사회가 날 받아줄까"라며 "앞으로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솔직한 심정은 '7000만 원으로 뭘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창진의 존엄은 7000만 원으로 평가되고 말았다"라며 "이는 박창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호소했다.

"우리 모두 정체성을 지닌 시민이다. 권력의 게임에서 낙오되는 순간 우리 모두는 투명인간이 돼 버릴지도 모른다. 저처럼 가치 없는 인간으로 취급돼 버릴 수 있다. 이는 박창진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90%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나마 저는 5년 동안 싸우니 7000만 원이라도 인정된 거다. 근데 박창진처럼 못할 사람도 많지 않겠나."
 
지난 3월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강연장에서 대한항공 '땅콩회항' 피해자로 알려진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자신이 쓴 <플라이백> 출판기념 낭송회에서 저자 낭송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강연장에서 대한항공 "땅콩회항" 피해자로 알려진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자신이 쓴 <플라이백> 출판기념 낭송회에서 저자 낭송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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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을 호소하던 박 전 사무장은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5년 동안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 와서 그런지 동조하고 지지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라며 "그동안 힘들었지만 그토록 싸워온 게 잘한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라고 강조했다.

"7000만 원으로 제 인생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그나마 5년 동안 싸워 이런 결과를 얻어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는 계속 포기하는 사회로 유지되지 않았을까. 오만한 권력자들은 그런 사회에서 계속 권력을 당연하게 누리며 산다. 정의, 공정, 평등 등은 공허한 말로만 남아버리는 사회 말이다."

최근 정의당에 입당한 박 전 사무장은 "오늘 판결로 전의가 불타오른다"라며 웃었다.

"왜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이 고통을 겪는 걸까. 사회 구조가 그를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를 만드는 건 제도고 제도를 만드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나 또한 정치적 시민으로 살지 못해 그런 일을 겪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5년 동안 싸우면서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구제를 받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박창진뿐만 아니라 소시민들이 정치적 인간으로 거듭난다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와 정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소수 기득권이 아닌 다수인 우리 아닌가."

태그:#박창진, #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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