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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경의선숲길에서 작은 책방을 1년 반 넘게 운영해 오며 책과 사람에 관해 경험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 기자말

[쓰다] 파일을 만들었다. 올초부터 수요일 아침이면 열리는 '여성 작가가 쓴 SF소설 읽기 모임'의 영향이다. 이번에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 차일드>를 읽었는데, 쓰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는 문장들 때문에 일기라도 써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쓰다] 파일을 만들다 버틀러의 말들에 혹해, 읽는 존재 네번째 글을 썼다
▲ [쓰다] 파일을 만들다 버틀러의 말들에 혹해, 읽는 존재 네번째 글을 썼다
ⓒ 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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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다른 시공간을 탐색하다

'여성 작가가 쓴 SF소설 읽기 모임'을 꾸린 건 2019년 1월, 새로운 해에는 뭔가 해 보지 않은 일을 벌이고 싶어서였는데, 소설도 그렇지만 SF를 비롯한 장르 문학은 특히 문외한이라 관심이 닿았다.

마침 꿈작업을 하며 독서모임을 열심히 하던 이영민 샘이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어서, 나는 그냥 함께 읽을 이들을 모으고 열기만 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영민 샘은 이제까지 남성들이 쓴 책은 많이 읽어왔으니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여성 작가가 쓴 작품들에 집중해 보자고 제안했고, 나는 넙죽 받아들였다.

SF의 효시로 불리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시작으로, 국내외 장단편을 넘나들며 읽어나갔다. 물론 내가 모두 읽었다는 건 아니다. 열혈 독서광들 사이에서 나는 늘 읽지 못하고 모임에 참여하는 독서 부진아로 통한다.

다음 시간에는 옥타이바 버틀러의 <와일드 시드>를 마저 읽고, 아직 출간되지 않은 조안나 러스의 책을 모임 멤버이기도 한 역자와 함께 나눌 예정이다. 출간 전 독자들의 모니터를 받아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하는 역자의 마음과 출간이 늦어져 빨리 보고 싶은 독자의 마음이 통했다.

여기에 마샤 웰스의 <머더봇 다이어리>와 김보영의 <천국보다 성스로운>을 읽으면 올해 일정은 끝난다. 김보영 작가의 <진화신화>나 <멀리 가는 이야기>를 함께 읽고 싶었는데 주요 작품들이 절판되어 재출간을 기다리다 목이 빠졌다. 작가의 책을 여럿 읽은 한 샘이 전작이 훨씬 좋다하여 작가와의 첫 만남을 어떤 작품으로 열지는 여전히 고민스럽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여성 작가가 쓴 SF소설 읽기 모임'
 
여성 작가가 쓴 SF소설을 읽는 시간 수요일 아침마다 우리는 다른 세계로 간다
▲ 여성 작가가 쓴 SF소설을 읽는 시간 수요일 아침마다 우리는 다른 세계로 간다
ⓒ 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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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엔 누구도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고 한 적은 없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만 참여했다. 새로운 남성 참여자는 <디스 옥타비아>와 함께 찾아왔는데, 이 남성의 등장과 이 글은 아무 상관이 없으니 더는 기대마시라.

상반기에 내로라 할 만한 국내외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훑고, 하반기에는 그 가운데 마음에 든 작가의 작품을 더해 읽고 있다. 상반기에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함께 읽었기에 이번엔 유진목 시인이 소설인 듯 시인 듯 써내려간 <디스 옥타비아>를 읽었는데, 모두의 기대를 채우지는 못했다.

새로운 시도를 흥미롭게 본 이들도 있지만 책에 대한 평이랄까 소감이랄까, 단상은 여럿으로 갈렸고 함께 읽은 <킨>보다는 <블러드 차일드>를 비롯한 다른 작품에 영향을 받은 듯하여 버틀러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기로 했다. 모임원 가운데 <블러드 차일드>를 읽고 반해 모임에 오게 되었다는 분도 있어 <블러드 차일드>와 신간 <와일드 시드> 읽기로 일정을 바꾸었다.

<블러드 차일드>는 버틀러의 단편 다섯 편과 작품마다 쓰인 배경을 담은 후기, 에세이 두 편과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나는 다 읽지 못하고 표제작인 <블러드 차일드>와 에세이 두 편만 읽고 참여했다.

읽은 소감을 간단하게 나누는 시간. 이상하게 여성 작가들의 SF를 읽다 보면, 여기, 지금에서 훌쩍 날아올라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품도 마음에 들지만 그 작품에 이르게 된 이야기, 후기라든지 에세이 같이 더해진 글들에 더 많은 표시를 하게 된다. <블러드 차일드>도 마찬가지였다.
  
쓰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는 버틀러 말들
 
나는 말파리처럼 나를 괴롭히는 무엇인가를 상대해야 할 때, 그 대상에 대해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문제를 정리한다.
- 56쪽, 단편 '블러드 차일드' 후기에서
나는 커다란 분홍색 공책 속에 숨었다. 두꺼운 공책이었다. 그 속에 나만의 우주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법의 말이 될 수도, 화성인이 될 수도, 텔레파시 능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여기만 빼고 어디에든 있을 수 있었고, 지금만 빼고 어느 시간에나 있을 수 있었으며, 이 사람들만 빼고 누구와도 있을 수 있었다.
- 266쪽, 에세이 '긍정적인 집착'에서

'나두나두'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로 알게 된 어슐러 K. 르 귄의 글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언니도 그렇다. 나도 이 망해가는 세계로부터 뭔가 다른 곳으로 훌쩍 이동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써라. 매일 써라. 쓰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들지 않을 때도 써라. 하루 중 일정 시간을 골라라. 한 시간 일찍 일어날 수도, 한 시간 늦게 잘 수도, 오락 시간을 포기할 수도, 점심시간을 포기할 수도 있다. 당신이 선택한 장르에서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기를 써라. 어쨌든 일기는 써야 한다. 일기는 세계에 대한 관찰을 돕고, 또 나중에 풀어나갈 글감을 저장해두기에도 좋다.
- 278쪽, 신인 작가들에게 한 강연을 압축한 글이라고 밝힌 에세이
<푸로르 스크리벤디>에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저 쓰거나, 쓰지 않는다. 결국 나는 나의 가장 중요한 재능, 혹은 습관은 집요함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 282쪽. 신인 작가들에게 한 강연을 압축한 글이라고 밝힌 [푸로르 스크리벤디]의 후기 가운데
  
나는 '생계를 위해 SF와 판타지를 쓴다'고 말하는 버틀러가 좋다. 흑인 여성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말에 "왜요?"하며 거절 당하고 또 거절 당하고 또또 거절 당하면서도 써내려가는 버틀러의 '긍정적인 집착'도 좋다. 나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다. 그만큼 SF를 모르고 작가를 모르고 맥락을 살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왜 썼고,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싶었든, 책은 발신의 의도와 같거나 다르게 읽는 이에게서 완성되는 거니까.

그렇게 [쓰다] 파일을 만들고 네 번째 [읽는 존재]를 썼다. SF를 읽고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경험은 내게만 특별한 것일까. 문득, 궁금하다.
 
2019년 하반기에 읽은 책들 차곡차곡 쌓인다
▲ 2019년 하반기에 읽은 책들 차곡차곡 쌓인다
ⓒ 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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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가 쓴 SF소설 읽기 모임'에서 읽은 책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외국 여성 작가 SF 단편집 <혁명하는 여자들>
.어슐러 K. 르 귄 <어둠의 왼손>, <바람의 열두 방향>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단편집 <체체파리의 비법>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박문영 중편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옥타비아 버틀러 <킨>, <블러드 차일드>
.우리 여성 작가들이 쓴 <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하오징팡 <고독 깊은 곳>
.원샨 <역향유괴>
.반다나 싱 단편집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코니 윌리스 <화재감시원>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이야기>
.앤젤라 채드윅 <XX 남자 없는 출생>
.정보라 <저주토끼>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N. K. 제미신 <다섯번째 계절>
.유진목 <디스옥타비아>

* 목록은 읽은 순서에 따르고, 같은 작가의 작품을 같이 써넣었다. 8월 모임 방학에는 번외편으로 열혈 언니들이 테드 창의 신작 <숨 EXHALATION>을 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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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Table.Book.Store. 세상에서.가장.작은.책방. 경의선숲길 번화한 거리, 새하얀 카페 본주르에 테이블 하나 놓고 덜컥, 책방을 열었다. 책에 과도하게 가치를 부여하는 건 ‘그닥’이어서 무심히, 툭, 던지는 느낌으로 ‘옛따’책방이라 이름 붙였다. 책과 사람, 공간과 사건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끼적대며 일상과 이상을 넘나들까 한다.